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범계 법무부 장관이 17일 한명숙 전 총리 뇌물 수수 의혹 사건 수사팀의 모해위증교사 의혹과 관련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대검찰청이 사건 관련자들을 무혐의 처분하는 과정에 비합리적 의사 결정이 있었다는 점을 이유로 대검 부장회의를 열어 재소자 김 모 씨 등의 기소 가능성을 재심의하라고 지휘한 것이다. ‘친노 세력의 대모’로 불려온 한 전 총리를 구하겠다는 의도를 엿볼 수 있다.
역대 네 번째이자 현 정부에서 세 번째인 이번 수사지휘권 발동은 검찰 독립성을 흔드는 처사이다. 검찰이 정권의 입맛에 맞는 수사 결과를 내지 않으면 언제든 장관이 개입할 수 있다는 잘못된 메시지를 던진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이번 모해위증교사 의혹은 지난해 4월 한 재소자의 폭로에서 불거진 후 정상적 절차를 거쳐 대검이 “혐의를 인정할 증거가 부족하다고 판단했다”고 결론을 내린 사안이다. 검찰 독립성을 인정한다면 대검의 결정을 존중해야 하는데도 무리수를 둬가며 기어이 수사지휘권을 발동했다.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이어 박 장관도 정치로 법치를 덮을 셈인가. 법무부는 “장관의 입장은 기소해라 마라가 아니라 다시 한 번 판단해달라는 취지”라면서 대검 부장회의에서 무혐의 판단이 나오면 수용할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정치적 속셈이 뻔히 보인다. 신성식 반부패강력부장이나 이정현 공공수사부장, 이종근 형사부장, 한동수 감찰부장 등 친(親)정권 성향 간부들이 대다수이므로 예상된 수순대로 모해위증에 대한 기소 결정이 내려질 가능성이 높다. 답을 정해놓고 재수사하라고 강요하는 셈이다. 정권 보위나 자기 편 감싸기를 위한 꼼수를 쓴다면 국민들이 더 이상 좌시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적 목적으로 수사지휘권을 발동한 박 장관은 정치적 중립 의무를 저버리고 검찰 독립성을 훼손할 경우 법적 책임을 면하기 어렵다. 법치주의를 지키려면 검찰 수사에 더 이상 개입해서는 안 된다.
/논설위원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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