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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않고 그린 찰나의 붓질, 관객의 해석으로 완성되다

■김길후 개인전 ‘혼돈의 밤’

주제·색 고민없이 숨결 불어넣어

"보는 사람 따라 형상도 달라지죠"

김길후가 그리고자 하는 대상을 정하지 않은 채 즉흥적인 붓질로 완성한 2021년작 ‘무제’(왼쪽)와 미륵불을 소재로 2년에 걸쳐 작업한 2014년작 ‘무제’/사진=학고재




검은 바탕의 캔버스 위로 역동적인 붓질이 뒤엉켰다. 흘러내리다 굳어버린 아크릴 물감, 붓과 캔버스의 충돌이 만들어낸 거친 질감이 그린 이의 빠른 움직임과 호흡을 고스란히 담아낸다. 찰나의 직관으로 완성한 일필휘지는 누군가의 춤사위 같다가 포효하는 야수의 기괴함을 드러내기도 한다. 보는 이에 따라 사람이 되기도, 동물이 되기도 하는 붓질 속에는 오랜 시간 ‘예술이란 무엇인가’ 질문에 고뇌한 작가 김길후의 결론이 담겨 있다. “예술 표현의 핵심은 작품을 통해 자아를 실현하겠다는 욕구를 지우는 데 있다.” 서울 삼청동 학고재 갤러리에서 열리고 있는 김길후 개인전 ‘혼돈의 밤’은 작가 자신을 지우고, 그 자리에 ‘보는 이의 감상’을 채워 넣는다. ‘무제’의 작품들은 그렇게 관객 각자의 해석에 따라 형상과 제목을 완성한다. 김길후가 생각하는 예술도 그렇게 완성된다.

중국 베이징을 거점으로 활동해 온 김길후는 지난 4월 제11회 한국미술평론가협회 작가상을 받으며 국내 미술계에서 새롭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김길후가 올해 제작한 회화 19점과 2014년도에 그린 회화 1점, 2019년부터 올해까지 제작한 삼발이형 인물상 3점 등 총 23점의 작품을 선보인다. 학고재의 온라인 전시 홈페이지에서는 오프라인 전시에 포함되지 않은 작품을 포함해 총 42점의 회화를 만나볼 수 있다.

합판이나 골판지 등 주변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재료로 만든 삼발이 인물상인 ‘노자의 지팡이’/사진=학고재




전시 제목인 ‘혼돈의 밤’은 만물의 소생에 앞선 원시적 상태다. 작가는 관습을 잊고 본성의 마음으로 회귀해 작품과 하나가 되려는 의지를 담아냈다. 만물의 시작과 끝을 상징하는 검은색을 다수 작품의 바탕으로 쓴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작가의 표현에 따르면 검은 화면은 “모든 빛의 가능성을 끌어안는 포용의 색”이기도 하다. 암흑과 같은 현실에서 자신의 정체를 끊임없이 고뇌하고, 탐구해 얻어낸 결과물이다. 검은 화면 위를 오갈 물감의 색은 미리 정하지 않는다. 김길후는 “몇 가지 색을 늘어놓고 아무 생각 없이 사용한다”며 “자아가 개입할 수 있기 때문에 생각할 겨를이 없다”고 말했다. 그가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작가의 숨결, 즉 호흡이다. 그는 “내 자아에 통제받지 않기 위해 15㎝ 크기의 평붓으로 순식간에 선을 그려낸다”며 “붓의 속도를 느끼며 일순간에 그리는데 핵심은 재빠르게 깊이를 담아내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힘을 주어 붓질을 하고, 때로는 붓으로 화면을 강렬하게 치기도 해서 붓이 부러지는 일도 허다하다.

“생각하면서 그림을 그리면, 때 되면 배고픔을 느끼고 밥을 먹기 위해 그림을 멈추게 되죠. 내가 그림을 그리는 것이 아니라 붓이 그린다고 생각해요. 붓은 조작될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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