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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청와대
“촛불 정권, 6·10항쟁 정신 배반···운동권 포진했으나 민주주의 퇴행” [청론직설]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산업화 통한 경제적 성취 토대 위에 민주화도 가능

민주화 앞장섰다고 혜택독점 잘못…“유공자증 반납”

‘이준석 돌풍’ 혁명적이지만 성공·실패의 두 갈래 길

‘탈원전’으로 대참사, 임기 끝나면 ‘역사 속 유물’ 전락

과학기술·문화예술·생태환경 융합이 4차혁명 견인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이 9일 서울 성북구 ‘이해박는집’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6·10민주항쟁을 통해 쟁취한 것으로부터 더 전진하지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후퇴했다”고 말하고 있다. /오승현 기자




운동권 출신인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은 지난 4월 부인 전은주 씨와 함께 광주민주화운동 유공자증을 반납해 눈길을 끌었다. 설훈 더불어민주당 의원 등 73명이 민주화운동유공자예우법을 발의한 것에 대한 매서운 질책이자 자성이었다. 설 의원 등은 민주화 유공자와 가족에게 취업·교육 지원 등을 하는 것이 ‘셀프 특혜’라는 비난이 들끓자 엿새 만에 법안을 철회했다.

김 전 장관은 9일 서울 성북구 동소문동 ‘이해박는집’에서 서울경제와 만나 “촛불로 태어난 정권이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다”며 “전두환·노태우 정권이 끝난 뒤 민주주의 후퇴가 가장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는 민주화를 열망한 6·10 항쟁 정신에 대한 배반”이라고 질타했다. 그는 “탈(脫)원전은 정치권의 ‘무지의 용기’와 문재인 대통령의 ‘오기의 정치’가 만든 대참사”라며 “더 늦기 전에 문 대통령이 탈원전 고집을 꺾는 결단을 내려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김대중 정부에서 최연소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내고 ‘민주당’ 계열 정당 공천으로 네 차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하지만 2016년 민주당을 탈당한 뒤 몇 차례 선거에서 고배를 마셨다. 시인이자 치과 의사인 그는 최근 페이스북·유튜브 등을 통해 목소리를 내면서 정치 본연의 역할을 찾았다고 했다.



-민주화운동 유공자증 반납이 화제를 낳았다. 특별한 계기가 있었나.

△유공자증을 반납했다고 해서 1970년대 민주화운동 정신까지 반납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유공자증을 반납함으로써 민주화운동을 했던 초심으로 돌아가겠다는 결심을 했다. 전 국민이 동참해 이뤄낸 민주화인데 조금 더 앞장섰다고 해서 혜택을 독점하는 것은 옳지 않다. 문재인 정부는 운동권 정권이라고 할 수 있을 정도로 1970~1980년대 민주화운동을 했던 사람들이 포진해 있다. 그런데 이 정권에서 민주주의가 후퇴하고 있다는 사실에 깊이 절망한다. 촛불로 태어난 정권이 역설적이게도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있는 셈이다. 1987년 민주화 이후 민주주의가 가장 심하게 후퇴하고 있다.

-민주화운동 세대로서 6·10민주항쟁 34주년을 맞으면서 감회가 남다를 것 같다.

△5·18 광주민주화운동 기념일, 6월 6일 현충일, 6·10민주항쟁 기념일 등은 나라가 어려울 때 앞장서서 싸운 분들을 기리는 날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조국을 위해 목숨을 바친 호국 선열이 있었기에 지금의 대한민국이 있고, 산업화를 통한 경제적 성취가 있었기에 민주화도 가능했다. 그런 토대 위에 세워진 정권이므로 민주화가 최고로 발현되고 민주주의 대원칙인 삼권분립, 검찰 독립성, 언론 자유, 선거 공정성 등이 지켜져야 하는데 현실은 정반대다. 6·10 항쟁을 통해 쟁취한 것으로부터 더 전진하지 못했고 어떤 면에서는 후퇴했다. 민주화를 열망한 6·10 항쟁 정신에 대한 배반이자 몰락이라는 점에서 더욱 절망스럽다.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1970년대와 1980년대 세대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나는 1970년대 학번이지만 1980년대 중반까지 노동운동을 했으니 두 세대를 모두 경험한 ‘경계인’이다. 1970년대 세대는 자유민주주의 지향과 자기 성찰적인 면모를 함께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엄격한 도덕적 규율을 요구한다. 그런데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을 기점으로 운동권은 급격하게 이념화됐다. 그들은 민족 해방과 계급 혁명을 놓고 이념 대결을 벌였으나 학생회라는 대중조직을 장악했던 만큼 어렵지 않게 지배 세력으로 자리 잡았다. 86세대는 앞 세대가 가지고 있던 자기 성찰과 고뇌를 통한 결단이 생략된 채 학생운동에 투신했고 빠른 시간 안에 지배 세력에 편입될 수 있었다.

-국민의힘 대표 경선 과정에서 나타난 ‘이준석 돌풍’을 어떻게 보는가.

△돌풍만 놓고 보면 매우 혁명적이라고 볼 수 있다. 일종의 창조적 파괴이기 때문이다. 이준석 후보의 의도 여부와 관계 없이 정치적 파란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사실이며 그 에너지는 긍정적이다. 한국 정치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과 정치 개혁 욕구가 ‘이준석 돌풍’을 통해 분출되고 있는 셈이다. 변화의 바람이 야당을 넘어 여당으로 옮겨갈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세대교체 바람에 대한 회의론도 만만치 않은데.

△젊은이들은 일자리를 구하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고 집값과 전월세 가격은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다. 또 양극화는 심화하고 자살률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를 정도로 불행한 나라가 돼가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라고 정치가 있는 것인데 반대로 정치권이 문제를 꼬이게 하는 집단으로 전락하면서 국민 분노를 키우고 있다. 이준석 돌풍은 국민들의 불만과 변화 욕구가 강하게 투영된 현상이다. 하지만 이 후보가 그런 변화를 감당할 준비가 돼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국민들이 원하는 변화에 역행하는 태도나 요소는 없는지, 이준석 바람이 어떤 변화를 지향하는지 등이 모두 숙제로 남아 있다. 이번 돌풍에는 성공과 실패의 길이 모두 열려 있다.



김영환 전 과학기술부 장관


-범야권의 유력 대선 주자로 떠오르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어떻게 보는가.

△지금의 윤석열은 ‘전대미문’의 문재인 정권이 만들어준 인물이다. 현 정권이 상식 궤도에서 이탈하면서 원칙을 중시하는 윤 전 총장에 대한 국민적 지지가 높아졌다. 문재인 정권의 진영 논리, 내 사람 감싸기,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시도, 문자 폭탄 등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든 문제들은 시간이 지난 뒤 ‘상식의 박물관’에 전시돼야 할 것들이다. 윤 전 총장은 원칙과 상식을 대변하고 있다고 믿는 국민들이 많다. 현재 비상식으로부터 상식으로, 불공정으로부터 공정으로, 불법으로부터 합법으로 가는 길로 투영되는 인물이 윤석열인 셈이다.

-문재인 정권의 최근 움직임을 어떻게 보는가.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세월호 참사 모두 가슴 아픈 일이고 희생된 분들을 기억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만큼의 무게로 천안함 폭침 유족과 생존 장병들의 아픔도 바라봐야 한다. 해양수산부 공무원이 북측에 의해 사살됐는데도 여태껏 진상 규명조차 하지 않고 있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오거돈 전 부산시장의 성추행으로 고통받은 피해자에게는 문 대통령이 사과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문 대통령이 성추행으로 극단적 선택을 한 공군 부사관의 추모소를 찾아 조문한 것은 너무도 이율배반적이다.

-DJ 정부에서 과기부 장관을 지냈다. 4차 산업혁명 성공을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하는가.

△4차 산업혁명의 성패는 신기술의 융합에 달려 있다. 기술과 기술, 산업과 산업의 융합이 활발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제는 한 우물만 파는 시대가 아니다. 여러 기술을 융합해 새로운 기술을 만드는 시대가 됐다. 국가 최고 지도자인 대통령부터 창조적인 사람이어야 한다. 창조적 사고를 갖고 있거나 적어도 창조의 힘을 믿는 사람이어야 한다. 하지만 한국 정치는 박정희·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전직 대통령들의 유훈에 매달려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떠난 자들이 산 자들의 무덤을 만들고 있는 셈이다. 이제 죽은 지도자들을 떠나 보내고 새 정치를 시작해야 한다. 새 시대는 죽은 자들의 사고와 경험을 광속으로 뛰어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깨달아야 올바른 정치도 가능해진다.

-과학기술 발전을 위한 구체적인 정책 방향을 제시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전통 제조업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우리는 세계 어디에서도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제조업 강국이다. 우리 조상들의 피와 땀으로 이룩한 값진 성취다. 전통 산업에 신기술을 결합해 4차 산업혁명에 대응해야 한다. 우리는 과학기술 강국이지만 기초과학 기반이 약하다. 제조업 강국이지만 부품 소재는 취약하다. 또 반도체 강국이지만 비메모리 역량이 부족하고 하드웨어 강국이지만 소프트웨어가 없는 나라다. 선배들이 쌓은 업적에다 약점을 보완하고 새로운 것들을 덧붙이는 ‘애드(add) 전략’으로 가야 한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과학기술, 문화 예술, 생태 환경을 융합해 나라가 발전적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지금 우리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의 많은 문제들 가운데 70~80%가 생태 환경과 관련된 것들이다. 생태 환경은 문제 해결의 열쇠인 동시에 미래 먹거리가 될 수 있다.

-현 정부의 탈원전 정책을 어떻게 보는가.

△문재인 정권이 밀어붙인 탈원전 정책의 폐해는 이 정권이 끝난 뒤에도 지속될 것이다. 그 어떤 정책 실패보다 상처가 깊고 크다는 점에서 더욱 절망스럽다. 나는 국회의원 시절 원전 안전성 문제를 가장 날카롭게 지적했던 사람이다. 하지만 탄소 중립을 위해 원전은 반드시 필요한 에너지원이다. 고준위 핵폐기물 처리를 위해 획기적인 방식인 파일로프로세싱 기술에서 상당한 진전이 이뤄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월등한 경쟁력을 갖고 있는 원전 기술을 진일보시키는 데 힘을 모아야 한다. 하지만 이 정부는 탈원전 도그마에 사로잡혀 그나마 있던 원전도 멈추게 하고 원전 생태계도 망가뜨렸다. 더구나 전 세계가 경쟁적으로 뛰어들고 있는 소형모듈원자로(SMR)는 우리나라가 이미 2012년 개발했음에도 상용화하지 못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맞았다. 문 대통령이 결단해야 한다. 지금이라도 못 이기는 척 탈원전 고집을 꺾어야 한다. 어차피 임기를 마치면 탈원전은 역사 속 유물로 잊힐 것이다.

He is…

1955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나 연세대 치과대를 졸업했다. 대학 시절 학내 시위를 주도해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수감 생활을 했고 석방 후 노동운동에 투신했다.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서울에서 광주 상황을 알리는 전단을 뿌리다 연행돼 구금됐고 이로 인해 5·18 민주화운동 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권유로 정치에 입문해 15·16·18·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고 2001년 과학기술부 장관을 지냈다. 그는 2016년 민주당을 탈당한 뒤 국민의당을 거쳐 국민의힘에 합류했다. 요즘은 한옥 치과병원인 ‘이해박는집’을 운영하면서 페이스북 등을 통해 정치적 견해를 밝히고 있다.

/정민정 논설위원 jminj@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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