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시론] 한국 '초저출산 늪' 벗어나려면

이삼식 한양대 고령사회연구원장

기존 대책으론 문제 해결 어려워

고용·주거·교육 등 제도적 지원

性평등·워라밸 등 문화도 바꿔야





지난해 합계출산율 0.84명. 2018년 이래 3년째 0명대 출산율은 올해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영향으로 더 낮아질 것으로 예상된다. 초저출산 현상은 단순히 절대적인 수치에 대한 우려가 아니다. 우리가 당면한 경제, 사회, 문화 등 전반에 걸쳐 복잡하게 얽혀있는 문제들에 대한 우려이다.

지난 15년 동안 저출산 대책은 저소득 가정의 보육 지원, 중산층 맞벌이를 위한 일가정 양립제도 도입과 실천 강화, 사각지대 해소, 출산율에 대한 국가 개입 지양 및 삶의 질 향상 등 다양한 스펙트럼을 갖고 있다. 그러나 미래의 청사진과 프레임이 없다 보니 저출산 대책은 지향성 없이 매 정권마다 국정 과제를 통해 내세우고 있는 정책 등을 기존의 정책에 누적시킨 단순한 대책 모음집에 불과하다.

이러한 저출산 대책으로 한국 사회에 뿌리 박힌 저출산의 근본적 원인을 해소하는데 한계가 있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을 하려면 좋은 대학을 나와야 하고 안정적인 일자리가 보장되어야 한다. 그러나 고용이 갈수록 불안정해지고 있는 데다 수입이 주택 가격과 전세가의 상승폭을 따라잡지 못해 자기 집 마련은 고사하고 전셋집 마련마저 어려워지고 있다. 일?가정양립은 공공 부문이나 대기업의 정규직 종사자에만 가능한 실정이다. 저출산 대책의 불충분성으로 인해 돌봄이나 일가정양립 및 양육비 등에 대한 부담이 역시 여전히 크다. 노후 보장이 미흡해 늦게 결혼하면 정년 이후까지 자녀 교육비와 양육비를 부담해야 하므로 쉽게 출산을 선택할 수 없다.

한국 사회에서 결혼과 출산은 점차 특권이 되어가고 있다. 이러한 상황은 특권을 누릴 수 있는 젊은 층들을 빠르게 줄이는 방향으로 전개되고 있다. 청년층의 결혼과 출산 포기 경향은 단순히 가치관의 변화라기보다 선택을 할 수 없는 데에 대한 좌절과 분노의 표시다.



출산율은 단순한 인구학적인 지표가 아닌 결혼과 출산에 대한 국민의 욕구가 얼마나 충족되고 있는가를 가늠하는 상징성을 가진다. 기본적인 욕구가 침해되거나 좌절되면 그만큼 삶의 질은 황폐해진다. 결국 출산율이 회복된다는 것은 국민의 기본적인 욕구가 충족되고 있다는 의미를 가진다. 이러한 관점에서 정부는 0명대 출산율을 직면하여 중요한 결정을 하여야 한다. 0명대 출산율은 어느 유럽 국가도 경험해보지 못했다. 프랑스는 1.6명, 스웨덴은 1.5명 이하로 낮아진 적이 없다. 유럽의 가족 정책 모형을 뛰어넘은 만으로 한국이 초저출산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제는 한국 상황에 적합한 저출산 대책 모형을 개발하여 실천할 때이다.

한국 상황에 맞는 모형은 기본적으로 결혼과 출산이 특권이 아닌 누구나 희망하면 부담 없이 선택할 수 있는 보편적인 권리가 되도록 하는 지향성을 가져야 한다. 공공 부문과 대·중소기업 모두에서 청년 세대에게 안정적인 고용 기회를 충분히 제공할 수 있도록 증원, 보조금 지원, 세제혜택 등 종합적인 대책을 강구해야 한다. 결혼과 출산으로 인한 경력 단절 등 인사 상 불이익을 원천적으로 금지하기 위해 법 규정을 강화하고, 피해 개인의 소송 등에 대한 법률적 지원을 체계화하도록 한다. 또한 일·생활 균형과 양성평등이 실천될 수 있도록 법제적인 장치를 강화하도록 한다. 학력과 학벌, 젠더 및 지역에 따른 고용상 차별을 엄격하게 금지할 수 있도록 블라인드 채용 방법 등의 적용을 법적 의무화한다. 출생아 수와 자녀연령 등에 따라 전세 집 혹은 자기 집 마련을 위한 비용의 일부를 국가가 지원하고, 주택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자녀 양육 가정을 위한 주택 공급을 대폭 확충하도록 한다. 부모의 경제적인 상황에 관계없이 안심 놓고 자녀를 양육할 수 있는 자녀양육안전망을 구축하도록 한다. 고등학교를 의무 교육화 하고, 물가 등을 고려한 양육 수당을 고등학교 졸업 시까지 지급하며, 대학 진학 시에는 경제적 문제로 학업을 포기하지 않도록 자녀 수에 따른 국가장학제도를 실행하도록 한다. 자녀 수가 많을수록 경제적 부담이 가중되므로 자녀 수에 따른 보충적인 지원을 하도록 한다.

이와 같은 한국형 저출산 대책 모형은 고용, 주거, 교육, 젠더, 문화 등에 대한 거시적인 접근이 주류를 이루고, 보육?돌봄과 육아 휴직 등 수당?급여 및 서비스를 지원하는 미시적인 접근이 윤활유 역할을 하는 이중 구조로 설계해야 한다. 모형의 실효성을 높이기 위해 저출산 대책의 연간 예산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가족지출비율 평균(2.4%)을 상회한 3% 수준으로 설정해 미래 세대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도록 한다.

/여론독자부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