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협·우리·SC제일 등 시중은행들이 전세자금대출·주택담보대출 등 가계 대출을 중단하기로 하면서 ‘대출 중단 도미노’가 확산되고 있다. 금융감독원은 신용대출 한도마저 대폭 줄이기로 했다. 정부가 1,700조 원이 넘는 가계 부채 증가세를 잡기 위해 대출 규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는 바람에 서민들은 돈줄이 막힌다며 아우성이다.
정부가 강력한 대출 규제에 나선 데는 가계 빚이 집값 폭등의 주범이라는 판단이 자리하고 있다. 부동산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대출, 주식 ‘빚투(빚내서 투자)’ 등이 자산 버블을 초래한 주요 요인이라고 보고 이를 줄이겠다는 것이다. 여기에다 미국의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이 가시화하면서 글로벌 긴축 신호에 적극 대처하지 않으면 ‘퍼펙트 스톰’을 맞을 수 있다는 위기 의식도 작용했다. 하지만 애당초 코로나19 이후 시장에 많이 풀린 돈이 부동산 정책 실패와 맞물리면서 ‘미친 집값’을 만들었고 이는 가계 부채 증가로 이어졌다. 집값 상승세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무차별적인 대출 규제는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위험한 발상이다.
당국은 투기적 대출만 억제하겠다고 말하지만 투기 수요와 실수요를 가려내기는 쉽지 않다. 자칫 제1금융권에서 쫓겨난 실수요자들이 제2·3금융권으로 내몰리다가 사채 시장에까지 손을 내밀 가능성이 높다. 획일적인 대출 규제보다는 시중은행의 연체율 관리 등을 통해 리스크를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배경이다. 게다가 천정부지로 치솟은 집값이 안정되지 않는 한 대출 수요가 줄어들 수 없는 만큼 실질적인 부동산 안정 정책에 최우선순위를 둬야 한다. 재건축 규제 완화나 양도세 한시 인하 등을 통해 주택 공급을 늘려 집값 안정의 계기를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긴급 생활 자금이 필요한 서민·자영업자 등 취약 계층의 상환 능력 등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정교한 ‘핀셋 대책’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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