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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방이 우선인데 처벌에만 초점…징역형보다 벌금으로 전환해야"

[대법 '산안법 양형 기준' 공청회]

■양형위에 쏟아진 우려 목소리

안전 개선 조치한 사업주는 감형 등 보호장치 필요

정치권 중대재해법 강행…'이중·삼중 규제'로 꼬여

'산업 범죄는 기업 범죄'로 보는 서구 모델 참고를


대법원 양형위원회의 산업안전보건법 양형 기준 강화 움직임에 학계와 업계 등 전문가들이 우려를 쏟아낸 것은 지난해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면서 산업안전보건정책이 꼬일대로 꼬여버렸기 때문이다. 애초 체계가 명확히 규정된 산안법의 양형기준을 높여 경영 불확실성을 낮추고 안전을 도모하는데서 멈춰야 했지만 정치권이 중대재해법을 밀어붙이며 ‘이중 삼중 규제’가 돼버린 형국이다.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진 산안법 양형 기준 강화=실제 5일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주최한 공청회에서는 산업 현장의 안전성 확보라는 본래 취지와 달리 사업주 처벌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형벌의 형사책임주의 원칙과도 맞지 않고 보여 주기식으로 사업주에 대한 기소만 남발될 수 있는 만큼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도 새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대법원 양형위가 추진 중인 산안법 수정 양형 기준은 안전·보건 의무를 다하지 않아 근로자가 사망한 경우 사업주에 대해 최대 10년 6개월의 징역형 선고가 가능하도록 했다. 이 같은 처벌은 형벌의 책임 원칙에 맞지 않는다는 것이 법조계의 지적이다. 이날 온라인으로 열린 양형위원회 공청회에서 이근우 가천대 법학과 교수는 “산안법상 의무를 지게 되는 사업주를 처벌할 때 법률상 열거된 모든 의무가 구별 없이 모두 처벌 기준이 될 수 있다”며 “적어도 사업주의 업무상 중과실에 해당하는 위반이 있을 때만 지금의 법정형이 적용돼야 책임 원칙에 비춰 정당화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산업 현장의 안전성 확보를 위해 노력한 사업주에 대한 법적 보호 장치가 없는 점도 산안법 양형 기준의 문제로 지적된다. 양형위는 지난 1월 산안법 양형 기준을 강화하면서 기업이 거액의 공탁금을 낼 경우 형량을 깎아주는 감경 요인을 삭제하기로 했다. 하지만 이 경우 사고로 피해를 입은 노동자는 보상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사업주도 구속돼 기업 경영에 공백이 생기는 등 모두가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할 수 있다. 이와 관련, 이 교수는 “사업주가 의지를 갖고 작업 환경 개선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사고가 나면 특별 감경 인자로서 추가할 필요성이 없는지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적 처벌이 아니라 산업 현장의 안정성 확보라는 실효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업 특성에 따라 천차만별인 현장의 안정성 규칙도 산안법 양형에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산안법 발의 때부터 경영계에서 업종별로 안전 규칙이 달라 일괄 적용이 힘들다는 지적이 나왔기 때문이다. 이 교수는 “현 산안법 체계에서는 너무 많은 세부적 주의 의무가 존재한다”며 “일단 결과가 발생해 조사와 수사가 진행되면 수백 건의 의무 위반이 적발될 수 있다”고 밝혔다.



산안법 위반이 현장에서 발생할 경우 특정인의 과실이 아니라 기업 범죄의 특성이 큰 만큼 사업주 구속으로 문제를 풀 수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공청회에 패널로 참석한 전형배 강원대 로스쿨 교수는 “산업 범죄를 기업 범죄로 보는 것은 먼저 산업화를 이룬 서구 국가에서 일반적으로 통용되는 견해”라고 지적했다. 실제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사업주가 산안법상 안전·보건 의무 조치를 이행하지 않아 치사 범죄가 발생할 시 일본은 징역 6개월, 미국이나 프랑스도 고의 반복일 경우에만 징역 6개월을 선고할 수 있다. 한국처럼 사업주에 대한 과중한 징역형보다 대부분 기업이 벌금을 무는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꼬여버린 산업안전 정책=애초 고용노동부는 지난해 이천 물류 창고 화재 사고 이후 산업안전 정책을 추진하면서 산안법의 양형 기준을 상향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추가하는 방안을 검토했다. 당시 민주노총을 중심으로 주장했던 중대재해법 제정은 과도한 규제라고 본 것이다.

2018년 12월 산안법이 전체 개정(일명 김용균법)되면서 산업안전 의무가 원청까지 확대됐고 징역형 기준도 상향돼 추가 처벌 조항을 두기는 어렵다는 점, 중대재해법 제정으로 또 다른 산업안전 기준을 도입하면 다중 규제가 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다. 다만 산업재해로 사망 사고가 이어지는 이유는 산업안전에 투자하는 비용이 사망 사고 발생으로 치러야 하는 비용보다 적기 때문이라고 판단해 ‘징벌적 손해배상 규정’을 추가하는 것이 옳다고 봤다.

실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지난해 6월 김영란 대법원 양형위원장을 만나 산안법의 ‘산재 사망 사고 양형기준 상향’을 요청하며 정부의 방향대로 가닥이 잡히는 듯했다. 하지만 지난해 12월 중대재해법이 제정되며 정책 방향이 꼬여버렸다. 산안법에 더해 이중 규제가 생긴 데다가 입법 절차가 워낙 졸속으로 이뤄진 탓에 내년 시행을 앞두고 기준을 잡기도 어렵다.

/이경운 기자 cloud@sedaily.com, 세종=변재현 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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