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강남구 대치동 은마 전용 76㎡에 전세를 살던 A 씨는 올해 2월 임대차계약 종료를 앞두고 계약갱신청구권을 쓰려 했지만 집주인이 살겠다고 해 단지 내에서 전세를 알아봤다. 하지만 새 학년 시작을 앞둔 데다 임대차법 시행으로 전세 매물이 귀해져 결국 반전세 계약을 새로 했다. A 씨는 “임대차법 때문에 전세가 사라지고 월세가 늘었다고 한다”면서 “이게 과연 세입자를 위한 법 맞느냐”고 분통을 터트렸다.
새 임대차법 시행 1년이 다가온 가운데 부작용이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 4년간 오른 전셋값의 80%가 임대차법 시행 1년간 뛴 가격이다. 전세 난민의 울분은 더 커지는 가운데 월세화는 더욱 빨라지면서 주거 사다리는 붕괴되고 있다. 전문가들은 임대차법을 페지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정부와 여당은 오히려 신규 전월세 계약에도 임대차법을 적용하는 것을 검토하겠다는 방침이다. 시장은 폐지를 요구하는데 정부와 여당은 더 옥죈다는 계획이다.
우선 새 임대차법은 전세 살다가 돈을 모아 내 집을 장만하는 주거 사다리를 무너뜨리고 있다. 전세 소멸이 빠르게 이뤄지는 것이다. 국토교통부 실거래가 공개시스템에 따르면 올 들어 은마아파트에서 체결된 임대차계약 10건 중 4건은 월세가 포함된 반전세 계약으로 나타났다. 총 254건 중 101건(39.8%)이 반전세 계약이었다. 지난해 1~7월에는 임대차계약 건수도 2배 많은 516건이었고 이 중 월세는 142건(27.5%)에 불과했다. 1년 새 월세 비중이 12.3%포인트나 급등한 것이다.
서울부동산정보광장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월세 거래량은 임대차 3법 시행 전 1년(2019년 8월~2020년 7월)간 19만 4,686건이었으나 시행 후 1년(2020년 8월~2021년 7월 27일) 16만 8,750건으로 13.3% 감소했다. 하지만 이 가운데 월세(준월세·준전세 포함) 거래량은 5만 4,702건에서 5만 7,260건으로 4.7% 늘었다. 전월세 거래량 가운데 월세가 차지하는 비중 역시 28.1%에서 33.9%로 5.8%포인트 높아졌다.
전세 매물은 실종되고 있다. 부동산 빅데이터 플랫폼 아실에 따르면 서울 아파트 전세 매물은 지난해 초(1월 7일) 5만 890건에서 임대차법 시행일인 7월 31일 3만 8,427건으로 줄더니 시행 2개월 만인 10월 5일에는 8,313건까지 곤두박질쳤다. 이후 조금씩 늘면서 27일 현재 2만 50건을 기록 중이지만 임대차법 시행일 이후만 보더라도 거의 반토막 수준(47.8%)이 됐다.
박원갑 KB국민은행 부동산 수석전문위원은 “임대차법 시행으로 재계약율이 높아지면서 유통 물량이 줄어든 데다 종합부동산세 등 부담이 커진 집주인들이 전세보다 월세를 선호하는 현상이 맞물리면서 전세의 월세화가 가속화하고 있다”고 분석했다.
이 뿐만이 아니다. 계약갱신청구권을 사용한 경우와 신규 계약 간 전세 ‘이중가격’ 격차는 갈수록 확대되고 있다. 노원구 중계동 ‘건영3차’ 전용 84㎡의 경우 지난해 12월 8억 6,000만 원에 신고가 전세 계약이 체결됐는데 올해 5월 계약 갱신을 통해 2억 원이 신고돼 무려 전세 가격 차이가 네 배 이상 벌어졌다. 강남구 도곡동 ‘도곡렉슬’ 전용 119㎡에서도 지난 4월 9억 7,650만 원의 전세 계약이 이뤄진 후 다음 달 31일에는 21억 원에 전세 계약이 이뤄져 격차가 두 배 이상에 달했다. 기존 세입자의 경우 당장은 계약 갱신을 청구해 5% 이내에서 전세 보증금을 올리더라도 2년 후 새로운 전세를 구할 때는 두 배가 넘는 보증금을 감당해야 한다는 얘기다.
새 임대차법으로 전월세 시장에서 기형적인 양상이 잇따르자 해당 법안이 수정 내지 폐지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월세상한제로 신규 계약의 전세 및 월세 가격이 대폭 오르는 비정상적인 현상이 나타났다”면서 “추후 부동산 가격이 떨어져도 집주인이 5% 인상을 요구할 수 있는 근거로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말했다. 권 교수는 또 “계약갱신청구권제로 인해 임대인과 임차인 간 갈등이 증폭됐고 전월세신고제를 통해서는 임대인이나 임차인을 보호할 수 있는 법적 근거가 없다”며 “임대차법은 대폭 수정되거나 폐지돼야 한다고 본다”고 말했다. 서진형 대한부동산학회장(경인여대 교수)도 “폐지까지 검토해야 할 시점”이라며 “당장 폐지가 어렵다면 최소한 시장을 중심으로 정책을 개편하는 방안을 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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