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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休-제천 배론성지] 울림의 땅, 박해 피해 숨어든 산골 '천주교 요람'으로

최양업 신부 묘·최초의 신학교 터 자리





충북 제천 배론성지는 한국 천주교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는 성지이자 신앙촌이다. 초창기 수많은 천주교인들은 박해를 피해 배론(排論) 산골로 숨어들어 옹기 장사로 근근이 생계를 유지하며 신앙을 지켜왔다. 그 순교자들의 묘와 기록물이 이곳에 남아 박해 당시의 상황과 함께 한국 천주교의 뿌리와 문화적 토양을 엿보게 해준다.

배론성지는 조선 후기 천주교도인 황사영(1775~1801)이 피신한 곳이다. 배론으로 피신 온 그는 토굴에서 당시의 박해 상황과 천주교 신도의 구원을 요청하는 문서를 작성했다. 베이징 주교 구베아 신부에게 전달할 계획이던 이 밀서는 조정에 적발돼 끝내 목적지에 도달하지 못했고 황사영 등 100여 명의 신도들이 처형됐다. 이 사건이 바로 신유박해다.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성 요셉 신학교도 지난 1855년 이곳에서 문을 열었다. 파리 외방선교회 소속 선교사들이 조선의 천주교인들과 함께 사제 양성을 목표로 인근 학생들을 모아 작은 신학당을 열었는데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유일하게 초중고교 교육을 함께 실시한 근대식 학교였다. 성 요셉 신학교는 병인박해(1866) 때 교직자들의 순교로 11년 만에 문을 닫았다. 성 요셉 신학교를 모태로 출발한 곳이 현재 가톨릭대 신학부다.





제천은 박해 시절 천주교인들이 관아의 감시를 피해 사목 활동을 하기 위해 오가던 길목이었다. 최양업(1821~1861) 신부의 묘가 이곳에 자리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김대건 신부에 이어 두 번째로 한국인 사제가 된 최 신부는 매년 2,800㎞씩, 순교 직전까지 11년간 전국 신앙촌을 찾아다니며 성사를 집전했는데 베르뇌 주교에게 사목 보고를 하러 가는 길에 경북 문경 진안리 고갯길에서 선종했다. 이후 인근 배론으로 옮겨져 신학교 뒷산에 안장됐다. 올해는 최 신부 탄생 200주년이기도 하다.



제천은 경상도와 충청도, 강원도 접경 지역으로 청주보다 오히려 원주에 더 가깝다. 이 때문에 배론성지는 현재까지도 청주교구가 아닌 강원도 원주교구 소속으로 남아 있다. 성지 개발도 원주교구가 주도했다. 원주교구가 1958년 본격적인 개발에 착수해 진입로를 비롯한 성지 일원을 정리하면서 매년 수만 명이 찾는 지역 명소가 됐다. 성지에는 황사영이 백서를 썼다는 토굴과 성 요셉 신학교가 잘 복원됐고 최양업 신부 기념성당과 한옥 누각 성당인 배론본당,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의 길, 조각공원 등이 들어섰다. 봉황산과 연결된 십자가의 길은 예수의 수난과 죽음의 과정을 묵상하는 길로 종교와 관계없이 찾아 가볍게 산책하기 좋다.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사진제공=지엔씨이십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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