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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농담] 백신에 원전 건설, 北지원 논란 어디까지 가나

■윤경환의 국정농담(國政濃談)

이인영 이어 정세균도 "백신 남으면 북한 줄 수도"

논란 일자 "원론적 언급"...통일부 "공동대응 필요"

서욱 "한미훈련, 北과 협의 가능"...美, 전작권 이견

산업부 삭제 파일엔 北 원전 추진 문건 발견 '시끌'

김종인 "충격적 이적행위", 靑 "북풍공작 법적대응"

북미 탐색전, '남북의 시간' 추구 속 여론 변수 부각

2018년 4월 판문점 도보다리에서 대화를 나누는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 /연합뉴스




우리 정부의 대북 지원 구상을 둘러싼 논란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백신 제공, 한미연합군사훈련 협의를 거쳐 원자력발전소 건설까지 번지고 있다. 코로나19 백신의 경우 이인영 통일부 장관에 이어 정세균 국무총리까지 추후 북한에 제공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시사하며 입도마에 올랐다. 이 장관 개인의 의견인 것처럼 간주되던 구상이 더 상위 직급인 정 총리의 발언으로 힘을 얻은 모양새가 됐기 때문이다. 한미연합군사훈련 여부를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서욱 국방부 장관의 발언, 전시작전통제권 전환 시기를 둘러싼 한미 간 이견도 논란 거리로 떠오른 건 마찬가지이다. 여기에 월성 1호기 원전 감사 방해 혐의 등으로 기소된 산업통상자원부 공무원들의 삭제 자료 목록은 대북 지원 논란에 기름을 들이부은 꼴이 됐다. 북한에 원전을 건설하는 방안을 담은 것으로 추정되는 문건 이름이 공소장에 상당수 등장하면서 탈원전 시대를 사는 국민들의 혼란도 함께 커졌다. 아직 국제적인 대북 제재 국면이라는 점에서 정부가 이 가운데 명확하게 추진 의사를 드러낸 정책은 물론 없다. 다만 그간 우리 정부가 북한 김정은 정권에 일관되게 취해 온 유화적 태도 자체에 대한 불만이 결부되면서 비판 여론은 순식간에 불어난 분위기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본격적인 움직임과 4월 보궐선거, 내년 대선을 앞두고 국내 여론 추이가 우리 대북정책 설정에 새로운 변수가 될지 관심이 쏠린다.

정세균 국무총리. /연합뉴스


丁총리 “백신 남으면 北에 줄 수도”…가능성 열어

정 총리는 지난 27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가진 외신 기자 정책 토론회에서 “전 국민 백신 접종으로 집단 면역이 형성된 뒤 접종이 어려운 나라, 북한에도 제공이 가능한가”라는 질문에 “물량이 남는다면 제3의 어려운 국가 혹은 북한 등에 제공할 가능성을 닫아둘 필요는 없다”고 답했다. 정부 핵심인사가 북한에 코로나19 백신 지원 가능성을 공식적으로 거론한 건 이인영 장관에 이어 사실상 두 번째였다. 게다가 정 총리는 국정의 총괄 책임자라는 점에서 발언의 무게가 달랐다는 평가도 나왔다. 이 장관은 앞서 지난해 11월부터 “백신이 더 많이 개발·보급된다면”이라는 전제로 북한을 향한 코로나19 백신·치료제 제공 의사를 수 차례 밝힌 바 있다.

정 총리는 “(기존에 확보한) 5,600만 명분에 추가로 2,000만 명분의 계약이 된다면 이 백신 모두가 문제 없이 활용될 경우 물량이 남을 수도 있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이어 “9월까지 70% 국민 접종으로 보고 있어 요즘처럼 하루하루 급변할 때는 상황을 미리 예단하기 쉽지 않다”면서도 “가능성을 열어 놓고 고민하겠다”고 밝혔다.

정 총리는 또 북한이 세계보건기구(WHO)에 코로나19 확진자가 없다고 보고한 것에 대해서는 “지난해 내내 봉쇄를 철저히 한 것으로 안다”며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다. 이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그 동안 밝혀 온 입장과는 반대되는 의견이었다. 강 장관은 지난달 5일 바레인에서 열린 마나마 대화에서 “북한은 여전히 코로나19 확진자가 전혀 없다고 주장하지만 믿기 어렵다”며 “모든 신호는 북한 정권이 코로나 통제에 집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이상한 상황”이라고 지적한 바 있다. 이에 김여정 북한 노동당 부부장은 같은 달 9일 담화를 내고 “주제넘은 평”이라며 “우리는 두고두고 기억할 것이고 아마도 정확히 계산돼야 할 것”이라고 맹비난했다.

정 총리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답방 약속을 두고도 “여전히 유효하다”며 “현 정부 내에 할 수 있으면 좋은 일”이라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 /연합뉴스


논란 일자 “원론적 언급”... 통일부 “남북 공동대응 꼭 필요”

정 총리와 이 장관이 코로나19 백신 대북 지원 가능성을 거론한 건 교착 상태에 빠진 현 남북관계의 물꼬를 어떻게든 터 보겠다는 메시지로 해석됐다. 하지만 우리 국민조차 아직 접종을 시작하지 않은 상태에서 대북 지원을 염두에 두는 게 맞느냐는 비판의 목소리도 온·오프라인을 막론하고 곳곳에서 제기됐다. 우리 국민이 집단 면역을 형성하고 북한이 전향적으로 태도를 바꾼 뒤 고민해도 늦지 않는다는 지적이었다. 세금으로 산 백신을 별다른 국민적 합의 절차도 없이 북한에 건네줄까 우려하는 반응도 많았다.

총리실은 다만 논란이 일자 이후 해명 자료를 통해 “코로나19 상황이 어려운 국가들을 돕기 위한 인도적 차원에서의 원론적 언급이었다. 아직 정부 내에서 검토된 바 없다”며 진화에 나섰다. 통일부 당국자는 28일 “코로나19와 같은 감염병 문제는 북한은 물론 우리 국민의 생명과 안전 보장을 위해 남북간 공동대응이 반드시 필요하다는 입장”이라면서도 “다만 현 단계에서 대북 백신 지원 관련 정부 내 구체적 협의를 진행한 바 없다”고 대응했다. “아직 구체적으로 검토하거나 협의한 바는 없다”고 밝혔지만, 앞으로 추진하지 않겠다는 말도 하지 않은 것이다.

현재 북한은 우리 정부의 백신 협력 제안에 대해 미온적인 반응을 보이고 있다. 지난 9일 조선중앙통신에 따르면 김정은은 이달 5∼7일 진행된 당 대회 사업 총화 보고에서 우리 정부가 제시한 방역협력, 인도협력, 개별관광을 두고 “비본질적인 문제”라며 무시했다. 금강산 개발도 독자적으로 진행하겠다는 의사를 분명히 했다.

북한이 ‘본질적 문제’로 언급한 건 한미연합군사훈련 중단이었다. 김정은은 “남조선 당국은 첨단 군사 장비 반입과 미국과의 합동 군사 연습을 중지해야 한다는 우리의 거듭되는 경고를 계속 외면하면서 조선 반도의 평화와 군사적 안정을 보장하는 데 대한 북남 합의 이행에 역행하고 있다”며 “남조선 당국의 태도 여하에 따라 다시 3년 전 봄날로 돌아갈 수 있다”고 압박했다.

서욱 국방부 장관. /연합뉴스


서욱 “한미훈련, 北과 협의 가능”…美는 전작권 조기 전환 반대

이런 상황에서 서욱 국방부 장관은 한미연합군사훈련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문재인 대통령의 의중을 주무 부처로서 재확인했다. 서 장관은 27일 서울 용산구 국방부 청사에서 가진 신년 기자간담회에서 3월 초로 예정된 연합훈련에 대해 “훈련을 실시한다는 생각으로 한미연합사령부와 시행 방법을 긴밀히 조율하고 있다”며 “코로나19 상황을 고려해 (훈련) 공간을 여러 셀(구역)로 나누거나 조 편성을 하는 등 운용의 묘를 발휘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지난해 하반기 연습도 (코로나19를 고려해) 상당 부분 조절해 시행한 바 있다”며 올해 전반기 훈련도 지난해 하반기처럼 축소 실시할 수 있음을 시사했다.

서 장관은 무엇보다 문 대통령이 신년 기자회견에서 “남북군사공동위원회를 통해 연합훈련을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고 언급한 것을 두고 “(문 대통령이 북한과) 협의할 수 있다는 원칙적 얘기를 한 것으로 나 역시 협의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며 “북한의 눈치를 보는 것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서 장관은 그러면서 연합훈련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전시작전통제권 조기 전환 방침도 재강조했다. 그는 “내 재임 기간에 전작권 전환을 위해 진전된 성과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며 “우리는 (한국군이 주도하는 미래연합사령부의 2단계 검증평가(FOC)를) 이른 시일에 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28일(현지시간) 서 장관 발언과 관련해 “전작권은 상호 합의한 조건이 완전히 충족될 때 전환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미국 국방부는 특히 “특정한 시점에 대한 약속은 우리의 병력과 인력을 위험에 빠뜨릴 것”이라며 ‘적어도 전환 연도는 합의하자’는 우리 측 입장에 사실상 반대 의사를 표명했다. 또 “우리는 군사훈련과 연습의 가치를 잘 알고 있다”며 정상적 훈련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하는 듯한 입장을 냈다.

백운규 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연합뉴스


탈원전 중 北에는 원전 추진? 산업부 삭제 파일도 논란

우리 정부의 대북 전략 논란을 둘러싼 논란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았다. 탈원전 정책에만 관계된 줄 알았던 월성 1호기 원전 관련 산업부 감사 방해 사건이 뜻하지 않게 대북정책의 또 다른 뇌관으로 떠오른 것이다.

SBS가 28일 공개한 산업부 공무원들에 대한 공소장에 따르면 이들이 몰래 삭제한 것으로 의심받는 원전 관련 530건 자료 목록에는 청와대 협의·보고 문건이 여럿 포함됐다. 산업부는 2018년 5월23일 ‘BH(청와대)’를 제목에 명시한 파일을 작성했는데, 파일을 복구한 검찰은 공소장에 “6월15일 한국수력원자력 이사회가 월성 1호기 조기 폐쇄와 즉시 가동중단을 결정할 예정”이라는 내용이 담겨 있다고 밝혔다. 월성 1호기에 대한 경제성 평가 최종안도 나오지 않은 데다 한수원 이사회도 열리기 전이었다. 삭제된 파일 중에는 ‘원전 반대 시민단체 동향’을 담은 문건도 있던 것으로 전해졌다.

특히 이 가운데는 ‘북한 원전 건설 및 남북 에너지 협력’ 관련 문건 등 북한에 원전을 지원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으로 추정되는 파일도 상당수 있었다. 이들은 ‘60 pohjois’라는 상위 폴더 밑에 있었는데, ‘pohjois(뽀요이스)’는 핀란드어로 ‘북쪽’이라는 뜻이다.

60 pohjois 폴더 밑에는 ‘북한 원전건설 추진방안’의 약자로 보이는 ‘북원추’ 폴더가 있었다. 이 안에는 ‘북한지역 원전건설 추진방안’ ‘북한 전력산업 현황 및 독일 통합사례’ ‘북한 전력 인프라 구축을 위한 단계적 협력 과제’ 등의 파일이 들어 있었다. 2018년 1차 남북정상회담과 2차 남북정상회담 사이인 2018년 5월에 작성된 것으로 파악되는 파일들이었다.

이를 두고 우리 정부가 향후 대북 제재 해제를 염두에 두고 북한 원전 건설 지원을 준비한 게 아니냐는 의혹이 곧장 일었다. 국내 탈원전 정책과 모순이라는 지적도 제기됐다. 김종인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은 29일 "문재인 정부가 대한민국 원전을 폐쇄하고 북한에 극비리에 원전을 지어주려 했다. 정권의 운명을 흔들 수 있는 충격적인 이적 행위"라고 주장하기도 했다.

강민석 청와대 대변인은 같은 날 김종인 위원장 을 향해 “북풍 공작과도 다를 바 없는 무책임 발언이며 묵과할 수 없다. 정부는 법적 조치를 포함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고 강하게 반발했다. 산업부도 북한 원전 관련 검토를 지시하거나 보고하라고 한 적은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 통일부 당국자는 “2018년 이후 남북협력사업으로 북한 지역 원전 건설 추진한 사례는 없다”고 강조했다. 당시 청와대 국정기획상황실장이었던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역시 페이스북에서 "세 차례의 남북정상회담과 교류 협력사업 어디에서도 북한의 원전 건설을 추진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윤건영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남북의 시간’ 추구 가능성… 국내 여론, 변수로 부각

상당수 전문가들은 문 대통령의 임기가 1년 남짓 남은 데다 미국 바이든 정부의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수용 여부가 불투명한 점까지 감안할 때 우리 정부가 당분간 독자적인 ‘남북의 시간’을 추구할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북미대화의 당사자인 북한과 미국은 협상판 설정을 위해 한 동안 치열한 탐색전을 이어갈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셉 윤 전 미국 국무부 대북정책특별대표는 27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와 아리랑TV가 주최한 화상 대담에서 “한국 정부가 이야기해 온 평화선언과 같은 것은 ‘주고받기’가 있어야 한다고 보는 미국 입장에서는 좀 받아들이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북한이 최소한 핵·미사일 프로그램 동결의 초기 단계를 밟을 준비를 해야 미국이 대응할 것”이라며 “바이든 행정부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CVID) 개념을 고수하는 것은 애당초 성공할 가능성이 없는 일(non-starter)”이라고 강조했다. 미국 의회 산하 초당적 기구인 ‘톰 랜토스 인권위원회’의 공동위원장이었던 공화당 소속 크리스 스미스 하원 의원실은 우리 정부의 대북전단살포금지법 문제를 두고 28일(현지시간) “2월 말이나 3월 초에 청문회 관련 내용을 밝힐 수 있을 것”이라고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다.

북한 김정은에 대한 충성 체제가 아직 덜 공고하게 갖춰졌다는 우회적 신호도 나왔다. 지난 25일 정보 소식통에 따르면 북한의 류현우(한국 이름) 전 쿠웨이트 주재 대사대리는 지난 2019년 9월 가족과 함께 한국에 입국했다. 그는 2017년 9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의 대북제재 결의 채택 후 서창식 당시 주쿠웨이트 북한 대사가 추방되면서 대사대리를 맡았던 인물로 알려졌다. 류 전 대사대리는 특히 김정은의 통치자금을 마련하는 노동당 39호실의 전 수장, 전일춘의 사위인 것으로 전해졌다.

다만 정관계 일각에서는 보궐선거와 대권 일정을 고려할 때 정부와 여권이 국내 여론을 완전히 무시한 채 ‘남북의 시간’만 추구하기는 힘들 것이란 의견도 나온다. 김정은 정권의 호응이 있어도 여론이 갈리는 판에, 북측의 반응도 없는 대북 지원 시도는 불필요한 반감만 살 수 있다는 점에서다.

※‘국정농담(國政濃談)’은 행정·외교안보·정치 관련 ‘농도 짙은’ 현장 이야기와 현안 소식을 전달하는 코너입니다.



/윤경환 기자 ykh22@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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