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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을 이어온 '물의 도시'…수로·골목 따라 켜켜이 쌓인 시간의 두께

[최수문의 중국문화유산이야기] <13> ‘中 제일의 수향’ 쑤저우 저우좡

물 반 땅 반…1086년 송나라 때부터 형성

물길 통한 상업 발달하고 어업·농사 번성

마을을 가로세로 지르는 '井' 모양 수로들

마르코 폴로 '동방의 베네치아'라고 격찬

명청시대 지어진 고택·14개의 석교 등

자연에 스며들어 고즈넉한 전통모습 간직

중국 장쑤성 쑤저우의 저우좡고진에서 노 젓는 배를 타고 한 여행객이 풍경을 감상하고 있다. 명청시대 석교 아래로 석양이 아름답다. /최수문기자




중국 장쑤성 쑤저우 시내에서 남쪽으로 한 시간여를 차로 달려 중국의 대표적인 ‘물의 마을’ 저우좡고진(周莊古鎭·저우좡 옛 마을)에 도착했는데 입구에서 문제가 생겼다. 직원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음성 확인증이 있어야 출입이 가능하다고 우기는 것이다. 베이징에서 멀리 왔고 증상도 없어 검사를 받지 않았다고 사정을 설명하고 겨우 입장할 수 있었다. 저우좡고진이 단순한 테마파크인 줄 알았는데 그게 아니었다.

이유는 곧 알아냈다. 마을에는 원주민들이 그대로 생활하고 있었다. 대부분 노인들은 마스크를 쓰지도 않고 있어 외부로부터 감염 위험이 있었다. 덧붙여 코로나19 논쟁은 나중에도 계속됐다. 저우좡을 다녀온 다음 날 관할 지방공안국에서 연락이 왔다. 코로나19 여부를 다시 한참이나 대답해야 했다.

전통 시대 중국 속담에 ‘하늘에 천당이 있다면, 땅에는 쑤저우·항저우가 있다(上有天堂, 上有蘇杭)’고 할 정도로 쑤저우는 과거부터 유명했다. 원나라 때 중국을 방문한 이탈리아의 탐험가 마르코 폴로가 책 동방견문록에서 쑤저우를 ‘동방의 베네치아’라고 격찬하면서 국제적으로 처음 알려졌다고 한다. 분위기에서 볼 때 베네치아가 바다 위에 떠 있는 ‘바다의 도시’라면 쑤저우는 말 그대로 ‘물의 도시’에 가깝다.

그런 쑤저우의 전통이 그대로 살아 있는 곳이 저우좡이라고 할 수 있다. 쑤저우 시내에 많은 사대부들의 개인 정원은 ‘원림(園林)’이라고 불리는 데 반해 보통 주민들이 사는 호수 마을은 ‘수향(水鄕)’이라고 한다. 원림이 인위적인 조작이라면 수향은 자연 그대로라고 할 수 있다. 그중에서도 저우좡은 ‘중국 제일의 수향 마을(中國第一水鄕)’이라는 공식 명칭이 부여돼 있다.

행정구역상으로 쑤저우시 남단인 저우좡은 면적이 38.96㎢로 이 중에서 육지가 20.8㎢에 그치고 수역이 무려 18.16㎢나 된다. 이를테면 ‘물 반, 땅 반’이다. 이에 따라 과거부터 물길을 통한 상업이 발달했고 여기에 어업과 농사도 번성해 ‘어미지향(魚米之鄕)’으로 불리기도 했다. 이곳 지방정부는 과거 저우좡의 중심 구역이었고 현재도 전통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구역을 묶어 ‘저우좡고진’이라는 이름으로 관리하고 있다.

이번에 방문한 저우좡고진에는 800여 가구가 있다고 한다. 대부분 숙박업이나 요식업을 하고 있는데 단순히 그냥 거주하는 사람도 많다. 이끼 낀 고택 담벼락과 유유자적한 노인들의 얼굴에서 저우좡에 쌓인 시간을 두께를 실감한다.

저우좡 마을은 송나라 때인 1086년부터 시작하니 이미 천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당시 저우(周)라는 이름을 가진 사람이 큰 기부를 해 마을 이름을 저우좡이라고 바꿨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후 명나라 초기 강남의 대상인이었던 심만삼이 이주한 뒤 인구가 크게 늘면서 현재의 형태를 이뤘다. 저우좡고진의 경우 현재도 60% 이상의 가옥이 명청 시대에 지은 전통 가옥들이라고 한다.



마을 안에서는 ‘중시조’ 격인 심만삼의 후손이 청나라 때인 1742년 지은 심청(瀋廳)과 명나라 때부터 장씨 가문의 후손 주택인 장청이라는 두 부호의 집과 송 시대에 건설된 절 전복사가 특히 볼 만하다. 규모가 무려 2,000㎡인 심청은 다시 세 부분으로 나뉘는데 전반부는 그의 교역배들이 정박한 상업 부분이고 가운데는 손님들이 머문 공간, 후반부가 가족들이 거처한 사적 공간이다. 상대적으로 규모가 작은 장청은 심청 남쪽에 있다.

저우좡고진은 주위의 호수와 연결된 작은 수로들이 마을을 가로세로 지르며 전체적으로 ‘우물 정(井)’자 모양을 하고 있다. 마을 곳곳에 14개의 전통 시대 석교가 있다. 이 중에서 원나라 때 지어진 부안교와 명나라 때의 쌍교가 가장 유명하다. 이에 따라 마을 전체가 물에 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요금을 내면 노젓는 배를 타고 수로를 한 바퀴 유람할 수 있다.

저우좡고진 골목에 나무배를 세워 만든 화단이 있다. /최수문기자


골목길도 매력적이다. 관광객을 상대하는 만큼 먹거리 가게와 공예품 상점이 많이 있지만 중국의 다른 곳과는 달리 자연스러워 튀지 않는다. 미로 같은 골목을 헤매고 있으면 베네치아에 비유하는 것이 지나치지 않다는 생각도 든다. 스타벅스 같은 현대식 카페가 고택 안에 자리 잡고 있는 것도 운치가 있다.

물론 아쉬운 점은 저우좡이 점차 도시의 변방이 되면서 고택들도 박제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쑤저우에서도 한참 떨어진 곳에 부촌이 있다는 것은 지금의 우리가 가진 편견이다. 전통 시대만 해도 저우좡은 중국의 중심인 강남에서 또 중심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제는 한적한 시골이 돼 가옥들은 낡아가고 수로에는 녹조가 주기적으로 발생하고 있다. 쑤저우시에 따르면 저우좡고진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예비 명단에 들어가 있고 미국 CNN 방송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은 10대 마을’에 포함되기도 했다.

/베이징=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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