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삼국지를 읽다 보면 제갈량·유비만큼 관심을 받는 사람이 관우(?~219)다. 관우에 대한 중국인의 사랑도 특별한데 그는 현재 전쟁·윤리·부귀 등 모든 방면에서 중국의 신(神)이다. 중국의 식당 등 가게에 들어가면 가장 많이 보이는 것이 관우의 상이다.
관우가 현재와 같이 결정적으로 중국인의 생활에서 핵심이 된 것은 이민족인 만주족의 청나라 지배 아래라는 것이 아이러니하다. 청나라 황제들은 관우를 좋아해 그의 사후 계급을 높여주고 곳곳에 사당을 만들었다. 관우의 사당은 베이징의 자금성 북쪽 경산에도, 황제의 별궁인 청더의 피서산장 앞에도 있다.
관우 띄우기는 반만주족 정서를 희석시키려는 청나라의 전략적 선택이라는 것이 대체적인 시각이다. 관우 이전 중국의 대표적인 ‘민족 영웅’은 악비(1103~1141)였다. 악비는 한족의 국가인 송나라 사람인데 하필이면 만주족의 조상인 여진족 금나라와의 전쟁 과정에서 목숨을 잃었다.
송나라를 이은 명나라 때 악비 숭배가 더 강해졌다. 명나라를 무너뜨리고 들어선 만주족 청나라가 이 반(反)여진주의자를 곱게 봐주기는 어려웠다. 그렇다고 악비 추앙 풍습을 짓밟자니 한족의 반발이 우려됐다. 이의 대체재로 키운 것이 관우였다.
관우는 그럴 자격도 있었다. 그전에도 중국에서는 관우가 영웅이자 재신으로 유명했다. 청나라에서는 이를 더 부추긴 것이다. 만주족 황제들이 앞장서서 관우 띄우기에 나섰다. 관우는 만주족과 악연이 없었다.
이에 따라 청나라 강희제 때 만들어진 쓰촨성 청두 무후사의 관우상은 특히 중요하게 여겨졌다. 그의 머리에 황제급 면류관을 쓰고 있는 모습이 눈에 띈다.
/글·사진(청두)=최수문특파원 chs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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