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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칼럼] 실제 리스크보다 과장된 인플레 우려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바이든 행정부 강력한 부양책 따른

인플레 괴담 봇물처럼 쏟아지지만

과거 통화재앙 예언들 모두 빗나가

연준 "일시적" 진단 이번도 맞을 것

폴 크루그먼 뉴욕시립대 교수




지난 1970년대식의 스태그플레이션이 찾아올 것이라는 을씨년스러운 경고에 모든 사람들이 잔뜩 겁을 집어먹은 게 언제였는지 기억하는가. 지금도 많은 사람이 인플레이션 괴담을 봇물 터지듯 쏟아낸다. 이들 중 일부는 인플레이션 경고가 입버릇이 돼버린 사람들이고 일부는 민주당 행정부가 들어설 때마다 기다렸다는 듯 인플레 경고 카드를 꺼내 드는 부류다. 나머지는 올 들어 5개월간 물가가 큰 폭으로 들썩였다는 점을 인플레 위험 신호로 내민다.

그러나 새로 나온 관련 자료를 주의 깊게 살펴본 사람들은 인플레이션 공포가 이미 사멸했음을 알아차렸을 것이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의 최근 자료와 성명은 지속적인 인플레이션 발생 우려를 사실상 잠재웠다. 인플레 공포는 연준이 지적하거나 혹은 도덕적 결함을 지녔거나 아니면 두 가지 결함 모두를 갖고 있을 때에 한해 타당성을 지닌다. 다시 말해 연준의 인플레이션 예측 모델이 완전히 잘못됐거나 과열된 경제를 냉각시킬 정치적 용기가 연준에 없을 때 인플레 패닉이 힘을 얻게 된다. 그리고 두 가지 시나리오가 현실화할 때 연준이 쌓아 올린 신뢰는 증발해버린다.

이제 인플레이션 이론부터 차근차근 살펴보자.

1970년대 특히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한 로버트 고든 미 노스웨스턴대 교수의 논문이 발표된 1975년 이후 많은 경제학자들은 일시적인 요인에 의해 발생하는 물가 상승률의 변동과 그보다 훨씬 안정적이지만 끌어내리기 힘든 기저 물가 상승률을 구분하려 들었다. 즉 통화정책을 담당하는 연준은 쉽게 왔다가 쉽게 물러가는 일시적 물가 상승을 무시한 채 근원 물가 상승률의 급등 혹은 급락 우려만 경계하면 된다는 생각이었다.

2004년부터 연준은 휘발성이 강한 식품과 에너지 가격의 변동을 제외한 근원 인플레이션 추정치를 발표했으며 일시적 인플레로 간주되는 상황에서 터져 나오는 긴축 통화정책 요구를 떨쳐내는 데 이를 사용했다. 대표적인 예를 살펴보자. 2010~2011년, 원유를 비롯한 일부 상품 가격이 오르자 공화당은 연준이 ‘통화가치 훼손(currency debasement)’을 유발할 것이라고 맹공을 퍼부었지만 이를 일시적 인플레로 진단한 연준은 공화당의 통화 긴축 요구를 일축했다.

물론 연준의 판단이 옳았다. 연준의 예상대로 인플레이션은 곧 진정됐다. 월스트리트가 지독히 못마땅해하는 일시적 인플레와 근원 인플레의 구분은 인플레이션과 디플레이션 우려에 직면한 상태에서 연준이 침착하게 대응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제공했다.

연준은 최근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 인플레에 불과하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최근의 물가 상승이 음식과 에너지 가격 변동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 중고차·목재 등 다른 비전통적 물가 상승원의 가격 교란을 불러온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기인한 것이라는 지적은 옳다. 그러나 연준은 2010~2011년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이번 물가 상승 역시 곧 끝날 것으로 봤다.



연준의 진단은 이번에도 적중할 것으로 보인다. 목재 가격은 최근 몇 주 사이에 급락했다. 구리 같은 산업용 금속 가격도 하락세를 보이고 있다. 중고차 가격은 여전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지만 급등세가 꺾이면서 정점에 도달했음을 시사한다. 근원 물가가 이번에도 이긴다는 얘기다.

요즘 나도는 대체 인플레이션론은 또 무엇인가. 조 바이든 행정부의 ‘미국 구조 계획’은 경제에 막대한 구매력을 퍼부었다. 팬데믹 기간에 막대한 자금을 비축한 부유한 가구들은 이제 지갑을 털어낼 준비가 돼 있다. 이렇게 되면 돈은 넘쳐나는 반면 구입할 수 있는 상품이 턱없이 부족해지면서 휘발성 높은 상품의 가격 상승을 불러오는 데 그치지 않고 기저 인플레이션으로까지 이어지는 전형적 상황이 연출된다는 것이 일부 경제 비평가들의 주장이다.

하지만 이런 주장이 받아들여지기 위해서는 대부분의 민간 전문가들이 예상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경제 붐이 임박했을 뿐 아니라 경제의 고삐를 쥔 연준이 인플레이션이 통제 불능 상태에 빠질 때까지 손 놓고 지켜볼 것이라는 전제가 성립돼야 한다.

그러나 통화정책을 결정하는 연준 공개시장위원회가 최근 내놓은 성명은 이런 주장의 실현 가능성을 떨어뜨린다.

통상적으로 연준은 정책 변화를 곧이곧대로 발표하지 않기 때문에 이 같은 성명문의 판독은 크렘린의 속셈을 파악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 연준의 성명서는 전반적인 논조와 분위기의 변화를 통해 미래의 정책 방향에 대한 실마리를 제시한다. 연준 관측통들은 공개시장위의 성명에서 경제가 실질적으로 속도 제한을 위반할 경우 강하게 제동을 걸 것이라는 연준의 강화된 의지를 읽어냈다고 주장한다.

확신할 수는 없지만 필자는 제동을 걸 필요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필요한 경우 행동에 나서겠다는 점을 강하게 부각시킴으로써 연준은 1970년대로 회귀할 것이라는 우려를 상당 부분 해소했다.

그렇다면 결론은 무엇인가. 1980년대 초반 이후 통화 재앙 예언가들의 전망은 번번이 빗나갔다. 대표적인 인물이 자유주의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다.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이 기승을 부릴 것이라는 전망을 잇달아 내놓았지만 그의 ‘예언’이 들어맞은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공정하게 말해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 시절에 비해 바이든 행정부가 훨씬 강력한 경제 부양책을 쓰고 있기 때문에 인플레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나름 일리가 있다. 하지만 인플레 주장의 열기가 실질적인 리스크에 비해 지나치게 과장된 게 사실이다. 게다가 그 같은 리스크는 불과 몇 주 사이에 크게 축소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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