문재인 대통령이 18일 청와대 춘추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가졌다. 이번 기자회견이 주목받는 이유는 임기 마지막 한 해 동안의 국정 운영 방향과 각종 정치 현안에 대한 대통령의 생각과 해법을 들어볼 수 있기 때문이다. 청와대는 “국민과 더 많이 소통하고 국민의 목소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원칙 속에서 회견을 준비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번 회견은 기대에 크게 미치지 못했다. 무엇보다 문 대통령의 상황 판단과 현실 인식의 한계를 드러냈다. 가령 문 대통령은 “부동산 안정화에는 성공하지 못했다”고 인정하면서 그 이유로 “시중에 유동성이 풍부해지고 저금리 기조가 이어졌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것은 현 정부의 부동산 정책 실패를 무능과 오류가 아닌 상황 탓으로 돌린다는 평가를 받기에 충분하다. 문 대통령은 입양아가 마음에 들지 않을 경우 입양을 취소하는 게 ‘정인이 사건’의 해결책이라고 했다. 통상 대통령의 발언은 답변 내용의 맥락과 취지를 감안해서 평가해야 한다. 하지만 이 발언은 대통령이 상황 판단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입양 아동의 인권을 무시한 실책으로 보인다.
둘째, 담대한 변화의 메시지가 없다. 특히 사면과 북핵 문제에 대한 획기적이고 중대한 내용이 없었다. 문 대통령은 “지금은 사면을 말할 때가 아니다”라고 일축했다. “적절한 시기에 국민 공감대가 형성될 때만이 가능하다”고 했다. 사면은 고도의 정치적 결단이 요구되는 사항이다. 대통령이 진정 국민 통합을 기대한다면 ‘국민 공감과 당사자 사과’라는 지극히 원론적인 수준 이상의 정치 메시지를 던졌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새해 첫날 사면론을 제기한 이낙연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빗댄 ‘추풍낙연’이 더욱 가속화될 것 같다.
셋째, 국민 공감의 결여다. 문 대통령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해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면서 “윤 총장이 정치를 염두에 두고 검찰총장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렇다면 문 대통령은 왜 지난 1년간 온 나라를 뒤집어 놓은 ‘추미애의 난’에 대해 침묵하고 윤 총장에 대한 징계를 재가했는가. 문 대통령은 “북한이 최근 핵 능력을 과시하는 등 비핵화가 어려워진 것 아니냐”라는 질문에 “북한 움직임은 비핵화 협상이 타결 안 된 상태에서 나온 것”이라고 했다. 여전히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은 비핵화와 평화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평가했다. 이런 ‘북한의 일방적 감싸기’에 과연 국민들은 얼마나 공감할까. 문 대통령은 국정 운영 지지가 30%대로 고착화되고 있다. 이미 임기 말 레임덕(권력 누수 현상)이라는 어두운 터널로 접어들었다고 볼 수 있다.
문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밝힌 ‘국민과 역사가 평가하는 성공한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는 남은 기간 동안 특단의 조치가 필요하다. 국민들은 대통령의 3대 덕목으로 소통 능력, 국가 경영 능력, 도덕성을 요구한다. 문 대통령은 무엇보다 폐쇄적 리더십과 만기친람의 국정 운영 스타일에서 벗어나 정책 능력을 제고해야 한다. 상황에 대한 정확한 판단을 통해 적기에 국민이 공감하는 최적의 정책을 내놓아야 한다. 집권 세력의 파탄 난 도덕성을 회복해야 한다. 이를 위해 문 대통령은 국민과 무한 소통을 하고 야당과의 협치 절벽에서도 벗어나야 한다.
문 대통령은 이번 신년 기자회견을 포함해 집권 4년여 동안 국민과의 소통은 6번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초라했다. 물론 소통 자체가 전부는 아니다. 대통령의 잘못된 인식과 정책 기조가 바뀌어야 비로소 소통이 시작된다. 국민들은 정부 정책의 성과 못지않게 국정 경영과 소통에 임하는 태도를 보고 신뢰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문 대통령은 집권 초기 ‘일자리 대통령’ ‘인권 대통령’ ‘페미니스트 대통령’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하지만 지금 그 명성은 무너지고 있다. 이를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국민의 절대 공감을 이끌어낼 수 ‘행동하는 소통’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