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사표를 던진 여야 예비 후보들이 무수한 공약을 만들면서 가장 공을 들인 분야는 다름 아닌 부동산이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에 대한 불만이 커질 대로 커진 상황에서 ‘부동산 민심’을 잡지 못하면 선거에서 질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서다. 이에 따라 여야 후보들은 부동산 관련 공약을 앞다퉈 내놓고 있다. 하지만 정치 평론가들은 부동산 공급 정책은 최소 5~6년 이후에 가시화될 수 있는 만큼 여야 후보들의 공약 실현 가능성을 짚어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재건축·재개발, 모두가 찬성=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국민의당·열린민주당 주요 후보들 가운데 재건축·재개발에 총론 수준에서 반대하는 후보는 단 한 명도 없다. 다만 각론으로 들어가면 얘기는 달라진다. 우선 범여권 후보의 경우 ‘조건’을 붙인 찬성 공약이 많다. 우상호 민주당 의원은 ‘강북 우선’,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은 ‘공공 커뮤니티 개념 접목’, 김진애 열린민주당 의원은 ‘공익적’ 재건축·재개발을 강조하고 있다.
반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나경원 전 국민의힘 의원, 오세훈 전 서울시장 등 야당 후보들은 과도한 재건축·재개발 규제가 공급 확대를 가로막고 있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재건축·재개발 활성화에 총력을 쏟겠다는 입장이다. 안 대표가 성북구 재개발 시급 지역, 나 전 의원이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강남구 은마아파트를 최근 찾은 것도 이 같은 맥락에서다.
◇與, 공공 주택 공급이 승부수=박 전 장관은 5년 내 공공 분양 주택 30만 가구 건설, 우 의원은 같은 기간 동안 공공 주택 16만 가구 공급 공약을 내놓았다. 토지 임대부 혹은 시유·국유지 활용 방식을 채택하면 반값 아파트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게 박 전 장관의 주장이다. 우 의원은 16만 가구 공급을 위해 강변북로와 올림픽대로 등에 덮개를 씌워 대지를 만들겠다는 구상도 밝혔다.
여당 후보들의 이 같은 공약에 대해 야당 후보들은 현실성이 떨어진다며 날을 세우고 있다. 오 전 시장은 박 전 장관 공약과 관련해 “토지 임대부 방식이라고 이야기를 했는데 서울에 그런 빈 땅이 없다는 사실도 모르고, 있다고 하더라도 국공유지가 있어야 토지 임대부 분양이 된다는 사실도 모르고, 그리고 그 규모도 지나치게 많다”고 지적했다. 나 전 의원은 우 의원의 ‘강변북로 위 공급’ 공약에 대해 “그게 되겠느냐”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野, 규제·세금 완화 한목소리=야당 후보들은 규제 및 세금 완화에 초점을 맞추는 상황이다. 실제 안 대표는 부동산 세금 인하, 무주택 실수요자에 대한 각종 규제 완화 등을 공약으로 내놓았다. 구체적으로 지나친 대출 제한을 풀고 양도소득세와 1주택자의 취득세와 재산세를 인하하겠다는 방침이다. 나 전 의원은 분양가상한제 폐지와 재산세 50% 감면, 종합부동산세와 양도세 인하 등을 내걸었다. 서울시장의 권한으로 실현할 수 없는 공약은 국회를 설득해 이행하겠다는 게 야당 후보들의 설명이다.
전문가들은 서울시장 후보들의 부동산 공약에 대해 혹평을 내놓았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 회장(경인여대 교수)은 “실현 가능한 공약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다”며 “서울은 공공 주택 공급을 수십만 가구씩 할 만큼 공공 용지가 많지 않고 재건축·재개발 규제 완화도 중앙정부의 방침과 어긋나면 서울시장은 용적률 및 층수 제한 완화밖에 할 수 없다”고 지적했다. 이어 “종부세·양도세 완화도 서울시장의 권한 밖”이라며 “서울시장 후보들이 표를 얻기 위해 마치 대선 주자들처럼 공약을 내놓았다”고 꼬집었다.
/임지훈 기자 jhl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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