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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색인문학] 피라미의 은빛 군무를 보았는가

■사랑, 죽음 그리고 미학-자연은 인간의 영원한 고향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타인 의식, 군중 속 고독한 도시인

비정·술수·가식적 세속에 물들어

어린 시절 경험한 자연의 혼·숨결

시적 생명력으로 되살아 나는 법

생명과 사랑이 태동하는 곳, 자연

방사능폐기물로 파탄돼선 안될 일

피라미




안톤 체호프의 ‘산딸기’라는 단편소설에는 이런 문구가 등장한다. “평생 단 한 번이라도 농어를 잡아봤거나 가을에 이동하는 개똥지빠귀들, 그러니까 맑고 신선한 날 시골 마을 위로 떼 지어 날아가는 개똥지빠귀를 본 사람은 말이죠, 절대 도시 사람이 될 수가 없어요.” 수사학적 과장으로 들릴 수 있는 이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선선히 이 말에 동의하는 한 사람으로서 필자는 그 이유를 밝혀보고 싶다.

우선 인용문에 등장하는 도시 사람이란 어떤 사람을 가리킬까. 소설 문맥상 의미는 그다지 긍정적이지 않다. 비정하고 술수에 능하고 가식적이며 세속에 물든 사람을 뜻한다. 그는 숱한 사람들과 만나지만 피상적 관계에만 머문다. 항상 타인으로부터 인정받으려 애걸하지만 군중 속 고독을 사무치게 느끼는 사람이다. 그렇다면 체호프의 말처럼 농어를 잡거나 개똥지빠귀를 본 사람, 다시 말해 자연 체험을 한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딱히 떠오르는 모델도 없으니 필자를 분석 대상으로 삼기로 한다.

안톤 체호프


필자는 서울에서 태어났고 지금껏 생의 태반을 서울에서 살았다. 그 점만 고려한다면 도시 사람이라 말해야 한다. 하지만 서울 토박이 느낌이 들지 않는다. 이곳이 그다지 정겹거나 친밀하지 않다. 타향 같다. 어머니의 자궁처럼 존재의 친밀한 근원이라 생각되는 곳이 고향이라면, 분명 서울은 내 고향은 아니다. 빽빽한 아파트 밀림에 둘러싸여 있어도 마음 편히 누울 내 집이 없거나 혹은 기억에 남을 새 없이 도시 개발을 남발하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고향은 유년기 시절을 보냈던 충청북도의 어느 시골 마을이다. 지금도 자주 기억난다. 천둥벌거숭이로 뙤약볕이 뜨거운 냇가에서 물고기를 잡고 산꼭대기부터 빠르게 내려오는 구름에 쫓겨 들판을 뛰었던 장면이 말이다. 가을에는 밤을 따러 풀숲을 헤집고 다녔고 겨울에는 허공에 연을 날리다가 지나가는 철새들을 봤다. 체호프가 말했던 개똥지빠귀 경험을 한 셈이다. 정말로 그 경험은 강렬해서 좀체 잊히지 않는다. 참을 수 없는 삶의 무게가 나를 짓누를 때마다 그때 그 경험은 생의 버팀목이자 도시 생활의 해악에 물들지 않게 하는 방파제 역할을 했다. 붉은 석양이 질 무렵 잔잔한 수면 위로 은빛 찬란하게 뛰어오르는 피라미의 군무(群舞)를 본 사람이라면 절대 도시 사람이 될 수 없다.

개똥지빠귀




이런 종류의 경험은 시적 체험과 유사하다. 다음과 같은 정현종 시인의 이야기를 듣고 필자는 단번에 수긍했다. “시인이 어린 시절에 살았던 자연(숲)의 숨결과 혼은 고스란히 시인의 숨결이 되고 영혼이 되었다. 감수 능력과 호기심이 문자 그대로 무한한 어린 시절, 다시 말해 모든 신체 기관의 잠재력이 무한하다고 할 수 있는 어린 시절을 어디서 어떻게 살았느냐 하는 것이 특히 예술가에게 중요하다. 시인이라면 그의 작품의 생명력을 그의 청소년 시절 자연 체험과 떼어놓고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두터운 삶을 향하여')”

현재 인류는 한편에서 바이러스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다른 편에서는 인간의 자연 파괴가 전염병 같은 재앙을 불렀다는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자연과 인간은 마치 연인의 밀당처럼, 애증병존 감정의 흐름처럼, 싸우다 화해하기를 반복한다. 지금껏 그래왔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사랑의 관점에서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바라본다면 우리 인간의 태도가 어때야 하는지가 쉽게 도출된다.

사랑하는 연인들끼리 자주 사소한 일로 다툰다. 당연히 당사자들에게는 사소하지 않게 보인다. 하지만 사랑보다 더 크고 중요한 일은 없다. 어리석게도 우리는 자주 그 점을 놓친다. 그리고 사무치게 후회한다. 다시 체호프의 말이다. “그제야 우리의 사랑을 방해한 그 모든 것이 얼마나 불필요하고 사소하고 기만적이었는지 깨달았습니다. 사랑할 때, 그리고 그 사랑을 생각할 때는 일상적인 의미에서의 행복이나 불행, 선행이나 악행보다 더 고상한 것, 더 중요한 것에서 출발해야 하며, 아니면 차라리 아무 생각도 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사랑에 관하여').” 사랑을 위한 무념무상의 미덕!

자연을 사랑한다면 사랑 외에는 아무 생각도 말아야 한다. 예를 들어 인류는 아직 방사능 폐기물을 처리하는 방법을 모른다. 그렇다면 이해득실, 경제적 효율성 등을 따지지 말기로 하자. 관계가 파탄 난 다음 그 대가로 서글픈 깨달음을 얻지는 말자.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횔덜린의 말처럼 이익에 따라서가 아니라 “인간은 시적으로 거주한다.” 생명과 사랑(지그문트 프로이트는 이 둘을 합쳐 ‘에로스’라 칭했다)이 넘치고 시가 태동하는 장소야말로 인간의 고향인 자연이다. 동시에 그곳은 다시금 거주하고 싶은 이상 도시다.

김동규 한국연구원 학술간사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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