덴마크의 한 유명 예술가가 형편없는 작가비를 고발한다며 제작비를 포함해 1억원이 넘는 돈을 미술관으로부터 지원받고 백지상태의 작품을 출품했다.
29일 영국 언론 가디언과 유로뉴스 등은 덴마크 북부의 올보르(Aalborg) 현대미술관에서 '워크 잇 아웃'(Work It Out)이라는 주제로 최근 개막한 전시회에 예술가 옌스 호닝(56)이 텅 빈 화폭 2점을 선보였다고 보도했다.
미술관 측은 예술과 노동의 관계를 탐색하는 이번 전시회를 위해 호닝에게 덴마크와 오스트리아의 평균 소득을 다루는 그의 과거 작품들을 개작해달라 요청했다. 호닝의 원작에는 주제를 구현하기 위한 방편으로 실제 지폐들이 부착됐기에 미술관 측은 호닝에게 작품 제작에 필요한 돈 53만4,000크로네(약 9,970만원)와 작가비 2만5,000크로네(약 470만원)를 지급했다.
그러나 호닝이 전시회 개막을 이틀 앞두고 전달한 작품은 미술관의 기대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이었다. 그는 백지상태의 작품 2점을 미술관 측에 건네며 ‘돈을 갖고 튀어라’라는 제목의 새로운 개념예술품을 창조했다고 설명했다.
미술관 측은 자본주의에 대한 호닝의 재해석에 박수를 보내기보다는 그가 자신들이 지급한 돈을 작품에 사용하지 않은 것은 명백한 ‘착복’이라며 황당해했다. 그러면서도 그의 새로운 작품을 지난 24일 개막한 전시에서 관객에게 선보이기로 결정했다.
올보르 현대미술관 라세 안데르센 관장은 “호닝은 본질적으로 우리 전시 주제와 부합하는 작품을 창조했다”며 그가 흥미로운 작품을 내놓았음은 인정하면서도, 계약 조건대로 전시회가 끝나는 내년 1월 이후에 제작비 53만4,000크로네를 반환할 것을 요구했다. 안데르센 관장은 “나 역시 다른 사람처럼 당황스럽다”면서 “우리는 부유한 미술관이 아니다. 우리는 보유 자금을 신중히 지출해야 한다”고 가디언에 전했다.
하지만 호닝은 현지 DR방송에서 “그 작업은 내가 그들의 돈을 가져간 것”이라며 “이번 일은 절도가 아니라 계약 위반이고, 계약 위반은 이번 작품의 일부”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작품 제작비를 돌려줄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밝혔다. 그는 미술관 측이 제작비로 너무나 적은 돈을 보내 ‘돈을 갖고 튀어라’를 구상했다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의뢰받은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는 그가 추가로 2만5,000크로네(약 343만원)를 더 부담해야 했다. 호닝은 “나처럼 비참한 노동환경에 처한 다른 사람들도 똑같이 행동하길 바란다”며 “형편없는 일을 하면서 보수를 제대로 받기는커녕 오히려 일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한다면 할 수 있는 만큼 움켜잡고, 그것을 극복하라”고 강조했다.
한편 미술관 측은 호닝이 내년 1월 전시회 종료 후에 작품 제작비를 반환하지 않으면 법적으로 대응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