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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 경양식집의 깍두기는 왜 맛있을까




오래된 경양식집에서는 시금치나물이나 삶은 채소가 접시 위에 종종 보이는데, 이곳은 당근과 완두콩, 옥수수를 섞어 한켠에 놓았다. 신호등 같다. 흰 접시에 담긴 여러 가지 색깔이 돈까스의 맛을 거든다. (…) 경양식집 깍두기는 왜 이렇게 맛있을까? 기름에 구운 두부와 김치를 함께 먹으면 맛있는 것처럼 튀긴 고기와 깍두기도 잘 어울린다. 어릴 때 포크 뒷면으로 접시 밥을 꾹꾹 눌러 붙여먹곤 했었는데, 오랜만에 예전처럼 맛보지만, 앞자리에 아무도 없으니 멋있게 보이지는 않는다. 소주 한 잔이 매우 달다. (조영권 지음 이윤희 그림, ‘경양식집에서’, 2021년 린틴틴 펴냄)





28년 경력의 피아노 조율사 조영권 작가는 전국 방방곡곡으로 출장 다니며 피아노를 조율하고 현지의 오래된 경양식집을 찾아 식사를 한다. ‘혼밥’을 할 때 경양식집은 일반적인 선택지는 아닐 것이다. 대개 후딱 먹을 수 있는 한 그릇 음식과 가급적 최소한의 자리를 차지하여 무리 속에 묻혀 식사할 수 있는 곳을 고르게 된다. 하지만 조영권 조율사는 한 끼의 식사를 어쩔 수 없이 해치워버리듯 먹지 않는다. 정중한 웨이터가 수프와 샐러드와 본식과 디저트와 커피를 천천히 서빙해오는, 적절한 낡음과 기품이 있는 경양식집에서 그는 삶을 음미한다.

조영권 조율사는 일을 다 마치고 경양식집에 들르게 되면 여기에 소주 한 병을 주문한다. 삼겹살에 소주가 제격인 것처럼 바삭한 돈가스에 잘 익은 깍두기를 곁들여 다디단 소주를 조용히 삼키는 그의 모습을 보면, 인생의 소음을 조율하고 스스로를 따뜻하게 대해주는 것이 그리 거창하고 어려운 일만은 아니구나 생각하게 된다. 살다보면 매일 반복되는 끼니는 그저 때우는 것이 되고 남을 접대하는 일엔 공들이면서 나의 허기는 대충 뭉개기 십상이다. 그러나 경양식집의 피아노 조율사는 전국 경양식집들의 개성과 멋을 즐기면서, 실은 자신의 인생과 취향을 최적의 상태로 조율해내고 있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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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레저부 정영현 기자 yhchu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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