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언더파 공동 선두인 안나린의 11번 홀(파5) 중거리 퍼트가 홀 바로 앞에서 멈추는 사이 박민지(23)는 미동도 없이 1m 남짓한 자신의 퍼트 라인에서 눈을 떼지 않고 있었다. 신중한 심호흡 뒤 시도한 버디 퍼트. 볼은 홀 한가운데로 들어갔다.
박민지가 ‘수중 혈투’의 최후 승자로 우뚝 섰다. 16일 경기 용인의 수원CC(파72)에서 끝난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 NH투자증권 레이디스 챔피언십에서 박민지는 3라운드 합계 14언더파 202타로 2위 안나린을 1타 차로 따돌렸다.
멎을 만하면 다시 쏟아지는 비에 드라이버 샷은 잘 구르지 않고 그린에서 스피드 맞추기도 여간 어렵지 않았지만 박민지는 시종 침착함을 유지하면서 버디 4개(보기 1개)를 잡았다. 사흘 간 버디 16개를 쌓는 동안 보기는 단 2개로 막았다.
올 시즌 5개 대회 성적이 ‘11위-우승-컷 탈락-공동 13위-우승’. 최근 4개 대회에서 2승으로 초반 질주가 무섭다. 1억 2,600만 원의 우승 상금을 챙겨 상금 순위를 4위에서 선두(약 2억 8,600만 원)로 끌어올렸다.
1타 차 단독 선두로 출발한 박민지는 같은 조 안나린과 팽팽한 승부를 벌였는데 뒤로 갈수록 박민지의 집중력이 진가를 발휘했다. 13번 홀(파3) 티샷을 핀 80㎝에 딱 붙여 2타 차로 달아났고, 1타 차로 쫓긴 채 맞은 18번 홀(파4)에서 파를 지켜 우승을 완성했다.
장하나와 연장 승부 끝에 시즌 첫 승을 거둔 뒤 불과 3주 만의 2승째다. 올 시즌 첫 다승자가 됐는데 한 시즌 2승은 개인적으로도 최초 기록이다. 2017년 데뷔해 매년 1승씩을 쌓으며 꾸준함을 뽐낸 박민지는 간절하게 바랐던 ‘시즌 2승’을 5년 차 시즌의 초반에 달성했다. 통산 6승째. ‘은퇴할 때까지 20승’이라는 최종 목표를 향해 잰걸음을 놓고 있다.
경기 후 박민지는 “그토록 원했던 한 시즌 2승을 후원사 주최 대회에서 해내 더 뜻 깊다. 이틀 전에 우승하는 꿈을 꿨는데 정말 현실이 됐다”며 “들뜨지 않고 3승을 향해 달려가겠다”고 말했다.
박민지는 최혜진, 박현경과 국가대표 생활을 함께했다. 2016년 세계여자아마추어팀선수권에서 21타 차의 기록적 우승을 합작하기도 했다. 1984년 로스앤젤레스 올림픽 여자 핸드볼 은메달리스트인 어머니 김옥화 씨의 근성을 닮아선지 중학생 시절 새벽 2시 반에 일어나 9홀짜리 파3 골프장을 하루 7바뀌씩 돌았다. 올 시즌을 앞두고는 매일 2시간씩 턱걸이, 달리기, 팔굽혀펴기를 하며 근육량을 늘렸다. 160㎝가 될까 말까 한 키에도 박민지는 드라이버 샷으로 255야드를 보낸다.
지난 시즌 가을에만 2승을 거뒀던 안나린은 역전 우승은 놓쳤지만 2라운드에 박민지와 똑같이 7언더파를 몰아치는 등 새 시즌 첫 승을 재촉했다. 안나린과 함께 공동 2위로 출발한 이다연은 12언더파 3위, 개막전 챔피언 이소미는 11언더파 공동 4위를 했다.
1라운드 공동 선두였던 이정민과 김세은은 각각 9언더파 7위, 4언더파 공동 20위로 마쳤다. 상금 1위였던 박현경도 20위다. 지난주 우승자 곽보미는 5언더파 공동 14위, 발목 부상에서 돌아온 장하나는 6언더파 공동 10위로 마감했다. 지난해까지 대상(MVP) 3연패를 차지했던 최혜진은 이날 5타를 잃어 4오버파 63위로 밀렸다.
/양준호 기자 miguel@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