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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리행군 완주·고공낙하 107회..."특전사엔 '남녀' 아닌 '군인'이 있죠"

[이사람-김정아 특전사 원사]

고3 때 들어선 군인의 길 31년째

특전사 첫 여군 부중대장도 역임

피범벅 된 발로 천리행군 마치고

공수훈련 땐 전우들만 믿고 '낙하'

군대는 나에게 공기와 같은 존재

평생 좋아하는 일 해서 행복해요

김정아 특전사 원사./인천=이호재기자.




“여군이 특수전사령부에서 근무한다고 하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죠. 특전사라고 하면 힘든 훈련·교육 등을 주로 하는 부대라는 이미지가 강해서인지 저를 뭔가 특별하게 보는 시각이 많아요. 여군도 다른 대원들과 같이 훈련·교육을 받는데 특별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군대에는 ‘군인’이 있지 ‘여자’ ‘남자’가 따로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김정아(50) 육군 원사는 특전사에서 가장 오래 근무하고 있는 여군이다. 지난 1990년 부사관으로 임관한 후 31년째 특전사에 있으며 힘들고 위험한 각종 훈련들을 모두 소화해내면서 부대원들의 귀감이 되고 있다. 현 소속은 특전사 귀성부대다.

12일 인천의 귀성부대 인근에서 만난 김 원사의 첫인상은 군복 입은 평범한 여성이었다. 다른 여군들과 크게 달라보이지는 않았지만 김 원사의 군 생활 이야기를 들으면서 감탄사를 멈출 수가 없었다.

특전사는 일반 육군부대보다 훨씬 강도 높은 훈련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김 원사는 ‘특전사 훈련의 꽃’ 또는 ‘특전사 훈련의 대명사’라고 불리는 천리행군을 완주한 첫 여군이라는 기록을 가지고 있다. 천리행군은 무거운 군장을 메고 400㎞(1,000리)를 6박 7일간 걷는 훈련으로, 행군 간 전술훈련 등을 포함하면 실제 걷는 길이는 700㎞에 달한다. 이는 서울~부산 왕복 거리에 약간 못 미치는 것으로, 2005년 11월 김 원사는 결코 쉽지 않은 이 거리를 완주했다. 그는 “40㎏ 군장을 메고 700㎞에 가까운 거리를 걸으면서 전술훈련을 하는 천리행군은 특전부대원들에게 정신력과 체력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훈련이라고 할 수 있다”며 “서울에서 부산까지 걸어간다고 생각하면 이게 어떤 훈련인지 간접적으로나마 체감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 원사는 천리행군 당시 완주 100㎞ 정도를 남겨놓고 발이 너무 아파 군화를 벗어보니 내성발톱으로 인해 피범벅이 돼 있었다고 말했다. 의무 담당 하사가 이를 보고 “어떻게 이런 발로 걸었느냐”며 경악하면서도 중간에 포기하지 않는 김 원사의 군인 정신에 감탄했다고 한다.

김 원사가 받은 훈련을 이야기하자면 특전사 대원임에게 자부심을 갖게 한다는 공수훈련을 빼놓을 수 없다. 공수훈련이란 공수작전을 펼치기 위해 받는 훈련이다. 공수작전은 비행기·헬기 등 공중수단을 통해 특정 장소와 시간에 군사력을 투입시키는 것이며, 공수훈련은 낙하산을 메고 높이 4,000~5,000m 상공에서 특정 지점에 뛰어내리는 훈련이다. 낙하산이 제대로 펴지지 않으면 끔찍한 상황이 벌어지게 되는 훈련으로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하는 훈련이다.

공수훈련은 훈련 대상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훈련이라 그 과정이 까다롭다. 우선 일주일가량 체력훈련을 통해 강한 정신력을 키우고 이를 바탕으로 고공낙하에 대한 두려움을 없앤다. 이후 또 일주일 동안 낙하 시 필요한 동작을 지상에서 반복하는 지상훈련을 하고, 이를 마치면 실제 강하(낙하)를 하게 된다.

김 원사가 완수한 공수훈련은 한두 번이 아니다. 무려 100회가 넘는 공수훈련을 소화해냈다. 부사관 임관 다음 해인 1991년 첫 공수훈련을 시작으로 2018년까지 107회의 고공낙하(전술강하)를 성공적으로 마쳤다. 그의 전투복에는 공수훈련을 마친 특전사 대원이 부착하는 공수휘장이 있고 그 휘장에는 100회 이상 강하를 의미하는 노란별이 새겨져 있다.

공수훈련을 할 때면 처음 강하하는 대원은 물론 수백 회를 완수한 대원도 두렵고 떨리는 것은 당연하다. 김 원사도 예외는 아니다. 하지만 김 원사가 100회 이상 이런 위험하고 대단한 훈련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낙하산을 정비하고 포장하는 전우에 대한 강한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공수훈련에 들어가면 무섭고 떨리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번에도 무사히 지상에 발을 딛자’라는 바람으로 훈련에 임한다”며 “낙하산을 포장하는 용사를 믿지 않으면 항공기에서 절대 뛰어내릴 수 없다”고 강조했다. 이어 “나의 생명이 낙하산에 달려 있으므로 그 순간만큼은 낙하산에 모든 것을 의지해야 한다”며 “뛰어내릴 때마다 낙하산을 정비하는 용사들이 실수 없이 잘 포장했을 것이라고 굳게 믿는다”고 전우에 대한 믿음을 다시 한 번 드러냈다.

김 원사의 특전사 생활을 이야기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게 부중대장 시절이다. 그는 특전사 최초의 여군 부중대장이라는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2005년 10월 현재 근무하는 귀성부대로 전입했을 당시 이곳에 여군은 한 명도 없었다. 이때 부대 대대장은 과감히 김 원사에게 부중대장을 맡기는 파격 인사를 했다. 중대원들은 여군 부중대장이 어려웠는지 조금 거리를 뒀다고 한다. 하지만 특전사의 첫 여부중대장과 중대원들 간 서먹함은 오래가지 않았다. 부중대장 부임 직후 얼마 되지 않아 시작된 고된 천리행군과 내륙전술훈련·혹한기훈련 등을 함께하면서 고락을 나누다 보니 자연스럽게 중대원들과 가까워졌다.

그는 “막 전입 왔을 때 대대장님이 저를 믿고 부중대장을 맡겨 감사했다”며 “처음에는 서먹했던 중대원들도 함께 훈련을 하면서 정이 들었고, 16년이 지난 지금 전역한 중대원도 많지만 아직도 연락하며 안부를 묻고 지낸다”고 말했다. 이어 “특히 내륙전술훈련을 앞두고 중간에 낙오하지 않고 반드시 완주하기 위해 훈련에 돌입하기 전 40㎏의 군장을 메고 부대 울타리를 뛰면서 체력을 다졌다”며 “훈련 때 내륙을 돌면서 진행되는 종합전술훈련과 행군을 하면서 중대원들과 각별한 사이가 됐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특전사 생활을 하면서 힘들고 위험한 훈련을 많이 받다 보니 아찔한 순간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동안 그가 받았던 훈련들 가운데 공수훈련(낙하훈련), 강하조장(낙하 과정을 지휘·감독), 대테러훈련(테러 발생 시 이를 진압하기 위한 각종 전술훈련), 해상척후조(해상 침투 시 본대가 상륙하기 전에 상륙 지역을 먼저 정찰하고 상륙 지역까지 통로를 개척해 본대를 유도하는 훈련) 등은 자칫 하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훈련이다.

김 원사는 지금까지 이런 훈련들을 무사히 마칠 수 있었던 것은 정신력 덕분이라고 했다. 김 원사는 “훈련에 들어가면 교관들로부터 수차례의 정신교육과 혼을 빼놓는 듯한 체력 단련 등을 하기 때문에 무엇보다 정신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며 “특전사 훈련을 쉬운 훈련, 어려운 훈련으로 구분하기 어려운데 여러 훈련 중에서 해상척후조 훈련은 특히 긴장되고 힘들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해상척후조 훈련 때는 아무런 장비 없이 5m의 물속에서 전방 25m가량을 헤엄쳐 나와야 하는데 극한의 정신력이 필요하다”며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특전사의 신조가 평소 생활에 체득화돼 있어 안 되면 되게 한다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더니 무사히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고 부연했다.

각종 무술에서 유단자 실력을 보유한 그는 세계군인체육대회에서 입상하면서 한국 군의 자존심을 세우기도 했다. 태권도 6단, 특공무술 2단, 합기도 1단, 유도 1단 등 무술의 총합이 10단인 김 원사 자체가 인간 병기인 셈이다. 현재 부대에서 태권도 교관을 맡고 있는 김 원사는 1993년 캐나에서 열린 세계군인체육대회 때 태권도 한국 군 대표 선수로 나가 동메달을 수상했고, 다음 해 페루에서 개최된 대회에서는 은메달을 획득하며 국위선양을 했다. 태권도 세계 무대에서 메달을 딴 후 태권도 경기심판과 사범 등의 자격증을 취득해 국방부장관기 태권도 대회 심판관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김 원사는 가족으로 군인인 남편과 지난해 군대를 전역한 아들이 있다. 남편 역시 특전사에서 근무하고 있고, 아들은 강원도의 한 육군부대에서 생활하다 지난해 3월 군 복무를 마치고 현재는 직장 생활을 하고 있다.

아들을 군대에 보낸 군인 엄마의 마음은 다른 엄마들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는 “당연히 가야 하는 군대를 보내는 것이어서 마음이 공허하거나 그러지는 않았지만 아들을 군대에 보내면 걱정하는 심정은 모든 엄마들과 같았다”며 “아들이 군 생활을 무탈하게 잘해낼 것이라는 믿음이 앞섰고, 휴가 나왔을 때 군인이 된 아들의 든든한 모습을 보니 감동도 밀려왔다”고 말했다.

고등학교 3학년 시절 졸업 후 취업을 해야 하는 그에게 담임교사가 권유해 여군에 지원했다는 김 원사는 역시 군인이 천직이다. “‘군인’ 그리고 ‘군대’는 저에게 ‘산소’와 ‘공기’ 같은 존재입니다. 공기는 눈에 보이지 않아 평소에는 그 중요함을 모르고 생활할 때가 많지만 없으면 우리는 살 수 없습니다. 아침에 군복을 입고 부대로 출근하지 않으면 공허한 마음이 들어 빨리 출근해야겠다는 조바심이 생길 정도인 것을 보니 군대는 저에게 없어서는 안 될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고등학교 3학년 때 우연한 계기로 들어선 군인의 길이 저에게는 딱”이라며 "좋아하는 일을 평생 하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는데 저는 행복한 사람”이라고 말했다.

/인천=김정욱 기자 myk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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