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장기 국책사업으로 43년간 공전을 거듭해온 ‘사용후핵연료 관리시설’ 문제를 재검토해 향후 나아갈 방향을 집대성한 김소영 사용후핵연료 관리정책 재검토위원회 위원장(카이스트 교수)은 휴대폰이 없다. 코로나19로 대면 접촉도 어려워 그와 인터뷰는 사흘 전부터 이메일·전화 등 방법을 찾다 김 위원장이 기자에게 시간을 정해 전화를 주면서 성사됐다. 과학계의 한 관계자는 “효율과 편리 보다 원칙을 중시하는 김 교수가 이해관계자들의 대립과 충돌로 흔들렸던 위원회의 선장으로 딱이었다”고 귀띔했다.
김 위원장은 2019년 5월 출범해 최근 660일의 대장정을 마친 위원회 활동에 대해 “최선의 해결책을 제시한 건 아니지만 초장기 국책사업을 시작할 ‘루트’를 만들었다” 며 “재검토는 또 이뤄질 수 있지만 (우리 활동이) 정부와 국회, 다른 전문가들이 가야할 길을 한 층 쉽고, 탄탄하게 해줄 것”이라고 단언했다.
사용후핵연료 관리 시설 논의는 국내 첫 상업용 원전인 고리 1호기가 1978년 가동되면서 시작됐지만 9차례나 관리시설 부지 선정을 시도했다 지역민의 반발·지질 안전성 등에 부딪혀 성과 없이 끝났다. 원전을 40년 넘게 운영했지만 국내에는 사용후핵연료 임시저장시설(맥스터)만 있을 뿐 중간저장시설과 영구처분시설은 없어 친원전측이든 탈원전측이든 필요성을 인정해도 위험·기피시설이다 보니 부지선정은커녕 선정 절차조차 마련하지 못했다.
지난 18일 김 위원장은 21개월의 위원회 활동의 결과물로 사용후핵연료 관리에 관한 특별법 제정과 정책을 관리·집행할 '독립적 행정위원회' 신설을 뼈대로 한 권고안을 정부에 제시했다. 그는 “전문가 의견과 국민 여론조사, 원전 지역주민 의견 수렴에 451명의 공론화 시민참여단이 10주간 숙의를 거쳐 최종 도출한 것” 이라며 “특별법 제정은 또 다른 시작이겠지만 현 시점에서 국민의 뜻을 최대한 반영해 나온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위원들이 국민의 의견을 폭넓게 담아낼 방법들에만 천착하며 ‘빛나되 빛나지 않게’를 모토로 일했다”고 덧붙였다.
김 위원장은 이어 “사용후핵연료 관리 시설은 초당적 협력이 가능한 국책 사업” 이라며 “정부가 연내 2차 고준위 방폐물 관리 기본계획을 세우고, 국회가 내년 대선 직후에 특별법 제정에 나서면 좋겠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대정부 권고안이 체계적으로 실행되려면 사용후핵연료 등의 개념 정의부터 부지선정 절차, 유치지역 및 주민 지원 방식 등 다양한 사항이 특별법에 담겨야 하는데 입법 과정의 디테일은 민감한 사안이 많아 의원들이 많은 준비를 하고 엄청난 논의와 토론을 해야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그는 “사용후핵연료 문제는 일반 국민에서 지역 주민, 시민사회계, 원전업계와 전문가, 정부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서로 신뢰하며 논의를 진행해도 쉽지 않은 난제로 해외에서도 마찬가지” 라며 “현 상황을 보면 이제는 주류가 된 환경단체 등 시민사회가 원전업계와 전문가들의 의견을 좀 더 존중하고 경청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사용후핵연료를 임시저장시절에서 꺼내고, 옮겨서 저장하는 가장 위험한 일을 해야하는 사람은 ‘원전 엔지니어’가 아니냐”고 강조했다.
/손철 기자 runiro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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