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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환 충격 '방파제'인데…韓銀 적립금 손대면 통화정책 흔들린다

['韓銀 적립금'까지 퍼주자는 與]

◆與 '적립률 30 → 10% 하향' 추진

韓銀 자산대비 적립금 3% 불과

대만·싱가포르 등 5~15% 수준

"중앙銀 중립성 위해 5%는 필요"

자본잠식 예방 금리조정 불가피

"물가·금융 안정 목표 흔들릴 것"





한국은행은 지난 2011년 한은법 개정을 통해 법정 적립 비율을 10%에서 30%로 대폭 상향했다. 2004년부터 2007년까지 4년 연속 적자가 발생하며 적립금이 고갈될 위기에 처하자 적립 비율 수준을 높인 것이다. 당시 한은법 개정안을 발의한 백재현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은 “중앙은행 신뢰성 확보와 최적의 통화 신용 정책을 위한 환경 조성 및 정부 재정의 건전성 유지를 위해 한은은 재정에 의존하기보다 충분한 적립금을 바탕으로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근 민주당은 한은의 법정 적립 비율을 다시 10%로 낮추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적립금을 과도하게 쌓지 말고 세입에 납부하거나 국난 극복을 위한 상생협력연대기금 재원으로 활용하라는 것이다. 충분히 쌓아두고 독립성을 지키라더니 불과 10년 만에 적립금을 바라보는 입장이 뒤바뀐 것이다.

경제학계에서는 최근 한은이 저금리 등으로 이익이 늘면서 적립금 잔액이 크게 증가한 것은 맞지만 위기 대비용이라는 취지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지난해 사상 최대 이익을 낸 만큼 역대 최대인 5조 1,220억 원을 정부 세입으로 납부했다. 적립금보다 많은 돈을 세입으로 가져가면서도 손실 보전을 위한 비상금까지 손을 대려는 것이다. 여기에 한은의 법정 적립금 잔액은 17조 152억 원으로 지난해 말 기준 총자산 538조 7,303억 원의 3.15% 수준이다. 한은 내부적으로 합의된 수치는 없지만 통상 5% 내외가 적정 수준인 것으로 평가된다. 한국과 비슷한 소규모 개방경제형 국가인 네덜란드·싱가포르·말레이시아·대만 등의 총자산 대비 적립금 비율은 5~15% 수준이다.

무엇보다 한은은 외화증권 자산과 통화안정증권 부채 비율이 높아 금리나 환율 움직임에 따라 언제든 대규모 적자가 발생할 수 있는 구조다. 최근 외환 보유액 등 자산 규모가 커지면서 변동성도 확대됐다. 외환시장에서의 충격 한 방에 수조원대 적자가 발생할 수도 있다. 한은 관계자는 “자산 규모가 커진 만큼 수익이 많이 날 수 있지만 그만큼 크게 줄어들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적립금이 고갈돼 한은이 적자를 내게 되면 통화정책 수행 능력에 대한 신뢰도 저하와 함께 통화정책 운용에 제약이 생길 수 있다. 이에 중앙은행의 자본 잠식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해서라도 적립금을 충분히 확보할 필요가 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한은이 수지에 신경을 쓰기 시작하면 자본 잠식에서 벗어나기 위해 물가 안정 목표와 맞지 않아도 금리 인하 등에 나설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유럽중앙은행(ECB)의 울리히 빈드자일 총괄도 과거 “중앙은행이 과도하게 금리를 인하하거나 통화 공급을 확대하지 않도록 자본 잠식을 사전에 예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앙은행 독립성에도 직격탄을 맞는다. 한은 적립금이 고갈될 경우에는 한은법 100조에 따라 정부가 이를 보전하게 돼 있는데 정부로부터 예산을 받게 되면 통화 신용 정책 중립성에 대한 신뢰가 떨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이주열 한은 총재도 3월 법정 적립 비율 조정에 대한 질문에 “한은 수지는 대규모 손실이 발생하면 정부 예산으로 보전해야 하며 이는 국민 부담으로 귀결되는 만큼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할 사안”이라며 신중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하준경 한양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은은 무자본 특수법인이기 때문에 발생한 이익이 국고로 들어가는 구조라서 적립금을 줄인다는 것은 국고로 좀 더 많이 가져가겠다는 의미”라며 “정부가 돈이 더 필요하면 유통시장에서 국채를 사는 방법 등이 있기 때문에 적립 비율 조정이 본질적인 문제 해결 방법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한은에 대한 정치권의 압박은 갈수록 강해지는 양상이다. 여당은 올해 초 자영업자 손실보상금에 필요한 재원을 마련하기 위해 한은의 발권력을 동원하는 방안을 추진하기도 했다.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면 중앙은행이 바로 인수해 적자를 보전하는 이른바 ‘부채의 화폐화’를 법제화하자고 나선 것이다. 이는 중앙은행 독립성 침해는 물론이고 대외 신인도 하락에 따른 자본 유출 등 각종 문제로 세계 주요국에서 법으로 금지한 방식이다. 여기에 고용 안정을 정책 목표에 포함하는 방안도 추진되고 있다. 이에 한은 내부에서는 물가 안정과 금융 안정에 고용 안정까지 포함될 경우 모든 정책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반응이 나온다.

/조지원 기자 jw@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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