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후 장기기증은 재산의 유무에 상관없이 누구나 할 수 있는 사랑의 실천입니다. 이는 자신이 죽은 후 흙으로 돌아갈 장기들을 나누겠다고 약속하는 일이므로 부담을 가질 필요가 없으며, 큰 행복을 체험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므로 많은 이들이 사후 장기기증 운동에 참여하면 좋겠습니다.”(책 '추기경 정진석' 中)
고(故) 정진석 추기경의 사후 안구기증이 우리 사회에 장기기증에 대한 관심을 불러 일으키고 있다. 한국 천주교는 장기기증 동참을 촉구하는 생명나눔 캠페인을 통해 정 추기경의 생명나눔 정신을 이어나가기로 했다.
8일 천주교 서울대교구에 따르면 교구 산하 한마음한몸운동본부에는 정 추기경 선종 이후 장기기증 관련 상담이 늘고 있다. 상담전화는 평소 2배 수준인 하루 평균 100통이 걸려오고, 방문자와 각 교구 및 본당을 통한 장기기증 희망 신청자가 잇따르고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고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봉사단체로 장기기증 외에도, 헌혈운동, 무료급식소 명동밥집, 해외지원사업 등을 운영 중이다. 명동밥집은 정 추기경이 선종 직전 1,000만원을 기부한 곳이기도 하다.
정 추기경은 서울대교구장 시절인 2006년 뇌사 시 장기기증과 사후 각막 기증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지난달 27일 선종 직후 안구 적출 수술이 진행됐으며, 기증된 안구는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 안센터에서 안질환 연구에 활용할 계획이다. 정 추기경은 2018년 연명의료계획서를 작성하면서 "나이로 인해 장기기증이 어렵다면, 안구라도 기증해서 연구용으로 사용해달라"는 글을 써 남기기도 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센터 이창하 팀장은 "고령인 추기경의 안구기증 소식은 나이가 많으면 안구기증을 할 수 없다고 생각했던 50대 이상의 참여 의지를 독려하는 결과로 이어졌다"며 "환자에게 이식이 안 되더라도 연구를 위한 생명나눔에 동참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 이들이 ‘용기를 얻었다’며 연락한 경우도 많았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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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정 추기경이 남긴 생명나눔 정신이 계속 이어질 수 있도록 지난 2일부터 생명나눔 캠페인을 진행 중이다. 코로나19로 생명나눔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현저하게 줄어든 상황을 반영해 주제를 '유일한 생명백신, 장기기증'으로 정하고, 앞으로 한마음한몸운동본부를 통하지 않더라도 각 본당에서 자체적으로 장기기증 서약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한편 지난 29일 서울 중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1층 '장기기증자 기억공간'에는 정 추기경의 이름이 새겨졌다. 장기기증자 기억공간은 사후 장기기증자들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지난 2019년 조성됐다. 현재 안구를 기증한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해 정 추기경 등 사후 장기기증자 307명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오는 6월까지 ‘희망을 씨앗을 심은 사람들’이라는 주제로 장기기증을 실천한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전시도 진행 중이다.
/최성욱 기자 secret@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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