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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똥더미'를 SNS로 쓰는 야생토끼?…숲은 고요하지 않다

마들렌 치게 지음, 흐름출판 펴냄





버섯은 나무의 언어를 써가며 파트너십을 맺고, 야생 토끼는 똥 더미를 소셜미디어로 활용한다. 단세포 생물인 짚신벌레는 적의 위협이 감지되면 이를 격퇴하는 일종의 요격 장치를 탑재하고 있다. 동화 속 이야기가 아니다. 생명체는 저마다의 소통을 통해 살아남고, 종족 번식을 한다. 숲은 고요한 장소라고 그 누가 말했던가. 독일의 생물학자 마들렌 치게는 숲에 대한 이 선입견에 책 제목으로 응수(?)한다. ‘숲은 고요하지 않다’고.

책을 관통하는 키워드는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이다. 생물은 시각, 청각, 후각을 이용해 저마다의 수신·송신 체계로 신호를 주고받고, 이 같은 소통을 통해 생존한다. 수많은 생명체의 식단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단세포 생물도 ‘경이로울 만큼’의 커뮤니케이션으로 자신을 보호한다. 예컨대 짚신벌레의 표면에는 천적의 화학 정보를 감지하는 수용체가 있어 천적의 냄새 분자에 즉각 반응한다. 코벌레의 등장을 감지한 짚신벌레는 즉각 ‘트리코시스트’라는 화살을 쏘는데, 이 공격은 짚신벌레가 적으로부터 탈출하기 위한 시간을 벌어준다. 한 곳에 뿌리내리고 살기에 도망갈 수 없는 식물은 그 자리에서 어떻게든 싸우고 버티며 목숨을 지킨다. 그래서 발달한 게 화학적 신호다. 살선충버섯은 먹이인 선충의 행동을 조종하는 냄새를 방출한다. 버섯을 구성하는 균사 세포는 땅속에 느슨하게 퍼져있다가 선충이 그 안에 들어오면 올가미 실을 바짝 조여 먹이를 손에 넣는다. 균사와 냄새로 올가미 덫을 놓는 셈이다. 그런가 하면 비늘송이버섯은 ‘다른 종의 언어’로 파트너십을 맺어 성장을 도모한다. 이 버섯은 혼합림과 침엽수림의 나무들과 공생관계를 맺는데, 이들 숙주식물이 생산하는 화학물질인 ‘인돌-3-아세트산’을 똑같이 방출한다. 버섯은 나무파트너가 전송한 물질에 반응해 균사를 더 길게 뻗고, 이 활발한 대화를 통해 더 많은 양분을 섭취한다.

그런가 하면 야생 토끼에겐 똥과 오줌이 가장 개인적인 소통 수단이다. 이 배설물엔 나이, 성별, 짝짓기 준비 정도에 관한 개인정보를 드러내는 냄새 물질이 담겨 있다. 한 무리가 정기적으로 반복해서 같은 장소에 배설하면, 조만간 그곳에 똥 무더기가 생기는데, 저자는 “포유동물의 공중변소는 기능 면에서 인간의 소셜미디어와 똑같다”고 설명한다.



여러 생명체의 기상천외한 커뮤니케이션은 그들이 처한 생활 환경에 따라 그 방식도 바뀐다. 책은 시골 야생 토끼와 도시로 옮겨 간 야생 토끼의 ‘공중변소’의 차이부터 소음 많은 도심에서 이뤄지는 ‘소리 소통의 변화’ 등에 대한 연구도 상세하게 소개한다.

이 같은 바이오 커뮤니케이션은 숲 속 이야기를 떠나 인간 세상의 소통으로도 확장된다. 생존이라는 것은 결국 같은 공간에 사는 수많은 다른 생명체들이 서로 얼마나 소통하며 조화롭게 사느냐에 달렸기 때문이다. 저자는 자연과의 꾸준한 접촉을 강조하며 “그렇게 당신 자신과 당신의 의사소통에 도움을 얻자”고 제안한다. 과학 정보를 문학적으로 흥미롭게 풀어낸 데다 원서의 글말을 살린 번역이 돋보인다. 코로나 시대, 각자의 시공간에 갇혀 있는 이들에게 신선한 자극이자 휴식이 될 만한 책이다. 1만 8,000원.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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