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위와 5타 차. 지난 2016년 여름 리우데자네이루 올림픽에서 기록한 격차와 똑같다.
올림픽 여자 골프 금메달리스트 박인비(33·KB금융그룹)가 올림픽의 해에 처음 출전한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대회에서 압도적인 우승을 차지했다.
박인비는 29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아비아라GC(파72)에서 끝난 KIA 클래식(총 상금 180만 달러)에서 합계 14언더파 274타로 우승했다. 9언더파 공동 2위 렉시 톰프슨, 에이미 올슨(이상 미국)과 5타 차다. 1~4라운드 내내 공동 선두도 내주지 않고 단독 선두만 달린 완벽한 와이어 투 와이어 우승. 상금 27만 달러(약 3억 550만 원)를 받으면서 역대 네 번째로 투어 통산 상금 1,700만 달러도 돌파했다. 지난해 2월 호주 여자오픈에서 통산 20승을 채운 뒤 13개월 만에 21승째를 올려 한국인 LPGA 투어 최다승인 박세리(은퇴)의 25승에도 4승 차로 다가섰다.
5타 차 선두로 4라운드를 출발한 박인비는 7번 홀(파4) 버디로 포문을 열었다. 9번(파4), 10번 홀(파5) 연속 버디 뒤 2위 그룹을 7타 차까지 따돌리기도 했다. 12번·13번 홀(이상 파4) 연속 보기로 주춤하는가 싶었지만 247야드의 짧은 파4 홀인 16번 홀(파4)에서 쐐기를 박았다. 티샷을 그린에 올린 뒤 10m쯤 되는 이글 퍼트를 넣어 6타 차로 달아났다. 마지막 날 기록은 버디와 보기 3개씩에 이글 1개로 2언더파. 석 달 만의 첫 실전인데도 박인비는 이번 주 변덕스러운 날씨와 불규칙한 그린을 모두 이겨내며 나흘 내리 2언더파 이상을 쳤다. 세계 랭킹 1위 고진영은 “‘침묵의 암살자’라는 별명이 괜히 생긴 게 아니다”라며 박인비에게 경의를 표했다.
박인비는 그린이 까다롭기로 악명 높은 아비아라GC에서 첫날 27개를 포함해 나흘간 라운드당 퍼트 수를 29개로 막았다. 미국의 간판 톰프슨은 31개였다.
신들린 퍼트로 메이저 대회 3연승(2013년) 대기록을 작성했던 박인비가 퍼트 감을 되찾았다는 것은 1승 이상의 의미를 지닌다. 퍼트 감이 흔들린 가운데서도 지난해 상금 랭킹 3위에 올랐던 그는 겨우내 퍼터와 함께한 끝에 첫 실전에서부터 샷 감과 퍼트 감의 조화를 찾은 모습이다. 자연스럽게 올림픽 2연패 대기록을 기대하게 만든다. 지난주 기준 세계 4위라 올여름 도쿄 올림픽 출전 가능성이 크던 박인비는 이날 우승으로 도쿄행 안정권에 한 발짝 더 다가섰다.
박인비의 마인드셋(마음가짐)도 두 번째 올림픽에 대한 기대감을 높인다. 메이저 4개 대회 우승과 올림픽 제패까지 ‘골든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뒤 동기부여를 잃어 심적으로 방황하기도 했던 박인비는 ‘1승 더’와 ‘메이저 10승(현재 7승)’을 목표로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메이저 10승을 한 시즌에 다 채우는 것도 가능하다고 본다” “잘 풀리는 시간보다 잘 안 풀리는 기간이 훨씬 긴 게 골프 아니겠느냐. 그래서 더 매력적이다” 같은 최근 발언들에서 압박감을 초월한 자신감이 읽힌다. 이날 우승 뒤 박인비는 “대회 전에 아버지가 이번 대회와 다음 대회(ANA 인스퍼레이션)에서 제가 우승하는 꿈을 꾸셨다고 한다. 꿈의 절반이 맞아 떨어졌다”며 “올 시즌 가장 큰 목표는 올림픽 출전권 확보다. 만약 올림픽에 출전할 기회가 생긴다면 컨디션을 잘 유지해서 좋은 경기를 보여드리고 싶다”고 말했다.
고진영은 8언더파 4위, 김효주는 7언더파 공동 5위를 했다. 둘 다 마지막 날 2타를 줄였다. 허미정은 3타를 잃어 유소연·양희영·신지은과 함께 4언더파 공동 12위로 마쳤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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