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안보 원로들이 위기의 한일 관계에 대해 적극적인 외교적 타결책 마련이 절실하다고 조언했다. 모테기 도시미쓰 일본 외무상이 지난 23일 서울중앙지법의 위안부 피해자 배상 판결이 확정된 것과 관련해 한국 정부 주도의 시정을 요구하면서 한일 관계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기 때문이다.
신각수 전 주일 대사는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부터 과거사와 협력을 분리하는 ‘투트랙’ 전략을 내세웠다. 그러나 화해치유재단을 해산해 한일 위안부 합의를 사실상 무력화시켰고 강제징용 관련 대법원 판결 이후 외교적 해법을 내는 데도 소극적 태도를 보였다”면서 “여기에 일본이 반발하면서 사실상 ‘원트랙’으로 바뀐 실정”이라고 진단했다. 신 전 대사는 “결국 관계 회복 여부는 우리 정부가 얼마나 적극적으로 피해자·지원단체 등과 협의해 실효적 해결 방안을 마련하는가에 달려 있다고 봐야 한다”면서 “이를 토대로 일본 정부의 협조를 얻어 특별 입법을 통해 외교적 타결을 보는 게 중요하다”고 제안했다.
김숙 전 유엔 대사는 “일단 양국 간의 성숙한 외교로 풀어나갔어야 하는데 외교가 실종되면서 이 결과로 이어졌다”면서 “그동안 시민 단체 움직임이 이 문제를 이끌어오다시피 했는데 정부의 역할이 시민 단체 역할보다도 못했고, 사법적 판단에 앞서서 정부가 나서서 외교적으로 대응을 못했다”고 질타했다. 이어 “(최근 사태에서 )일본이 역사적으로 가해자라는 점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원인(遠因) 이다. 하지만 근인(近因)으로는 우리에게 책임이 더 있다”며 “지난 몇 년간 한일 간의 역사 현안을 해결하는 데 있어 어떻게 우리가 잘못해 칼자루를 일본이 쥐게 하고 도덕적 우월성이 훼손되도록 했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윤병세 전 외교부 장관은 “1965년 수교 이래 한일 관계가 일시적으로 불편한 적은 많았지만 정부 임기 내내 불편하다가 최악까지 간 경우는 지금이 처음일 것”이라고 지적한 뒤 “현 정부는 남은 기간에 양국 정부와 국민이 신뢰를 회복할 수 있도록 진정성 있는 실질 조치를 강구해야 한다. 후임 정부와 미래 세대에 한일 관계 파탄이라는 엄청난 부담을 유산으로 넘겨서는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권영세 국민의힘 의원은 한국 정부가 미래지향적인 메시지를 내놓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권 의원은 “최근 박지원 국가정보원장이 일본에서 스가 요시히데 총리를 만났지만 눈에 뻔히 보이는 수법으로는 관계를 회복하기 어렵다”며 “위안부 합의를 엎은 것부터 강제징용 판결, ‘이번 총선은 한일전이다’는 20대 총선 슬로건까지 전부 국내 선거에 영향을 주기 위한 전략이었다”고 되돌아봤다. 이어 “한일 간 문제를 국내 정치에 이용하지 않겠다는 발언을 해야 한다”며 “이를 통해 미래지향적 메시지를 짚어줄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윤경환·김인엽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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