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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황실의 예술은 왜이렇게 크고 화려했나

美데이턴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

20세기 초 대한제국시기 작품으로 확인

호놀룰루미술관 소장 해학반도도와 함께

세상에 2점 뿐인 '금박' 해학반도도 병풍

20세기 초 우리나라에서 제작돼 미국인 소장가 손에 들어가 1941년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품이 된 금박 '해학반도도' 중 복숭아 세부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상서로운 푸른 구름이 피어난 바다 한가운데 괴석에 신비로운 학이 살포시 내려 앉았다. 그 왼쪽으로 세마리의 학이 한가롭게 노닌다. 붉은 해가 위용을 내뿜는 오른편에서 소나무를 가로지르며 또 다른 학이 날아오는 중이다. 그 아래로 탐스럽게 빛나는 열매는 3,000년에 한 번씩 달린다는 신선의 복숭아이며 장수의 상징인 ‘반도(蟠桃)’다. 이곳이 무릉도원, 이상향 아니겠는가.

‘십장생’의 소재 중 바다·학·반도를 그린 ‘해학반도도’는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크게 유행해 왕세자의 혼례 등 큰 행사 때 자주 사용됐다. 높이 210㎝, 폭 720.5㎝로 벽 하나를 꽉 채우는 그림 전체에서 찬란한 기운이 감도는 것은 가로·세로 3㎝의 얇은 금박 수백 장이 화면을 뒤덮었기 때문이다. 20세기 초 대한제국 황실에서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금박 해학반도도 병풍’이다.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한 금박 '해학반도도'가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후원으로 16개월의 복원을 거쳐 12폭 병풍의 원래 모습을 되찾아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선보였다. 이 유물은 2월10일까지 전시된 후 미국으로 돌아간다. /사진제공=문화재청


미국 오하이오주 데이턴미술관의 소장품으로 현존하는 ‘해학반도도’ 중 최대 크기이며, ‘금박’ 해학반도도 병풍으로는 하와이 호놀룰루미술관 소장품과 더불어 세상에 단 2점만이 확인된 귀한 유물이다. 국내에서 복원을 마치고 미국으로 되돌아가기 전 마지막 전시가 마침 2월 10일까지로 연장돼 지금 종로구 경복궁 내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을 통해 만나볼 수 있다.

미국 데이턴미술관이 소장한 '해학반도도' 중 학의 깃털 부분 세부 모습. /사진제공=문화재청


◇세 번 바뀐 국적=‘금박해학반도도’는 지난 1941년에 ‘18세기 일본 병풍’으로 데이턴미술관에 기증됐다. 기증자는 자신의 외삼촌이며 1912년 방한한 적도 있는 찰스 굿리치가 1920년대 후반에 구입해 응접실 한쪽 벽을 장식했던 유물을 물려받은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 동양미술사 전문가인 셔먼 리가 1958년 미술관을 방문해 “16~17세기 중국 작품으로 아름다우며 흔치 않다”고 평하면서 ‘중국’ 국적을 갖게 됐다. 2007년 도쿄대 동양문화연구소가 미국 내 중국회화를 일괄 조사할 때도 이 그림은 중국 것으로 책에 실렸다. 작품 규모가 너무 큰 데다 훼손도 심해 1950년 무렵 테이턴미술관 아시아실에서의 전시를 끝으로 수장고에만 있었으니 자칫 세상 빛을 못 볼 뻔 했다. 일본의 미술사학자 이도 미사토씨가 2017년 한국 미술사학자 김수진 성균관대 초빙교수에게 이 유물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까지는. 김 교수는 일본 전유물인 줄만 알았던 금박 장식의 대형 회화가 한국에서도 제작됐음을 밝혀낸 호놀룰루미술관의 ‘금박 해학반도도 병풍’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터였다. 데이턴미술관으로 가 유물을 확인한 김 교수는 “19세기 조선 왕실에서 유행한 ‘해학반도’의 주제가 일본 전통에서는 나오기 어렵고, 일본 병풍은 높이가 1m 안팎에 6폭을 한 쌍으로 만드는 게 전형인 것과 달리 2m를 웃도는 크기의 12폭 병풍 형식이며, 순금으로 2~3㎝ 크기의 금박으로 제작했다는 점 등을 통해 한국 작품임을 확인했다”고 말했다. 데이턴미술관은 2019년 미술관 100주년을 기념해 이 그림을 소개하고 싶었으나 훼손이 심각해 고민하던 중 국외소재문화재재단의 후원으로 복원의 기회를 얻었다. 약 100년 만에 고국에 돌아온 해학반도도는 고창문화재보존에서 16개월의 복원과정을 거쳐 서양주택에 걸 수 있게 6개 패널로 변형된 것을 원래의 12폭으로 바로잡고, 찢기고 지워진 부분을 보수해 전시장에 나왔다. 최응천 국외소재문화재재단 이사장은 “불법 반출, 도난문화재가 아닌 국외소재 문화재는 환수 대상이 아니라 현지에서 가치를 인정받는 우리 문화의 ‘외교사절’”이라며 “이를 위해 보존처리와 학술적 가치 재발굴을 지원했다”고 말했다.

국립고궁박물관의 특별전 '다시 날아오른 학'을 통해 국내 관람객에세 공개된 미국 데이턴미술관 소장의 20세기 초 한국 금박병풍인 '해학반도도' /사진제공=문화재청




◇화려함의 극치=일본회화에서는 금 함량이 낮은 금박을 사용한 것과 달리 한국의 ‘금박’은 순금이었다. 전시 중인 ‘금박 해학반도도 병풍’을 가까이서 들여다보면 결을 따라 올올이 그린 깃털이 몸체의 곡선을 따라 방향을 달리하는 구성이 감탄을 자아낸다. 학의 표현은 극도로 사실적인 반면 소나무·대나무·영지버섯 주변에 핀 작약·난초·들꽃은 서정적 분위기를 더한다. 그림이 제작되던 1900년대 초반은 대한제국 시기로,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 직전의 때다. 국운이 쇠락하던 때, 예술은 왜 이렇게 크고 화려했던 것일까?

김수진 교수는 “1905년 외교권 박탈 직전까지, 고종은 이 나라를 살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고 국가의 위엄을 강조했다는 것이 1901년은 진연과 진찬, 1902년의 두 차례 진찬 등의 행사에서 감지된다”면서 “호놀룰루미술관의 해학반도도는 ‘임인(壬寅)’이라 적힌 간지가 결정적 근거로 1902년 조선에서 만들어졌음을 확인시켰는데, 이 데이턴미술관 소장 유물도 비슷한 20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측된다”고 말했다.

금(金)병풍의 전통은 일본에서 시작됐지만, 조선 초기부터 일본의 외교 예물로 한반도에 전해졌다. 사치스럽다고 배척한 이도 있지만 정조의 수원 화성행궁에 “김홍도가 왜금병풍을 흉내 내서 그린 ‘금계화병’이 있다”고 적은 문헌도 전한다. 이것이 19세기 조선왕실에서 인기였던 ‘해학반도’의 주제와 결합해 20세기 초 전면 금박 병풍으로 발전했음이 유물로 확인된 셈이다. 김 교수는 “이렇게 크고 화려한 작품을 선보이면서 고종과 순종은 대한제국 황실이 건재함을 세계에 알리고자 했을 것”이라며 “우리 고유의 주제 ‘해학반도’를 일본의 기법, 서양식 건축에 걸맞은 규모로 구현하면서도 20세기 초반 대한제국의 미술에서 ‘금빛’이 가진 상징성까지 드러낸다"고 분석했다. 1908년 10월 ‘대한매일신보’에는 “태황제폐하(고종)께 바치기 위해 금병풍과 은솥을 제조하는 중”이라는 기록도 전한다.

단 한 점의 작품 뿐인 특별전이지만, 예술적 교류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발전시키며 ‘혼성’의 묘를 발휘하고 이것을 위태로운 시기에 어떻게 국가적 상징으로 활용됐는지를 가늠해볼 수 있는 뜻 깊은 자리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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