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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십자각]누구도 막지 못한 화가들의 죽음

조상인 문화부 차장





‘또’다. 화가의 안타까운 부고를 접했다. 유명 원로 작가의 부고 기사는 업적 위주로 미리 써두고 그렇지 않은 경우도 화가의 전시, 소장품, 수상 이력을 중심으로 관련 있는 갤러리와 유족 등을 통해 ‘미처 알지 못했던’ 작가의 행적을 되짚는다. 하지만 최근 두 건의 부고는 병사도 사고사도 아닌 스스로 택한 길이었기에 극도로 혼란스러웠다.

지난주 쓸쓸히 유명을 달리한 이는 김기수(1972~2021년)라는 젊은 작가다. 영남대를 졸업한 후 스테인리스스틸 등 금속을 소재로 꾸준히 작업했다. 주요 기관에 작품이 소장됐으며 하정웅청년작가상을 받는 등 전도유망했다. 겉으로는 그랬다. 미술관에 작품이 걸리고 신문에 이름이 나는 작가면 어느 정도 먹고사는 일은 괜찮으리라 여겨지니까. 김 작가는 지난 1999년 고향인 경북 청도의 버려진 폐교를 작업실로 쓰기 시작했고 넉넉한 작업장을 구하기 어려운 동료들까지 불러들여 작은 예술촌(村)을 만들었다. 폐교 옆에 신접을 차렸으니 의욕도 컸을진대 결국 작가는 세상의 고단함에 맞서던 손을 놓고 말았다. 소식을 전한 한 미술관 큐레이터는 “서울에까지 진출한 나름 성공하는 듯 보였던 작가였기에 대구의 지역 선후배들이 받은 충격이 크다고 한다”고 했다.

지난달 초에는 중견 화가 최경태(1957~2021년)가 스스로 삶을 놓았다. 원로 화가 안창홍이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왜 그런 선택을 했을까, 얼마나 외로웠을까, 미술판의 특이한 정글에서 살아남기에는 너무 여리고 착해서 힘이 들었을 것이다”라면서 자신이 그린 최 작가의 누드와 함께 짧은 글을 올렸다. 최경태는 1980년대 중반부터 목판화를 통해 사회적 메시지를 강하게 드러낸 ‘민중 미술’의 막내급 작가였다. 돌연 2000년대 이후에는 포르노그래피를 전면에 내세운 그림으로 논란을 일으켰고 급기야 여고생의 인체 묘사로 2001년 간행물윤리위원회로부터 검찰 고발당하기도 했다. 인간 본성의 순수함과 그 욕망을 억압하는 것의 정체를 탐구하고자 했던 작가의 열정이 압류된 30여 작품의 소각이라는 법원 판결과 함께 타버렸던 모양이다. 측근들이 “최근 몇 년 동안은 이미 삶의 의지를 완전 놓은 상태”로 보였다는 그를 위해 지난해 12월 개인전을 열어줬건만 작가는 끝까지 나타나지 않았고 그게 마지막 전시회가 됐다.



사회 안전망의 사각지대에 놓인 예술가들을 돕기 위해 예술인복지재단이 2012년 설립됐고 자신의 예술 활동 증명을 통해 등록 예술인으로 이름 올린 예술가가 10만 명을 넘었다. 올해 초부터 예술인 고용보험이 시행됐으며 국회 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는 ‘예술인의 지위 및 권리보장에 관한 법률안’ 공청회를 주최하는 등 분주하지만 아무도 이들의 죽음을 막지 못했다. 예술인 창작 지원금이 있지만 이는 30대까지가 대상이다. 정작 미술계의 ‘허리급’인 40~50대 작가들은 지원의 사각지대에서 위태롭게 살아간다. 지원금 신청 공고가 반가운 젊은 작가들은 ‘고기 잡는 법’을 배우지 못할 것 같아 걱정이다.

최근 김창열 화백 작고 후 ‘물방울’ 그림값이 치솟고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침체됐던 미술 시장이 회복한다는 얘기가 들려온다. 빛이 밝으면 그림자가 짙기 마련이다. 그림값 운운할 정도의 화가는 전체 예술인의 0.1% 미만이다. 덜 알려지고 소리 없이 스러져간 가난한 예술가들의 이름을 또박또박 적어본다.

/조상인 기자 ccs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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