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야흐로 인공지능(AI) 시대다. 의사도, 변호사도, 교수도 AI와 협업하거나 경쟁해야 하는 시대가 됐다. 자동차 공장 조립 라인에서 일하는 사람들도 웨어러블 로봇을 착용하고 용접용 로봇과 함께 일한다. 로봇이 인간과 협업하는 과정에도 AI는 활용된다. 우리의 일상은 알게 모르게 AI와의 협업으로 가득 차 있다.
AI는 기존의 통계 방법이 미처 발견하지 못한 개인과 구조의 특질을 새롭게 찾아내고 심지어 이를 이용해 인간의 창의성을 흉내 내는 등 무궁무진한 잠재력을 갖고 있다. 죽은 사람의 흑백사진 한 장을 활용해 생전의 모습을 컬러 동영상으로 살려내는가 하면 100여 년 전의 사진을 마치 최근에 찍은 것처럼 선명하게 컬러로 현상해내기에 이르렀다. 그림이나 동영상을 입력하면 거기에 걸맞은 배경음악을 작곡하고 시상(詩想)을 제안하면 시를 써내기도 한다.
이런 AI 시대에 우리 정부의 허리 역할을 하는 5급 공무원을 선발하는 시험을 살펴보면 적잖은 걱정이 생긴다. 1차는 헌법, 한국사, 영어, 공직 적격성 평가를, 2차는 직렬에 따라 다르지만 행정법, 행정학, 국제법, 경제학 등의 시험을 치른다. 이러한 과목들은 행정가나 학자로서의 기본 소양이 될지는 모르지만 AI 시대인 21세기에 적합한 리더가 갖춰야 할 자질이라고 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하다. 국가의 동량지재(棟梁之材)를 선발하는 시험에 향후 기술 변동, 사회 변화의 주요한 축이 될 AI 관련 지식을 포함하지 않는다면 그렇게 선발된 공무원들이 대한민국을 치열한 국제 경쟁에서 살아남을 국가로 이끌 리더가 될 수 있을까. 마치 자동차가 등장한 시대에 마부와 마차의 관리 운영 능력을 평가해 관료를 뽑는 격이다. 스스로 움직이는 자동차가 주행도, 제동도, 주차도 하는 시대에 우리는 언제까지 장원급제한 어사의 어사화(御賜花)를 보며 환호하고 있어야 하는가.
물론 AI를 공부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기계학습(머신러닝)과 딥러닝의 난점은 어지간한 수학 실력으로도 어떤 계산을 통해 결과가 도출됐는지 이해하기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AI의 작동 원리를 쉽게 보여줄 수 있는 ‘설명 가능한(explainable) AI’가 새로운 트렌드로 등장하고 있다. 하지만 AI가 사용하는 계산 원리를 이해하기 어렵다고 해서 이를 빌미로 그 학습의 필요성을 폄하해서는 안 된다.
초·중·고교에서 대학 교육까지 정보 관련 교과의 비중을 더 높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런 상황에서 시대 변화를 전혀 반영하지 않은 인재 선발 방식은 하루빨리 개선해야 한다. 심지어 5급 기술직군 시험조차 AI 관련 과목은 들어 있지 않다. 공직을 맡기 위한 기본 자질에 AI 리터러시, 데이터 리터러시가 포함돼야 한다. 일반 행정직뿐 아니라 기술직까지 약속이나 한 듯이 새로운 기술 변화를 등지고 있는 것은 정부의 직무 유기나 마찬가지다. 어떤 인재를 뽑느냐가 국가의 미래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수능, 각종 국가공무원 시험, 변호사 시험, 자격시험 등에 과목을 하나 추가하거나 빼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쉽지 않은 그 변화를 서둘러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암기력을 테스트하는 시험으로 공직자를 선발하는 방식 자체를 바꿔야 할지 모른다. 단순 지식의 반복 암기는 아무리 열심히 해도 로봇이나 AI를 이길 수 없다. 우리는 로봇이나 AI와 어떤 일을 어떻게 나눠야 할지, 무엇을 함께할지, 국민과 국가를 위해 어떤 기술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고 선도하는 공무원을 필요로 한다.
이제 AI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데이터를 심도 있게 분석함으로써 국가와 국민의 어려움을 포착하고 그에 대한 합리적 대안을 모색하고 실천하는 능력을 가진 공무원을 선발할 수 있는 제도가 시급하다. 나아가 4차 산업혁명의 주요 기술 트렌드를 이해하고 기술과 인간의 협업을 통해 국민의 삶의 질을 개선할 수 있는 현장형 공무원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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