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12일 청주에서 극단적 선택을 한 성폭력 피해 여중생의 아버지 A씨가 최근 발생한 유사 사건을 언급하며 참담한 심경을 토로했다. 그는 가해자에게 엄벌이 내려질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다음 주 마감 예정인 청와대 국민청원 참여를 독려하기도 했다.
10일 A씨는 연합뉴스와의 서면 인터뷰에서 “딸이 떠난 뒤에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며 “(성폭력 피해자인) 공군 부사관부터 광주 여고생까지 왜 우리 사회는 항상 피해자가 극단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이냐”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피해자를 내 가족처럼 여겨 더 세심하게 보듬고 보호한다면 이런 비극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며 “피해자 보호에 우선한 성폭력 대응 시스템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딸 사건도 가해자에 대한 영장이 왜 3차례나 반려됐는지 이해 가지 않는다”며 “어린아이들이 세상을 등진 뒤에야 가해자가 구속되는 등 매끄럽지 못한 일련의 수사 과정에 대한 진상규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중학교 2학년이던 A씨의 딸은 지난달 12일 청주시 오창읍의 한 아파트 화단에서 친구와 함께 숨진 채 발견됐다. 경찰은 현장에서 발견된 유서 등을 토대로 두 사람이 극단적 선택을 한 것으로 판단했고, 이후 A씨의 딸이 성폭력 피해 조사를 받은 사실 등이 드러났다. 가해자는 함께 숨진 친구의 의붓아버지인 B씨였다. 경찰 수사 과정에서 B씨가 숨진 의붓딸을 학대한 정황도 밝혀졌다.
A씨는 “딸이 성폭력 피해를 당한 지 2주가 지나서야 다른 친구 부모로부터 상황을 전해 들었다”며 “가해자가 다름 아닌 친구의 아버지여서 딸 아이의 고통과 고민이 더욱 컸던 것 같다”고 했다. 그는 사건을 인지하자마자 경찰에 고소장을 제출했지만 석 달 넘게 경찰 수사는 진전되지 않았고, 가해자 신병확보를 위한 체포·구속 영장도 연거푸 두 차례 검찰에서 반려됐다. 그러는 사이 두 여중생은 유명을 달리했다. 이후에도 영장은 한 번 더 반려되는 과정을 거친 끝에 두 사람이 숨진 뒤 22일 만에 발부됐고, 그제서야 B씨에 대한 구속수사가 이뤄졌다.
이처럼 미덥지 못한 수사 과정에 실망한 A씨는 지난달 17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엄정 수사를 촉구하는 글을 올렸다. 어린 나이에 생을 마감한 딸의 억울한 죽음을 규명하고자 한 것이다. 그가 올린 ‘두 명의 중학생을 자살에 이르게 한 계부를 엄정 수사하여 처벌해주세요’라는 제목의 청원에는 이날 오후 3시 기준 15만 442명이 동의했다. 청원 마감까지 일주일이 채 남지 않았지만 청와대 답변 기준인 20만 명을 넘기 위해선 5만 명의 추가 동의가 필요한 상황이다.
A씨는 매일 같이 집 주변 교회와 길거리 등을 다니며 청원 참여를 호소하고 있다. 그는 “아버지가 가엾은 딸을 위해 해줄 수 있는 게 별로 없다”며 “사건이 많은 분께 알려져 더 이상의 억울한 죽음을 멈추게 하는 것이 목표”라고 말했다. 이어 “가해자와 그의 가족한테서 아직 어떠한 사죄도 받지 못했다”며 “끔찍한 성범죄를 응징하고 법의 정의를 실천하기 위해서라도 꼭 국민청원에 동참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터뷰 말미에 그는 “우리 딸이 이렇게 힘든 줄도 모르고 아빠 엄마가 너무 미안하다”며 “많이 늦었지만 널 힘들게 한 사람 천벌 받게 할 테니 하늘나라에서라도 행복하게 지내. 사랑한다”며 딸을 향한 인사를 남겼다.
/홍연우 인턴기자 yeonwoo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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