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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 스포츠문화
우리는 꼭, 행복해져야만 할까

[책꽂이]해피크라시

에바 일루즈·에드가르 카바나스 지음, 청미 펴냄

방송·SNS 넘치는 '행복' 콘텐츠

강박관념 되어버려 되레 역효과

소확행·YOLO 등 소비트렌드는

수많은 돈 필요한 상품으로 변질

'행복한 삶'에 근본적 질문 던져





세상 곳곳에 ‘행복’이 넘쳐난다. 서점에서는 행복의 중요성을 설파하는 에세이나 심리학 서적이 눈에 띄고, TV나 라디오, 유튜브에서도 비슷한 주제의 콘텐츠들이 눈과 귀를 잡아끈다. 소셜 미디어로 눈을 돌려보자. 인스타그램에서 ‘#행복’, ‘#행복해’ 등의 해시태그를 검색하면 1,000만 개가 넘는 게시물이 노출된다. 사진에는 비싼 음식이나 물건 앞에서, 또는 고급 휴양지에서 기쁨에 가득 찬 표정으로 카메라를 응시하는 얼굴들이 담겨 있다. 굳이 남의 눈에 전시하려는 의도마저 느껴질 정도다. 신간 ‘해피크라시’가 지적하는 것처럼 ‘행복’은 “하루도 이 단어를 듣지 않고 보내기 힘들 만큼 무소부재의 단어”다.

책 제목인 ‘해피크라시’는 ‘행복’과 ‘정치체제’(-cracy)를 합성해 만든 단어로, 행복 추구의 시대라는 흐름을 타고 새롭게 등장한 시민권의 개념, 새로운 강압적 전략, 새로운 정치적 의사 결정, 새로운 경영 방식 등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저자인 에바 일루즈 예루살렘 히브리대 사회학과 교수와 에드가르 카바나스 스페인 카밀로호세셀라대 강사는 감정의 상품화와 행복의 정치·경제·사회적 효용을 연구해 온 학자들이다.

저자들은 행복이 개인과 세계를 이해하는 데 있어 근본적 역할을 하고 있으며, 우리 삶의 가치, 성패, 정신적·정서적 발달 정도를 가늠하는 기준이 됐다고 말한다. 하지만 동시에 행복은 강박이라는 역효과를 내는 선물이 됐다고 일갈한다. 저자들이 행복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행복이 반드시 추구해야 할 하나의 당위가 되면서 우리가 ‘행복의 지배를 받는’ 상황에 빠졌다고 지적한다. 책이 정조준하는 대상은 행복 그 자체라기보다 이 단어가 표상하는 ‘좋은 삶’을 특정한 요소로 환원해서 파악하고 측정할 수 있다는 긍정심리학이다. 저자들은 긍정심리학자들이 설파하는 행복의 조건과 덕목들, 일명 ‘행복학’이 오류투성이 전제와 논리를 펴는 사이비 과학이라고 강하게 비판한다.

책은 정치·경제·사회적 권력이 행복을 어떻게 활용해 현 체제에 대한 비판을 막는 도구로 이용하고 상품화하는지 설명한다. 18~19세기에 행복에 관한 요구가 금기에 도전하고 위반하는 냄새를 풍겼다면 지금은 행복이 권력에 복종하는 도구가 됐다는 것이다. 행복이 강요의 대상이 되면서 우리가 더 큰 성공과 성취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개인의 문제라는 논리가 성립됐기 때문이다.



이러한 논리가 가장 크게 작용하는 분야는 경제, 그 중에서도 노동시장이다. 우리 사회는 노동자들에게 개인의 책임과 행복을 강조함으로써 구조조정의 논리에 힘을 싣는다. 영화 ‘인 디 에어’를 보면 주인공인 해고 전문가 라이언(조지 클루니 분)이 해고 예정자를 면담하는 장면이 나온다. 라이언은 오랜 기간 충직하게 일했던 회사에서 해고됐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이에게 자신이 행복해할 만한 일을 해 볼 기회가 온 것이라고 설득하며 해고를 받아들이라고 말한다. 회사의 구조적 문제나 구조조정의 정당성은 뒤로 숨겨둔 채 말이다. 책은 “개인은 이제 자기에게 전가된 어려움을 자기 노력으로 뛰어넘는 수밖에 없고 그래야만 직업인으로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믿기에 이르렀다”며 “직장의 구조적 결함이 이제 노동자의 책임이 되었는데 심리학의 언어가 여기에 날개를 달아줬다”고 비판한다.

/사진제공=이미지투데이


나아가 행복은 수많은 돈이 오가는 세계적 산업의 상품이 되었다고 책은 주장한다. 한국에서도 작지만 확실한 행복을 뜻하는 ‘소확행’, ‘YOLO’ 등의 단어가 하나의 소비 트렌드를 형성했음을 상기해 보면 설득력 있는 주장이다. 저자들은 미국에서 매달 11달러99센트를 내면 사용자의 감정 상태를 실시간으로 코칭하고 조정해 주는 스마트폰 앱 ‘해피파이’(Happify)의 사례를 든다. 이 앱은 사용자가 300만 명을 넘어서는 큰 성공을 거뒀고, 이와 관련된 다양한 데이터를 수집해 제공하는 플랫폼까지 만들었다. 자아실현에 성공해 행복을 성취한 자기 자신을 하나의 브랜드로 포장하는 ‘퍼스널 브랜딩’을 통해 행복을 전도하는 개인들도 적지 않다고 책은 소개한다.

저자들은 “더 나은 나를 만들어야 한다는 자기중심적 강박에 갇혀 살기를 원하지 않는다”며 행복학이 추구하는 ‘더 나은 나’로 바뀌었다는 생각은 “잠깐의 착각 혹은 자기기만”이라고 주장한다. 행복학과 행복 산업은 삶을 구성하는 조건들을 파악하는 능력을 교란할뿐 아니라 그러한 능력을 부적절한 것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지적한다. 행복해져야 한다고 외치고, 행복으로 향하는 길이 있다고 믿는 이들에게 근본적인 물음을 던지는 책이다. 1만6,500원.

/박준호 기자 violato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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