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이 그러더군요. ‘한번 들으면 끝날 때까지 화장실도 갈 수 없는 앨범’이라고.” (웃음) 긴 시간 음반을 준비한 연주자에게 이만한 찬사가 또 있을까. 한번 보면 눈 뗄 수 없는 명작 영화처럼, CD 한 장에 담긴 9곡의 음악은 각기 다른 매력의 선율로 듣는 이의 귀를, 마음을 사로잡는다. 마성의 연주의 주인공은 바이올리니스트 김봄소리(사진)다. 그는 지난 21일 신사동 복합문화공간 오드포트에서 열린 ‘바이올린 온 스테이지(Violin on Stage)’ 음반 발매 및 리사이틀 기자간담회에서 ‘이번 앨범을 한마디로 표현해 달라’는 부탁에 지인의 반응으로 답을 대신했다. 의미가 바로 와 닿는 극찬이 내심 마음에 드는 눈치였다.
이번 음반은 김봄소리가 세계적인 클래식 레이블 도이치 그라모폰(DG)과 전속 계약을 맺은 후 선보이는 솔로 데뷔 앨범이란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그는 지난 2월 한국 여자 바이올리니스트로는 최초로 DG와 전속계약을 맺어 화제를 모았다. 그렇기에 이번 솔로 앨범을 향한 주위의 관심은 어느 때보다 컸고, “오롯이 내가 책임을 져야 하는 프로젝트”에서 부담은 이전보다 훨씬 클 수밖에 없었다. “오늘 이 순간도 얼떨떨하고 감사하다”는 그의 소감은 비단 이 부담 때문만은 아니었다. 녹음 기간 내내 코로나 19라는 통제 불능의 변수는 따라붙었다. “지난해 하반기 음반 녹음 계획을 세웠는데, 국경이 막혔다 풀렸다는 반복하고, 오케스트라 멤버에 이어 지휘자, 톤 마이스터가 코로나 19에 확진됐죠. 어렵사리 12월에 녹음을 진행했는데 ‘언제 사고가 터질지 모른다’는 생각에 모두가 절실한 마음으로 열정을 불태웠어요.” 김봄소리는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런 에너지가 자기에게 전달돼 좋은 앨범이 나온 것 같다며 감사의 마음을 전하기도 했다.
‘무대 위 바이올린’이라는 뜻을 가진 이번 앨범에는 오페라와 발레 등 화려한 무대 속 음악이 담겼다. 발레 곡으로는 차이콥스키 ‘호두까기 인형’ 중 ‘파드되’와 글루크의 ‘오르페오와 에우리디체’ 중 ‘정령들의 춤’을 선보인다. 솔로 바이올린과 오케스트라를 위한 곡으로 새롭게 편곡한 곡들을 통해 김봄소리는 화려한 기교와 서정적인 표현력을 동시에 뽐낸다. 김봄소리의 표현력은 오페라 곡들에서도 돋보이는데, 지난달 14일 음원으로 선공개한 마스네의 ‘타이스’ 중 ‘명상곡’이 그중 하나다. 이 밖에도 오스트리아 지휘자 마이클 로트가 김봄소리를 위해 편곡한 생상스의 유명한 아리아 ‘그대 음성에 내 마음 열리고’, ‘카르멘’에서 화려한 성악 멜로디를 따 완성한 왁스만의 ‘카르멘 환상곡’도 함께 수록됐다. 김봄소리는 “어렸을 때부터 춤과 노래를 사랑했다”며 “이번 앨범을 통해 무대의 우아함과 이야기를 바이올린을 목소리 삼아 노래처럼 전달하고 싶다”고 밝혔다.
그는 간담회 내내 자기의 일을 ‘바이올린으로 노래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가수가 노래할 때 그 감성과 가사를 타고 특정 상황과 캐릭터가 떠오르듯 텍스트(가사) 없는 클래식 연주에서도 듣는 이의 상상력을 자극해 시각적인 이미지를 떠올리게 하고 싶다는 것이다. 김봄소리는 “내가 연주하는 공간에서는 청중이 다른 세상, 다른 공간, 다른 시간을 상상하게 하는 아티스트가 되고 싶다”며 “그런 한순간을 전해주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최선이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웃어 보였다.
김봄소리는 이번 앨범 발매를 기념해 피아니스트 일리야 라쉬콥스키와 함께 22일 경기아트센터를 시작으로 23일 대구 웃는얼굴아트센터, 25일 안성맞춤아트홀, 26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공연할 예정이다.
/송주희 기자 sso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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