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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어른들은 몰라요' 안희연이 영화 한편으로 '하니'를 벗겨낸 요인은…

사진=리틀빅픽쳐스




노래를 부를 때는 세상 더없을 요염함으로, 무대에서 내려오면 특유의 털털함으로 사랑받았다. ‘위아래’ 역주행 영상이 화제로 떠오르며 오랜 무명생활을 털고 대세 걸그룹으로 떠올랐던 EXID 하니에게 연기란 생각해보지 않은 일이었다.

소속사와의 계약이 종료된 뒤 다음 진로를 고민하며 여행하고 있을 때 SNS를 통해 불쑥 웬 영화감독에게 연락이 왔다. 거절했지만 ‘한번 만나보자’는 말에 호기심으로 자리에 나갔고, 결국 “이 사람이라면 내 안의 무언가를 끄집어낼 수 있지 않을까?” 하며 끌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박화영’을 보는 순간 확신했다. ‘이 두근거림은 피할 수 없겠구나.’

연습생부터 아이돌로 활동을 마친 28살까지 쉼 없이 달려온 안희연은 ‘무언가를 이뤘구나’ 하는 생각은 했지만, 다음에 뭘 하고 싶은지 스스로에게 물어도 답을 얻을 수 없었다. 한 곳에 30분만 앉아있어도 옴짝달싹 할 수 없을 만큼 바쁨에 중독된 자신에게 주어진 휴식은 불안으로 다가왔고, 결국 편도 항공권을 사서 외국으로 배낭여행을 떠났다.

이환 감독의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돌아와 만난 안희연은 인간적인 끌림을 느꼈다. ‘박화영’은 가슴을 두근거리게 만들었고, 한번 더 만나자고 해 ‘궁극적으로 영화를 왜 만드는지’를 물었다. 자신이 앞으로 뭘 할지는 모르겠지만, 내가 하는 것이 세상에 조금은 좋은 영향을 줬으면 좋겠다는 말에 이 감독은 “이 영화 하나로 세상이 바뀌지는 않겠지만, 그런 꿈이 있다”고 답했다. 하니는 탈을 벗고 안희연의 모습으로 당장 다음날부터 워크숍에 들어갔다.

“연기가 뭔지 모르는데, 갑자기 튀어나오고 소리지르고…, 그런걸 살면서 해본 적이 없잖아요. 치킨 건물 사무실에서 ‘감정이 올라오면 하라’는데 그게 뭔지도 모르니까 무섭고 서럽고. 감독님께서 의자를 끌고 오며 이게 오토바이라고, 그러면 그 앞에서 으악 하고 살려달라고 하고. 처음에는 도대체 이게 뭐냐고 당황스러웠어요. 하라고 하니까 열심히 했죠. 열심히 하는건 잘하니까.”

“독특한건 그 워크숍에는 맞고 틀린게 없었어요. 자유로웠죠. 주영이었으면 이랬을 것 같아, 이렇게 해보고 싶어. 그런 의견을 나누는 과정이 재미있어지기 시작했어요. 그 공간과 시간을 만들어주신거죠. 전 제가 연기를 그렇게 처음 만날 수 있었다는게 정말 짜릿했고, 즐거웠고 행운이었다고 생각해요. 내 인생에서 가장 짙었던 시기였어요.”

사진=리틀빅픽쳐스


이 감독은 안희연의 내재된 감정을 끌어올리는데 주안점을 뒀다. 길을 막고 지나가보라며 막아서고 비켜주지 않는 것으로 시작된 연습과정은 집을 나온지 4년이나 된, 세상에 대한 불만으로 가득한 주영의 감정을 폭발시키는데 큰 역할을 했다. 안희연은 이를 두고 ‘감정적 만남’이라고 표현했다. 정답과 오답 속에서 살아가던 지난 삶을 온전히 벗겨내고 그 인물이 되어 그 감정을 느끼며 마음껏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좋았다.

그래도 ‘왜 안희연이었냐’는 질문은 남는다. 그는 처음에 감독을 조금 이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하기도 했다. ‘왜 나를? 한 번도 본적 없을텐데’ 했다는 그는 요즘 인터뷰하며 ‘사람들에게 좋은 배신감을 줄 수 있을거라 생각했다’는 감독 이야기를 듣고서야 고개를 끄덕였다고. 그치만 “앞서 물어봤을 때는 씩씩한 걸음걸이를 보고 확신을 얻었다고 하셔서 좋았는데 빈말이었던 것 같다”며 특유의 웃음을 짓던 그는 “네가 주연을 해주면 정말 멋있는 주연이 나올 것 같았어 라는 말도 해주셨다”며 이제는 이 감독이 가족처럼 느껴진다고 했다.

영화는 학교 선생님의 아이를 임신한 세진을 중심으로 4명의 남녀에게 벌어지는 사건의 흐름을 따라간다. 개연성보다는 시간대별 에피소드에 집중하기에 일반적인 상업영화를 생각한 관객에게는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어른들은 몰라요’의 주영 역시 친구들간 벌어진 칼부림의 피해자이지만 가해자의 프레임을 쓰게 되고, 그 상황에서 어떤 어른도 자신의 편이 되어주지 않았던 ‘보이지 않는 과거’를 안고 있는 인물이다. 워크숍에서 이 감독은 엄마도, 친구도, 선생님도, 아빠도 되어주며 이해되지 않는 지점을 납득시키려 노력했다.



“‘박화영’에서도 인물 전사를 시각적으로 설명해주지 않아요. 그런데 왠지 그럴 것 같은, 배어나오는 느낌이 있잖아요. 구체적으로 ‘이랬습니다’ 보여주지 않아도 뭔가 알 것 같은 느낌. 그 영화를 보고 나서 영화적 허용이라는 것도 알게 됐어요. 그리고 내가 주영을 연기하면 나도 납득이 가지 않을까, 괜찮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죠.”

사진=리틀빅픽쳐스


주영이 감정적으로 가장 격해지는 장면은 함께 다니던 친구에게 위해를 가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하는 부분이다. 워크숍에서 가장 많은 비중을 뒀지만, 너무 두려웠다. 28년간 안희연이 세웠던 모든 도덕적 기준을 무너트려야 했다. 아이돌 시절만 하더라도 그게 무너지면 죽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막상 해보니 자유로워졌다. 덕분에 자신을 흔들던 강박이 무너졌다.

“사람을 돌로 내리쳐야하는데, 그렇게 살지 않으려고 최선의 노력을 다 하고 살잖아요. 근데 그런 신이고 그래야만 하니까. 연기를 연기로 못하는데 큰일 난거에요. 그 촉감에 익숙해지면 무너지지 않을까 해서 돼지고기를 사고 큰 돌을 찾아와서 쳐봤더니 온 신경에 안좋은 감각이 가득하더라고요. 여기 누워있을 사람이 괜찮을지 아무것도 안들리고 안보이고, 사람이 얼이 빠져요. 온 신경이 쏠리는데 엄청나게 큰 경험이었어요.”

워낙 파격적인 작품이었고, 이전까지만 해도 영화출연에 대한 생각은 없었던 만큼 계속 연기를 할거냐는 고민을 했을 만도 하다. 이 상화에서 그는 자기 자신을 다시 한번 시험해보기로 했다. 의미있는 것을 하는게 좋았는지, 연기가 좋았는지 판단하기 위해 다시 그 환경에 자신을 던졌다. 바로 다른 작품에 참여해도 괜찮을까 고민하기도 했지만, 이 감독이 ‘캐릭터를 떼어내는 여러 방법 중 나와 비슷한 인물을 연기하며 멀어지는 부분도 있다’는 말에 용기를 냈다. 그리고 그 방법은 웹 드라마 ‘엑스엑스(XX)’에서 잘 통했다.

사진=리틀빅픽쳐스


연습생에서 아이돌로, 다시 배우로 자리잡으며 어느덧 연예계 생활도 완숙기에 접어들었다. 그만큼 고민이 없을 수는 없다. 아이돌 시절 한군데 30분도 앉아있을 수 없어서 이 카페에 갔다가 얼마 뒤 다른 카페로 옮겨야 편하던 시기도 있었다. 그때의 여유는 곧 나태와도 같았다. 가수와 멀어지고 한참이나 시간이 흘러서야 그 여유가 자유인걸 알았다. 이제야 조금 어른이 됐다고 느낄 만큼.

“친구들은 제가 연습생이었던 시기에 인생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고 하더군요. 저는 ‘짤리면 어떡하지, 데뷔하고 싶다’는 다른 차원의 고민만 했던 것 같아요. 그 친구들이 했던 고민을 나중에 시간이 훨씬 지나서 하게되고. 속도가 다른 삶을 살았던거죠. 저도 아직 어른은 아닌 것 같고, 사실 어른이 뭔지 잘 모르겠고 아직 성장 중인 것 같아요. 이해되지 않는 지점도 있었지만, 비슷한 점도 많아요.”

다행이 연기는 앞으로도 계속 하고 싶을 만큼 재미있다. 안희연이 바라보던 시각을 넘어 캐릭터를 통해 보다 확장된 시각을 갖게 됐다는 그는 “그 시각을 나를, 세상을 배우는게 너무 재밌다”고 했다. 그래서일까, 그는 ‘어른들은 몰라요’는 엔딩 크레딧과 함께 나오는 노래까지 꼭 들어달라고 부탁했다.

“그 노래를 촬영장에 오고 갈 때 계속 들었어요. 그대들은 어떤 기분이냐고, 그래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계속 물어요. 다양한 질문이 생기는데 이 영화가 제목을 참 잘 지었다고 생각했어요. 과연 어른이 뭐고, 뭘 알아야 하며, 모르는건 뭐고, 좋은 어른은 뭐고, 뭘 해야 하는지. 계속해 물으니까…. 그래서 이걸 보고 당신들은 어떠냐고 그 질문을 꼭 남기고 싶어요.”

/최상진 기자 csj8453@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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