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6년간 정부가 한부모에게 지급한 양육비 약 9억원 가운데 비양육자로부터 회수한 금액 비율이 2%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성가족부가 양육비 1년치를 선지급한 뒤 채무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제도를 도입했지만 구상 기능이 전혀 작동하지 않는 셈이다. 국회가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을 추진 중인 가운데 양육비 채무 징수 시스템을 그대로 둔 채 제도를 도입할 경우 연간 소요 재정이 수천억원에 달할 전망이다.
25일 서울경제가 입수한 여가부 자료에 따르면 2015년부터 2020년까지 정부가 한부모에게 지급한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금은 총 8억7,600만원에 달했으나 비양육자에게 징수한 금액은 2,000만원에 그쳤다. 정부가 받아야 할 돈 중 2.3%만 돌려 받은 셈이다.
여가부는 ‘양육비 이행확보 및 지원에 관한 법률’(양육비이행법)에 따라 2015년부터 양육비이행관리원(여가부 산하 한국건강관리진흥원 내 전담조직)을 통해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를 운영하고 있다. 양육비를 받지 못하는 채권자(양육자)에게 한시적으로 양육비를 지원하고 지원 종료 후에는 채무자(비양육자)에게 구상권을 행사한다. 자녀 1인당 월 20만원(아동양육비를 지원받는 경우 10만원)씩 9개월간 지원한다. 3개월 연장할 수 있어 최대 1년간 240만원을 받을 수 있다.
이 제도는 양육비이행률이 제자리 걸음하는 상황에서 양육자 부담을 줄이자는 취지에서 도입됐다. 2018년 여가부 조사에 따르면 전 배우자로부터 정기적으로 양육비를 받는 한부모 비율이 15%에 불과하다. 2014년부터 양육비이행관리원이 운영되고 있지만 채무자의 재산 및 납세 내역 확인 제약, 인력·예산 부족 문제로 이곳을 통한 이행률은 30%대에 그치고 있다.
문제는 정부가 양육비를 대신 내주기만 할 뿐 회수는 이뤄지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6년간 정부가 양육비를 지원한 520건 가운데 회수가 이뤄진 사례는 11건으로 2.1%에 그쳤다. 특히 2015년부터 2017년까지는 회수 건수가 단 1건도 없었고, 2018년과 2019년 회수는 각각 1건 뿐이었다. 이에 대해 여가부 관계자는 “법 개정으로 올해 6월부터 양육비 채무자가 긴급지원액을 납부하지 않으면 국세 체납처분의 예에 따라 징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국회에서 양육비 대지급제 도입 주장이 커지는 가운데 이러한 상황이 계속될 경우 재정에 심각한 부담이 될 수 있다. 대지급제는 자녀가 성년이 될 때까지 정부가 양육비를 선지급하고 비양육자에게 구상권을 청구해 돌려받는 제도다. 현행 한시적 양육비 긴급지원 제도보다 기간이 훨씬 길고 금액도 많다. 최근 여당 더불어민주당에서는 양육비 대지급제를 골자로 한 양육비이행법 개정안(서영교·이규민 의원), ‘양육비 대지급을 위한 특별법안(박홍근 의원)’이 발의됐는데 대지급제 도입에 재정이 얼마나 투입될지 제대로 가늠조차 안 되는 상황이다. 박 의원은 “대지급제 비용을 합리적으로 추계하는 데 한계가 있다”며 법안 발의 때 비용추계 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았다. 국회예산정책처가 대지급 소요 재정으로 연 평균 약 1,155억원을 예상했지만 이는 한시적 양육비 지원금인 월 20만원으로 가정한 수치다. 양육비청구소송에서 월 100만원 이상 지급하라는 판결도 나오기 때문에 대지급 예산은 연간 수천억원에 달할 수 있다.
현재 독일, 프랑스 등에서 양육비 대지급제를 시행 중이지만 참고할 만한 회수율 및 재정 추계 자료도 없는 상황이다. 양육비 제도 연구를 진행한 박복순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젠더폭력·안전연구센터장은 “우리나라는 구상이 얼마나 이뤄질 것인지에 초점을 맞추는데 해외국들은 공백없이 양육비를 지원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관점이 다르다"며 “이러한 이유로 양육비 회수 자료는 찾을 수 없었다”고 설명했다.
복지 전문가들은 양육비 회수 시스템 정비가 시급하다고 지적한다. 채무자 정보 접근 권한이 없는 여가부가 구상 업무를 맡기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국세청에 위탁하는 등 관계기관과 협업해야 한다는 것이다. 최현수 한국보건사회연구원 연구위원은 “여가부나 양육비이행관리원이 국세청 자료만 받으면 채무를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해당 기관이 직접 소득을 파악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한계가 있다”며 “양육비 채무자 소득 발생에 따른 상황 및 징수를 국세청에 위탁하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창영 기자 kc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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