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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언론중재법이 '언론재갈법'으로 불리는 이유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가짜뉴스에 '징벌적 손해배상' 부과

피해입증 어렵고 고의성도 안따져

현행법 체계에 안맞는 무리한 규제

與 강행땐 국민 신뢰 상실 불보듯

장영수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최근 1년 여 동안 더불어민주당이 발의한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모두 16개다. 그만큼 언론중재법 개정에 대한 논의 상황이 복잡하며 민주당 내에서도 이견이 적지 않은 것으로 볼 수 있다. 논란의 핵심은 언론의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서 ‘징벌적 손해배상’을 부과하겠다는 것이다.

흔히 가짜 뉴스라고 일컬어지는 허위·조작 보도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누구나 공감한다. 법적 제재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도 이견이 없다. 그럼에도 언론중재법 개정안에 대해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까지 나오는 것은 언론사 등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이 법리에 반하며 현행법 체계에 맞지 않는 무리한 규제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손해배상은 원칙적으로 불법행위로 인해 발생한 ‘피해의 전액(全額)’을 배상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러나 입증의 문제로 제대로 된 배상을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은 발생한 피해의 몇 배까지 배상을 확대함으로써 한편으로는 피해자 구제를 강화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가해자에 대한 ‘징벌’의 의미를 담는 것이다.

그러나 영국의 판례에서 시작돼 미국과 캐나다 등에서 적극적으로 활용되는 징벌적 손해배상이 유죄협상제도(plea bargaining)와 마찬가지로 다른 나라에서 보편화되지 못한 이유가 있다. 발생한 피해 이상의 배상을 받는 것이나 가해자가 그로 인해 과도한 ‘징벌’을 받는 것이 법적 정의에 부합하지 않을 뿐 아니라 악의적으로 피해 발생을 유도하는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도 작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은 예외적인 경우에 한정적으로 인정되고 있다. 예컨대 제조물책임법과 특허법 등에서는 피해액의 산정이 어려운 경우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해 피해자의 구제를 강화하는 것이며, 가해자의 고의성이 인정되는 경우에 한정한다. 공익신고자보호법이나 환경보건법 등에서는 피해자에 의한 오남용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점에서 도덕적 해이의 위험성이 배제되고 있다. 그런데 언론중재법은 어느 경우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언론 피해의 경우도 피해액을 입증하기 어렵다는 주장이 있다. 그렇다면 이는 재산상의 손실이 아닌 명예의 훼손 등 정신적 피해에 관한 모든 경우로 확장돼야 하는 것이지 언론 피해에만 한정될 것은 아니다. 또한 징벌적 손해배상을 폭넓게 인정하는 미국에서는 언론 보도에 대해 징벌적 손해배상을 인정하는 것이 언론 자유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아니지만 우리나라에서 언론 자유에 대한 특별한 제한이 된다는 점도 결코 가볍게 평가할 수 없는 문제다.

더욱이 언론사에 대한 징벌적 손해배상의 인정을 위해서는 미국 판례에서 보는 것과 같은 ‘현실적 악의(actual malice)’를 요구하는데 언론중재법 개정안이 이를 요구하지 않고 있는 것이 타당한지도 문제된다. 예컨대 김용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 제30조의 2 제1항에서는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로 인한 허위·조작 보도에 대해 책임을 묻고 있다. 하지만 같은 조문 제3항에서는 정무직 공무원과 대기업 임직원 등에 대한 허위?조작보도에 대해 그 ‘피해자를 해(害)할 목적’이 있는 경우로 한정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적 악의가 고의 내지 미필적 고의에 한정돼야 한다는 점을 고려할 때 정무직 공무원 및 대기업 임직원뿐만 아니라 모든 경우에 피해자를 해(害)할 목적이 인정되는 것이 타당할 것이다.

결국 언론중재법 개정안의 내용은 사안 자체가 징벌적 손해배상을 적용하기에 적합한 사안이라고 보기도 어렵고 정무직 공무원 및 대기업 임직원 등과 그 밖의 피해자들에 대해 적용 기준을 나누는 것도 적법한 근거를 가졌다고 보기 어렵다. 민주당의 의석 수를 고려하면 이러한 개정안을 다수 의석의 힘으로 관철하는 것은 가능하겠지만 그 결과는 민주당이 국민의 신뢰를 더욱 크게 상실하는 상황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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