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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터리]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

윤석진 한국과학기술연구원(KIST) 원장





새해 벽두 주요 보직자들과 국립대전현충원에 참배했다. 서울 동작동이 아니라 대전 현충원을 찾은 것은 과학입국(科學立國)의 초심이 그곳에 묻혀 있기 때문이다. KIST 초대 소장인 故 최형섭 박사는 연구소 설립 당시 해외의 한국인 연구자 800명에게 초대장을 보냈다. 국내 교수의 2~3배, 심지어 대통령보다 많은 급여를 제시했다지만 선진국의 절반에도 못 미쳤다. 그럼에도 500명이 넘는 이들이 고국의 부름에 응답했다. 그중 산업 발전에 가장 도움이 될 연구 계획서를 제출한 18인의 과학자가 선정됐다. 국가가 힘 닿는 대로 지원했지만 척박한 연구 환경은 쉽게 개선되기 힘든 것이었다. 하지만 다시 돌아간 이는 아무도 없었다.

KIST에는 흰 꽃이 쌀밥처럼 보였다는 이팝나무가 곳곳에 있다. 과학기술로 가난한 국민의 배를 채우고자 했던 선배 연구자들의 염원을 담았다고 한다. 그들의 순수한 결의와 헌신에 가슴이 뜨거워진다. 개인보다 나라를 먼저 걱정하는 과학기술 문화는 우리의 자부심이었다. 필자도 그 구심력 안에서 30년 넘게 한눈팔지 않을 수 있었다. 2014년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 초대 융합연구본부장에 지원한 것 역시 같은 맥락이다.

당시 마이클 포터 교수의 국가 경쟁력 이론에 따르면 한국은 생산 요소와 투자가 이끄는 성장 단계를 지나 혁신 주도(innovation-driven)의 단계로 고도화하고 있었다. 국가 전체 연구개발(R&D)의 민간 비중이 70%를 넘기며 공공 연구개발의 역할 재정립이 불가피했다. NST는 국가 현안 해결을 위한 중장기적 융합 연구에 주목했다. 압축 성장 과정에서 발생한 문제들이 사회적 비용을 가중시키며 나라의 발전을 저해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시기 우리나라에 꼭 필요한 공공 연구개발이 무엇인지 치열하게 고민했다.



첫 도전 대상은 도심에 큰 위협으로 떠오른 싱크홀이었다. 예측하기 어려운 점이 국민을 더 불안에 떨게 했다. 이런 사회적 문제는 투자만큼 보상이 따르지 않아 정부출연연구기관이 아니면 감당하기 어렵다. 전자통신연구원·건설기술연구원·철도기술연구원·지질자원연구원의 연구자들이 의기투합하여 1년 8개월여의 융합 연구는 싱크홀을 사전 예측하는 사물 인터넷 기반 도시 지하 매설물 모니터링·관리 시스템을 탄생시켰다. 융합연구단과 출연연들은 여전히 치매·초연결 인공지능(AI)·신종 바이러스처럼 국민의 삶의 질과 국가안보에 직결되는 현안 대응에 몰두하고 있다.

최형섭 박사는 “과학에는 국경이 없지만 과학자에게는 국적이 있다”는 파스퇴르의 명언을 자주 인용했다. 백신의 아버지 루이 파스퇴르는 자녀의 죽음과 뇌졸중 투병 속에서도 누에병 바이러스 연구로 모국 프랑스의 농업을 구했다. 독일 침공 때는 49세의 나이에도 군대에 지원했고 독일 대학에 명예박사 학위를 반납할 만큼 애국심이 강했다. 국가의 지원과 과학기술인의 애국심은 근원이 같아 무엇이 원인이고 결과인지 분리하기 힘들다. 두 가지가 모두 원인이자 결과이다. 선배 과학자들의 정신은 문화유전자 밈(meme·문화 전달에 유전자 같은 중간 매개물 역할을 하는 정보의 형식)으로 여전히 후배들의 가슴에 면면히 이어지고 있다. 곧 과학의 달인 4월이다. 만개하는 이팝나무를 보며 과학자들에게 국적이란 어떤 의미인지를 다시 한번 되새겨볼 때다.

/고광본 선임기자 kbgo@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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