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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문화 업그레이드로 새 미래 열자

이장우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이사장





2025년은 한국 문화의 위상을 다시 성찰하게 하는 중요한 해인 것 같다. ‘케이팝 데몬 헌터스’의 히트로 전 세계가 우리 문화에 열광하고 외국인 관광객이 급증하는 현상을 마주하고 있다. 유네스코가 백범 김구 선생 탄생 150주년을 국제기념일로 지정함으로써 문화의 힘에 대해 다시 한번 성찰을 하게 된다. 백범은 정치·군사력보다 문화의 힘이 진정한 세계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믿었다. 그의 글에 담긴 철학은 ‘힘의 시대를 넘어 품격의 시대’를 향한 도전이었고, 한국이 세계 질서 속에서 어느 길을 선택해야 하는지를 일찍이 제시한 미래 전략이었다.

이렇듯 세계적으로 창발하고 있는 우리 문화의 힘을 보면 오늘의 대한민국이 어디에서 새로운 도약의 근거를 찾아야 하는지 분명한 방향을 제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사람들은 문화를 경제와 분리해 ‘먹고사는 문제’ 다음으로 ‘놀고 즐기는 문화’로 간주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올해 노벨경제학상을 경제사학자인 조엘 모키어 교수가 수상하면서 ‘문화는 경제성장과 혁신의 근본 동력’이라는 그의 학문적 주장이 세계적으로 인정받았다. 그는 근대 경제발전의 원천은 제도나 자본이 아니라 한 사회가 지식을 받아들이고 실험하고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적 신념 체계라고 말했다. 이는 국가 경쟁력이 근본적으로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부터 형성됨을 말해준다.

지금 한국은 사상 유례없는 경제·사회적 전환기에 서 있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 인공지능(AI) 패권 경쟁, 기후변화, 지정학적 불안이 동시에 밀려오는 상황에서 위기를 회피하면서도 기회를 잡아야 하는 모순된 과제를 안고 있다. 또 내부적으로는 세계 최저 출산율과 최고 자살률, 낮은 국민 행복도라는 구조적 위기에 직면해 있다.



흥미로운 것은 이 모든 문제들이 문화의 양면성에서 나온다는 점이다. ‘더 빨리, 더 높이, 반드시 앞서야 한다’는 한국 특유의 진취성과 집단 역량은 압축 성장의 핵심 동력이었다. 그러나 비교와 경쟁, 탈락에 대한 공포가 생활의 표준이 되면서 사회는 성과를 내지만 개인은 소진되는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동전의 양면처럼 문화는 한국의 기회와 위기를 동시에 만들어온 힘이다. 지금 필요한 것은 문화의 폐기나 부정이 아니라 업그레이드다. 김구 선생이 말한 ‘힘의 경쟁에서 품격의 경쟁’으로, 모키어 교수가 제안한 ‘제도 이전의 문화 혁신’이라는 메시지는 동일한 결론으로 수렴된다. 따라서 대한민국의 넥스트 레벨은 군사력, 자본력, 제도 혁신에 앞서 문화의 힘을 국가 전략으로 삼는 데서 출발해야 한다.

그렇다면 문화의 힘은 무엇을 위해 사용돼야 할까. 무엇보다도 세계 평화와 공존에 기여하는 국가 브랜드로 확장돼야 한다. 백범이 문화의 힘으로 꿈꾼 세계는 배타적 국익이 아니라 인류의 품격이 확장되는 국제 질서였다. 한국이 ‘K팝’ ‘K콘텐츠’ ‘정보기술(IT)’ ‘시민 역량’을 이러한 철학과 결합시킨다면 경제 선진국을 넘어 도덕적 지도 국가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문화의 힘은 내부 갈등을 치유하는 국가적 통합 매개가 돼야 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세대·이념·계층 갈등이 구조화되고 있다. 갈등을 힘으로 누르면 더 강한 반작용이 나타나지만 문화는 다른 의견을 존중하고 공존의 서사를 만들어내는 해법이 된다. 백범 탄생 150주년을 계기로 문화로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한국 모델을 국제 공공재로 정립할 필요가 있다. 우리는 다시 문화의 힘으로 새로운 미래를 열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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