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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 통해 세상읽기] 아도물(阿堵物)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공직자 직무와 비대칭 지위 이용해

정보 얻는건 자유민주주의 원칙에 위배

이익의 '利'엔 날카로움 뜻도 포함

영리 행위는 사회적 공동선 안에서 해야

신정근 성균관대 유학대학장




‘세설신어’에 따르면 서진 시대 왕연(王衍)과 그의 부인 곽 씨는 돈에 대해 전혀 다른 태도를 보였다. 부인이 지칠 줄 모르고 재물을 긁어모으자 왕연은 걱정했지만 말릴 수가 없었다. 이에 왕연은 당시 협사(俠士)로 유명한 이양(李陽)이 아내를 주목하고 있다는 말로 아내의 탐욕을 제지하려 했다. 반면 왕연은 당시 유명하던 죽림칠현에 기울어져 고상하고 심오한 논의를 즐기며 평소 ‘돈’이라는 말을 입 밖으로 내지 않았다. 곽 씨는 왕연이 과연 돈 앞에 초연할 수 있는지 시험하려 했다. 곽 씨는 침상 주위에 온통 돈을 깔아놓아 남편이 방에서 쉽사리 걸음을 옮길 수 없게 했다. 왕연이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돈을 밟지 않으면 침상을 벗어날 수가 없었다. 그는 하인에게 “이것을 내다 치우라(거각아도물·擧?阿堵物)”고 말했다. 아(阿)는 발어사로 뜻이 없고 도(堵)는 ‘이것’을 가리킨다. 아도물은 가까운 곳에 있는 물건을 가리키는 ‘이것’을 나타내는 말로 오늘날 지폐를 얕잡아 보며 ‘이깟 종이’라고 하는 것과 비슷하다. 왕연은 아도물을 사용하며 ‘돈’으로부터 거리를 두고자 했다. 이 고사로부터 아도물은 돈의 별칭으로 널리 쓰이게 됐다.



“돈 싫어하는 사람이 어디 있을까” 하는 오늘날 아도물의 이야기는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왕연의 아도물 이야기가 어떤 맥락에서 생겨나게 됐는지 이야기해볼 필요가 있다. 당시 사회 질서는 왕을 정점으로 하면 농민 등 다수의 생산자가 있고 중간에 유교 경전의 지식을 바탕으로 왕을 견제하고 농민의 복리를 도모하는 관료이면서 학자인 집단이 존재했다. 이런 사회 질서가 성공적으로 작동하려면 무엇보다 학자이면서 관료인 집단의 자기 정체성 확립이 중요하다. 그들이 왕의 부패와 타락을 견제하지 못하고 오히려 한패가 되면 백성의 삶은 도탄에 빠지고 자신들의 특권을 내세워서 백성과 경제적으로 경쟁하게 되면 국익을 좌지우지하는 독점 집단이 돼버린다. 이 때문에 공자는 일찍이 경제적 영리 행위와 관련해 두 가지의 큰 원칙을 제시했다. 첫째, 학자이자 관료가 된 공직자는 영리 행위를 해서는 안 되고 둘째, 경제적 영리 행위는 금지의 대상이 아니고 반드시 사회적 공동선의 범위 안에서 추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이를 사회적 공동선과 경제적 영리가 서로 관련 없이 따로 노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하나로 결합될 수 있다는 의리합일(義利合一)로 표현했다.

한 제국의 동중서는 공자의 의리합일을 수용하면서 공직자가 돈 이야기를 하지 않도록 자기 규제를 하면 말끝마다 ‘돈돈’ 하는 사람을 부끄럽게 만들 수 있다고 봤다. 여기서 돈 이야기를 하지 않는 것은 공직자가 백성들의 경제 행위에 관심을 갖지 않는 말이 아니라 사리사욕을 채우지 말라는 맥락이라고 할 수 있다. 예나 지금이나 공직자는 국정 방향을 논의하면서 누구보다도 먼저 정보에 접근할 수 있다. 공직자가 정보에 대한 이러한 비대칭적 지위를 활용해 백성과 경쟁한다면 이는 왕도 정치에도 부합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자유민주주의의 원칙에도 위배되기 때문이다.



요즘 연일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몇몇 직원이 개발 정보를 미리 빼돌려 신도시 예정 지역에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언론에 오르내린다. 아직 현행법 위반과 관련해 법적 판결이 나오지 않았지만 직무로 인해 얻는 정보와 토지 매매 사이에 시간적 인과관계가 드러나고 있다. 이익·이윤·편리의 뜻을 지닌 이(利)는 날카롭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 이익과 이윤을 안겨줘 편리한 삶을 가져올 수도 있지만 날이 뾰족하게 서 있어 사람을 다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공자와 왕연은 이익의 양면성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공직자가 의리합일과 아도물을 말했던 것이다. 영어에서 돈을 뜻하는 ‘머니(money)’는 로마 시대에 동전을 주조하는 곳이 모네타 신전 부근에 있던 사실에서 유래됐다. 신전이 외적의 침입을 경고하는 역할과 관련되면서 머니는 우연히 경고한다는 의미와 연관성을 갖는다. 머니와 마찬가지로 아도물은 이익에 달린 편리성만큼이나 날카로움과 경고를 나타내는 위험성의 의미가 있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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