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정여울의 언어정담] 우리는 어떻게 절친이 되었는가

작가

문학 평론가 황광수 선생님은 나의 멘토

32년 나이 차이 불구 첫 만남서 친구돼

내 모든 슬픔·분노까지도 지극히 존중

세상 버티게 하는 스승의 사랑에 감사

정여울 작가




우리 사이엔 32년의 나이 차가 있다. 나의 멘토인 문학평론가 황광수와 나 사이에는 무려 32년이라는 기나긴 시간이 거대한 강물처럼 가로놓여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만나자마자 절친이 되었다. 독립운동가였던 아버지와 큰형을 모두 역사의 격랑 속에서 잃어버린 파란만장한 가족사, 가슴 아픈 첫사랑의 트라우마, 다시는 마주치고 싶지 않은 철천지 원수같은 사람들에 얽힌 상처들까지. 나는 때로는 눈물을 뚝뚝 흘리고, 때로는 배꼽을 잡고 박장대소하며, 선생님의 놀라운 인생 이야기를 그저 듣기만 해도 좋았다. 사실 나는 선생님을 처음 만난 그날 깨달았다. 우리는 영원한 친구가 될 것임을.



내 글에 집요하게 악성댓글을 다는 사람들 때문에 내가 잔뜩 풀이 죽어 있을 때, 선생님은 순대국집에서 소주 한 잔을 가득 따라주시며 말씀해주셨다. “여울아, 나는 악성댓글조차 받아본 적이 없어. 사람들이 날 모르거든. 칠십 평생 글을 써왔는데도. 하지만 넌 악성댓글보다 독자들의 사랑을 훨씬 많이 받잖아. 그리고 내가 있잖아. 네 모든 글의 첫 번째 독자인, 내가 있잖아.” 나는 그런 사랑을 받은 사람이다. 그 사랑 때문에 나는 무너지지 않을 수 있었다.

친구를 사귀기를 두려워하는 내가, 내 아버지보다도 나이가 많은 선생님에겐 거리낌 없이 비밀을 털어놓고, 부끄러움 없이 눈물도 보인다. 우리는 한 번도 이해관계로 얽힌 적이 없다. 우리는 만나자마자 직감적으로 서로의 눈빛을 알아보았다. 우리 두 사람 모두 ‘같은 대상’을 향해 미쳐있음을. 그것은 ‘문학’이었다. 우리는 문학을 통해 친구가 되었고, 문학을 안주 삼아 새벽까지 술을 마셨고, 문학판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못 볼 꼴들’조차 함께 견디고 바라보며 간신히 살아남았고, 문학으로 결코 영광을 본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문학을 꼭 끌어안은 채 함께 나이 들어가고 싶었는데. 이제는 선생님의 다정한 문자메시지를 볼 수 없다는 것이 너무도 괴롭다. 선생님은 내 신간을 받아보실 때마다, 이런 메시지를 보내주셨다. 매번 다르게, 매번 다정하게, 매번 이 세상 어떤 사람보다도 따스하게.



“여울아, 너의 책은 글, 삽화, 편집이 이루어낸 작은 유토피아 같다. 잘 읽어볼게. 고맙다.” “여울아, 이번 책은 왜 하고 싶은 말을 다 못한 거야. 네가 하고 싶은 말을 십분의 일도 다 못한 것 같아. 행간의 여백 사이로, 네가 하지 못한 모든 말들이 내겐 보인다. 하지만, 그래도 좋다. 네 책을 읽는 건, 내겐 커다란 기쁨이야.” 4년째 암투병을 해오시며 매순간 사투를 벌이시는 내 소중한 멘토, 황광수선생님은 아실까. 내가 피를 나눈 가족보다도, 선생님에게 가장 먼저 내 신간을 부리나케 보낸다는 것을.

나를 비난하고 괴롭히면서도 ‘이게 다 널 사랑해서 그래’라는 눈빛으로 모든 것을 무마하려고 했던 파렴치한 사람들과 달리, 선생님은 절대로 화내지 않는 사랑, 결코 얼굴 붉히지 않는 사랑이 이 세상에 분명 존재함을 온몸으로 가르쳐줬다. 선생님을 통해 나는 깨달았다. 진정한 사랑에는 본래 그 어떤 어둠도 없음을. 어둠조차 참아내는 사랑을 강요하는 세상 앞에서, 선생님은 어둠 없는 사랑의 티 없는 모범답안을 보여줬다. 어리다는 이유로, 여자라는 이유로, 그냥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내가 세상에서 자꾸만 까이고, 무시당하고, 짓밟힐 때도, 선생님은 변함없는 예의바름과 믿을 수 없는 친절함으로 내 모든 슬픔과 분노를 지극히 존중해줬다. 아무런 혈연도 지연도 얽히지 않았음에도, 나를 조건없이 사랑해주는 이 한 사람을 잃지 않기 위해, 내가 얼마나 노심초사하며 선생님에게 사랑받는 존재가 되기 위해 투쟁했는지, 선생님은 알 것이다. 내가 문학평론가 황광수를 ‘선생님’이라고 부를 때는, ‘선생님’이라는 단어가 가지고 있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의미만을 모아서, 너무도 간절히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내가 최고의 스승으로 생각하는 이 세상 단 한 사람, 그가 황광수이기 때문이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