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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둠을 삼킨 빛…당신의 밤이 위험하다 [책꽂이]

■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

<아네테 크롭베네슈 지음, 시공사 펴냄>

인간 끝없는 욕심이 낮·밤 경계 허물고

인공빛이 시간 제약서 해방시켜 줬지만

24시간 지속 '빛 공해' 고스란히 노출

불면증·행복감 감소 등 생체 리듬 파괴

자연 생태계 무너지며 동·식물도 피해

우주에서 찍은 한반도의 야경. 사진의 오른쪽 아래 밝은 부분이 한국이고, 가운데 어두운 곳이 북한이다./AP=연합뉴스




지구 밖에서 찍은 한반도의 야경이 화제가 된 적이 있다. 한반도의 위쪽 절반(북한)은 칠흑 같은 어둠에 휩싸였고, 아래 쪽 절반(한국)은 반짝이는 불빛이 수놓은 사진이다. 대조적인 모습을 보며 많은 이들은 북한의 전력난 혹은 남북한의 경제 격차를 생각했지만, 조금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면 이런 의문이 든다. 우리의 밤은 왜 이리 밝은 것일까. 한반도 남쪽의 이야기 만은 아니다. 일부 국가를 제외하면 빛은 거대한 뚜껑이 되어 밤하늘을, 아니 지구를 뒤덮고 있다. 잠들지 않는 24시간 사회, 백색 도시 속에서 누군가는 말한다.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고.

신간 ‘우리의 밤은 너무 밝다’는 환경에 대한 책이다. ‘환경 오염’하면 흔히 플라스틱 쓰레기, 기후 변화, 미세 먼지가 떠오르지만, 생물학자인 저자는 많은 독자에게 아직 생소한 소재에 주목한다. 인간의 삶과 생태계를 서서히, 그러나 철저히 망가뜨리고 있는 ‘빛 공해’다. 빛 공해는 인공적인 빛에 의해 밤이 밝아지는 현상을 말한다. 밤에도 환하게 불을 밝히는 고성능 전조등과 광고판과 가로등, 도시를 휘감은 네온사인 등 인공의 빛은 인간을 시간의 제약에서 해방시켜 줬지만, 한편으로 어둠을 집어삼키고, 우리의 밤을 폐기하기에 이르렀다.

문제는 낮과 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식물과 동물, 그리고 인간의 세계가 무너진다는 데 있다. 예컨대 대부분의 철새는 태양이 대기를 데우지 않고 기류의 소용돌이가 적은 밤에 이동한다. 이들은 지형지물과 지구 자기장에 의존해 방향을 잡는데, 빛은 새들의 이 기능을 방해한다. 나침반이 무력화된 새들은 결국 불 밝힌 고층 빌딩이나 밝은 조명의 주유소 바닥을 향해 날아가다 충돌해 죽거나 상처 입은 상태로 다른 동물에게 잡아먹히고 만다. 학자들은 매년 곤충 수십억 마리가 죽어가는 것을 우려하는데, 이 역시 인간이 밤을 낮으로 만든 탓에 벌어진 일이다. 물 위에 알을 낳아야 하는 곤충들이 빛이 반사된 아스팔트를 수면처럼 생각해 그곳에 알을 낳고, 알들은 허물을 벗지도 못한 채 땅바닥에 붙어 말라 죽는다는 것이다. 곤충의 감소는 수분 작업을 방해하고, 식물의 성장과 열매의 수에도 영향을 미친다. 먹이의 감소는 작은 동물에서 큰 동물로 영향을 미치고, 이 먹이사슬의 정점엔 인간이 자리하고 있다.



먹이사슬 단계를 거치지 않더라도 인간은 이미 빛 공해의 직접적인 피해를 입으며 살아가고 있다. 눈부심, 두통, 불안, 수면 장애, 비만, 암, 치매 등 현대인이라면 누구나 하나 이상 경험해 본 질환들로 말이다. 저자는 인간의 생체 시계가 나름의 박자를 지키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게 빛이라고 설명한다. 아침 햇빛 속 청색광을 쐬면 도파민·세로토닌이 분비돼 우리 몸은 활동 준비에 들어간다. 반대로 어두워지면 잠을 촉진하는 멜라토닌이 분비된다. 자야 할 시간에 빛이 들어온다면 멜라토닌 분비는 중단되고 우리 몸의 심장은 다시 힘차게 뛴다. 시도때도 없이 들어오는 빛이 자연스러운 인간의 생체 리듬을 교란하는 것이다. 수면장애에 뒤따르는 결과를 과소평가해선 안 된다. 행복감의 감소, 수행 능력의 저하, 질병 증가 같은 문제 뿐만 아니라 만만치 않은 경제적 파장도 초래한다. 미국 최대의 싱크탱크인 랜드 연구소는 2016년 독일의 수면 장애로 인한 경제적 손실을 600억 달러로 추정했다.

남의 나라 이야기가 아니다. 지난 2016년 위성사진을 통해 세계 주요 20개국의 빛 공해 노출 면적을 측정한 결과 한국은 89.4%로 2위를 차지했다. 책에선 한국의 빛 공해와 그 영향에 대한 연구들도 상세히 소개하며 그 심각성을 강조한다. 한국인 연구자들이 수면제를 처방받은 60세 이상 성인 5만 2,000명의 주거지 밝기를 위성 사진으로 살펴본 결과, 수면제 복용 가능성은 물론 1회 복용량도 주거지 밝기에 비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빛 공해에 대한 흥미로운 연구와 사례는 책의 내용을 한층 풍성하게 한다.



밤에도 밝게 빛나는 서울의 모습


빛 공해가 다른 환경 문제에 비해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는 것은 ‘빛=안전’이라는 인식 때문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은 밝은 곳에서 더 안전하다고 느끼고, 그 때문에 빛에서 비롯된 불편을 감수한다. 저자는 세계의 다양한 연구를 통해 ‘더 밝다고 더 안전하지는 않다’는 점을 설명하며 인간과 자연의 안녕을 위해 어둠이 보존돼야 한다는 점을 거듭 강조한다.

책은 ‘가로등의 OO%를 줄이자’ 식의 대안을 제시하지는 않는다. 그저 ‘지금보다 더 자주 불을 끌 것’을 제안하며 각자의 실천을 촉구한다. 책에 인용한 생태학자 켈리 펜돌리의 대답은 그 실천의 좋은 길잡이가 될 듯하다. “스스로에게 빛이 필요한지 물어보고, 필요하다면 불을 딱 하나만 밝히라. 그것이 충분하지 않으면 두 번째를 더하라. 0에서 시작해 당신이 충분히 밝다고 느낄 때까지 그 일을 계속 진행하라.” 1만6,000원.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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