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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중열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디자인팀장 "시간을 이길 수 있는 디자인이 성공비결”

[이사람-최중열 삼성전자 가전사업부 디자인팀장]

디자이너 중용하는 삼성전자 입사

TV 디자인 주로 맡아 히트작 내놔

유럽디자인연구소장 등 역임하며

실무 넘어 기획까지 두루 역량 쌓아

집서 즐기는 '홈덜전스' 트렌드 예측

기능·외관 중심 기존 디자인 벗어나

공간에 녹아드는 비스포크 가전 선봬

1년만에 누적 출하량 100만대 '대박'





예상치 못한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전 세계를 휩쓴 지난 한 해 가전 업계는 때 아닌 특수를 누렸다. 인류는 타인과의 접촉을 줄여야 감염 확률을 낮출 수 있기에 가장 ‘안전한 공간’인 집으로 파고들었다. 그 결과 집을 채우고 있는 가전을 교체하거나 새롭게 구입하려는 이들이 폭발적으로 늘었다. 특히 한국에서는 그간 ‘인테리어 파괴자’라는 불명예를 안고 부엌이나 거실 구석에 숨겨져 있던 가전의 대변신이 소비 트렌드를 주도하는 키워드로 떠올랐다. 과거 백색가전으로 불렸던 가전들이 한때의 꽃무늬와 메탈을 거쳐 소비자의 취향대로 외관을 바꾸고 조합할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외관만 달라진 것은 아니다. 부엌장보다 깊어 툭 튀어나왔던 냉장고가 슬림해지고 식기 세척기와 오븐·인덕션 등 주방을 채우는 여러 가전이 마치 주문 제작을 한 듯 통일성을 지니고 인테리어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기존 공간에 위화감 없이 어울리는 가전을 바랐던 소비자들은 환호했다. 지난 2019년 하반기에 처음 나온 이 제품은 1년여 만에 누적 출하량 100만 대를 기록했을 정도로 높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이처럼 국내 가전 시장의 흐름을 완전히 바꾼 시도는 한 가전 회사의 냉정한 상황 판단에서 출발했다.

“많은 소비자들이 ‘가구를 들인다’고 표현하고 구입 전에 여러 번 고민하죠. 반면 가전은 기능을 따진 후 그냥 ‘샀다’고 합니다. 여러 달 품고 있다 출산하는 아이와도 같은 우리 제품이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는 현실이 너무 슬펐어요. 가족으로 입양하는 반려동물처럼 소중하게 여겨지는 가구와 달리 부엌장이나 빌트인 처리로 외관을 숨겨야 하는 존재라는 걸 바꿔보고 싶었죠.”

2일 경기도 수원시 삼성전자 본사에서 만난 최중열 생활가전(DA) 사업부 디자인팀장(전무)은 이렇게 말하며 밀레니얼의 취향을 저격한 가전 라인업 비스포크(BESPOKE)의 출발을 회상했다. ‘취향가전’이라는 수식어와 함께 나타난 비스포크는 2019년 한국에서 출시됐지만 디자인 아이디어는 2008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전자가 신제품 개발을 위해 실시한 선행 디자인 연구에서 키워드로 꼽힌 단어는 다름 아닌 ‘홈덜전스(homedulgence)’. 경제위기가 만들어낸 신조어인 이 단어는 ‘집에서 즐긴다’는 의미로 사람들이 경제위기를 버텨내기 위해 짠돌이 생활을 한다는 뜻에서 출발했지만 점차 밖보다는 집에 머무르며 자신의 공간에 애착을 가진다는 의미까지 확장됐다.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로서 가전을 기획하다

10여 년에 걸쳐 한국에 이식된 홈덜전스 트렌드는 삼성전자 디자인팀의 손끝에서 완성된 비스포크 가전의 성공으로도 증명된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은 삼성 역시 예상치 못한 변수였지만 더욱 빠르고 강력하게 사람들을 집에 묶어두는 역할을 하기도 했다. 경쟁사인 LG전자가 2020년 하반기에 초프리미엄을 지향하는 오브제 컬렉션에서 인테리어와의 조화를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신규 가전 라인업을 선보인 것도 여태껏 ‘가전 후발 주자’로 취급 받던 삼성전자에 통쾌한 성과였다.

최 전무는 “홈덜전스 트렌드를 예측하기 전까지만 해도 가전을 디자인할 때 제품 자체의 기능이나 외관에만 집중했다”면서 “그러나 이후부터는 건축과 인테리어·가구 등 공간을 채우는 콘텐츠를 고민하는 가전 디자인을 선보이게 됐다”고 말했다. 가전을 보다 넓은 시야로 해석하려는 최 전무의 시도는 현재진행형이다. 비스포크 라인업의 시작이었던 냉장고는 이제 주방을 뛰어넘어 에어컨과 에어드레서·공기청정기까지 확장됐다. 하지만 비스포크를 준비하면서 이 같은 ‘대박’ 성공을 확신하지는 못했다고 최 전무는 솔직히 털어놓았다. 그는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디자인 방식이라 두려움이 있었죠. ‘이게 맞을까’하는 걱정도 있었고요. 하지만 김현석 소비자가전(CE) 부문 대표이사의 강력한 드라이브 덕분에 제품의 탄생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삼성전자 DA사업부 디자인팀은 비스포크의 첫 제품이었던 냉장고를 위해 10명 이상의 디자이너가 매달렸다고 했다. 그들은 1년 넘게 내외부 디자인을 고민하고 검토하면서 양산 가능한 제품 디자인을 완성해냈다. 그 과정에서 최 전무가 디자이너들과 공유한 제1원칙은 바로 시간의 무게를 이겨낼 수 있는 디자인이었다. 소비자가 가전을 구입한 뒤 외관에 싫증이 나면 기기 외부 패널의 색상과 패턴을 바꿀 수 있는 비스포크의 특징도 여기서 출발했다. 또한 신혼부부나 밀레니얼 세대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가격대의 소재를 선택해 타깃층을 확대한 것도 비스포크의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최 전무는 “누구나 아름다운 디자인을 즐길 수 있게 한다는 디자인 민주주의, 즉 데모크라틱 디자인 철학을 염두에 두고 비스포크 제품 디자인을 고려했다”고 설명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소년…TV 디자이너로 성장하다

28년차 디자이너인 최 전무는 서울대 미술대에서 학부(공업디자인)와 석사(제품디자인)를 마치고 곧바로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굉장히 좋아했다”는 최 전무는 “순수 미술도 물론 좋았지만 창조적 활동의 결과를 여러 사람들이 향유하는 것이 더 즐거웠고 행복했다”며 전공을 디자인으로 삼은 이유를 떠올렸다. 대학원 졸업과 취업을 앞두고 진로를 어느 방향으로 잡아야 할지 고민했던 그는 마지막 학기가 시작된 1993년 동기인 박승민 고려대 교수가 “같이 지원해보자”고 권유한 삼성 디자인 멤버십에 합격하며 삼성맨의 운명을 맞이했다.

“그때 가고 싶은 회사가 자동차 회사 두 곳과 전자 회사 두 곳 정도 있었어요. 그런데 젊은 디자이너들에게 창조적 디자인을 실험해볼 기회를 많이 주겠다고 약속하는 삼성 디자인 멤버십 공고를 보고 솔깃했던 거죠. 박 교수와 함께 지원하고 둘 다 합격해 반 년 정도 활동한 뒤에 저는 삼성전자에 입사했어요.” 아름답게 마감 처리된 제품이나 영롱한 빛을 반사하는 금속의 광택면을 보며 희열을 느꼈던 ‘미대생’ 최 전무가 삼성전자에 터를 잡게 된 것은 젊은 디자이너를 중용할 줄 알았던 삼성전자의 혜안 덕분이었던 셈이다. 삼성 디자인 멤버십 프로그램은 삼성전자에서 실험적으로 디자인 관련 학생에게 자유로운 창작 기회를 부여하기 위해 만든 산학 연계 프로그램으로 20여 년이 지난 지금도 활발하게 운영되고 있다.

입사 이후 그는 당시 VD사 소속 디자이너로 컬러TV 디자인을 주로 맡았다. 이후 삼성전자 유럽디자인연구소에 파견돼 독일 현지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낸 브라운관 컬러TV가 수백만 대나 팔려나가는 성과를 올리기도 했다. 가전 업계에서 통상 TV 제작을 위해 금형을 한 번 제작하면 30만 대 정도를 판매하는데 그가 디자인한 TV는 그 금형을 7번이나 다시 만든 히트 상품이었다. 2001년에 유럽디자인연구소 소장을, 2007년에는 디자인경영센터 CNB그룹장을 맡으며 디자인 실무는 물론 기획까지 두루 섭렵하게 됐다. 특히 디자인경영센터에서는 기업 전략 차원에서 역점을 두는 선행 디자인 연구에 힘을 썼다. 지금 소속된 CE 부문에는 2010년에 넘어왔다.

“韓 젊은 디자이너들, 새로운 디자인 강국 만들어 낼 것”

유럽디자인연구소장으로 재직하던 시절 가족과 영국에 머물렀던 그는 어린 딸들이 현지 학교에서 다양한 체험과 수업을 통해 디자인의 기본 개념을 배우는 것을 보고 ‘디자인 강국’으로 불리는 영국의 힘을 체감했다고 회상했다. 딸이 가져온 디자인 수업 교재는 마치 디자이너의 샘플북처럼 실생활에서 접하는 여러 소재를 작게 잘라 붙여놓았다. 아이들이 직접 만지고 느끼며 금속이나 천·고무 등 다양한 소재만이 가진 물성을 자연스럽게 익힐 수 있도록 해둔 것이다. 이처럼 탄탄한 기반에서 자란 그들의 디자인이 한국보다 뛰어난 것은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는 생각에 그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하지만 지금 최 전무는 “한국 디자이너들이 이미 유럽과 미주 디자이너들을 추월했다”고 말한다.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기술적 한계를 디자인으로 뛰어넘는 후배 디자이너들의 저력을 높이 샀다. “여전히 한국의 디자인 환경은 척박하지만 적어도 산업 디자인 분야에서는 제조업 기반이 탄탄한 한국 디자이너들이 몇 배는 더 실력이 좋다”며 “양산 가능한 제품을 디자인할 수 있는 능력은 실전이라고 할 양산품 개발 과정에서 쌓이게 되는데 한국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이 기회를 더 자주 접하고 치열하게 경쟁하기 때문에 글로벌 시장에서 더욱 두각을 나타내는 것 같다”고 설명했다.

/이수민 기자 noenem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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