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중은행의 수수료 순익이 5년 만에 뒷걸음질쳤다. 라임·옵티머스 펀드, 해외 파생결합펀드(DLF) 사태로 투자자가 은행을 통한 펀드 투자를 기피했고 은행들도 감독 당국의 고강도 징계에 따라 판매 자체를 꺼린 탓이다. 올해도 수수료 수익이 반등할 가능성이 낮아 은행 전체 수익에 경고등이 켜졌다.
3일 은행연합회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말 현재 시중은행 수수료 순이익은 3조 2,220억 원으로 전년에 비해 1,474억 원(4.4%) 줄었다. 수수료 감소는 지난 2015년(-1.0%) 이후 5년 만이고 하락률은 2012년(-7.3%) 이후 8년 만에 가장 컸다. 통계는 국민·신한·하나·우리·SC·씨티은행을 대상으로 작성됐다.
그동안 은행들은 “예금과 대출 금리 차이라는 손쉬운 방법만으로 수익을 내고 있다”는 비판에 수수료 수익을 늘리는 데 집중해왔다. 초저금리가 ‘뉴 노멀’로 자리잡으면서 예대 금리 차이로 인한 수익도 줄자 공모·사모펀드와 신탁을 팔고 보험 상품을 취급하는 ‘방카슈랑스’도 늘렸다.
하지만 2019년 말 DLF 대규모 환매 중단 사태가 터진데다 라임 펀드 판매 등으로 은행장까지 금융 당국의 중징계 위기에 놓이면서 이 같은 움직임에 제동이 걸렸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은행에서 판매한 사모펀드 잔액은 올해 1월 말 현재 18조 7,434억 원으로 1년 새 5조 8,981억 원(23.9%)이나 급감했다. 전체 사모펀드 판매 잔액 중 은행에서 판매된 비중 역시 4.29%(1월 말 기준)를 기록하며 최고치였던 2018년 6월(8.19%)에 비해 반토막 났다. 구체적으로 신한은행의 지난해 펀드 판매 수수료 이익은 885억 원으로 1년 새 19% 감소했고 우리은행 펀드 판매 수수료 이익 역시 540억 원으로 1년 새 40% 급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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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 당국이 은행의 신탁 판매에 규제를 가한 것도 지난해 은행 수수료 수익이 줄어든 주요 원인이었다. 당국은 2019년 DLF 사태가 터지자 이와 연관된 주가연계신탁(ELT)을 고위험 상품으로 분류하고 은행이 2019년 11월 말 잔액인 34조 원 이상으로 상품 판매를 하지 못하게 총량 규제를 했다. 이에 지난해 KB·신한·하나·우리 등 4대 은행의 신탁 수수료 수익은 6,380억 원으로 1년 새 31.8%나 급감했다.
구본성 금융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은행에서의 펀드 판매와 관련된 투자자 보호조치가 강화하면서 은행 부담이 늘어났고 개인도 직접 자본시장에 투자하는 현상이 은행 수수료 수익 감소로 이어졌다”고 짚었다. 그는 “은행들이 강화된 규제에 맞춘 투자 상품을 개발하는 데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종합 자산 관리가 중요해지는 시점인데 은행이 관련 상품을 내놓기까지도 일정 기간이 필요해 수수료 수익은 당분간 정체되거나 위축될 가능성이 높다”고 내다봤다.
은행권의 근심도 깊다. 시중은행의 한 관계자는 “수수료 수익 감소에다 올해는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도 강화될 예정이어서 공격적으로 대출을 늘릴 수도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4대 금융지주의 당기순이익은 ‘동학 개미 운동’에 따른 증권사 수수료 수익 증가로 불어났지만 은행만 놓고 보면 7조 7,493억 원으로 5년 만에 감소했는데 올해도 녹록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은행권의 사모펀드 판매가 줄면서 자본시장 활성화에 제약이 되고 있다는 지적도 있다. 김대종 세종대 교수는 “은행이 펀드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인지했음에도 계속 판매를 하는 등 소비자 신뢰를 잃은 결과”라면서도 “그렇다고 과도한 규제를 해 은행을 통한 사모펀드 등 금융 투자를 막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태규 기자 classic@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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