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주인수 계약 시 특정 주주에게 회사의 주요 경영사항에 사전 동의권을 주는 약정은 무효라는 법원 판단이 나왔다. 다른 주주들에게 인정되지 않은 우월한 권리를 부여해서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는 이유다.
29일 법조계에 따르면 서울고등법원 16민사부(재판장 차문호 부장판사)는 디스플레이 제조업체 A사가 컴퓨터시스템 제조 판매회사인 B사를 상대로 “43억여원을 지급하라”며 낸 상환금 청구 소송에서 A사 패소로 판결했다.
B사는 2016년 자금 사정이 악화되자 자금 조달을 위해 그 해 12월 신주 20만주를 발행했다. 투자사인 A사는 2016년 12월 B사가 새로이 발행한 20만주를 20억원에 인수하기로 하면서, 추후 B사가 신주를 발행할 경우 A사의 사전 서면동의를 받도록 하는 약정을 체결했다. 이를 어길 시 투자금 상환은 물론 위약벌을 부담하도록 했다.
이후 B사가 A사의 사전 서면 동의없이 2018년 8월에 26만주를 발행하자 A사는 상환금과 위약벌 명목으로 합계 43억여원을 달라고 소송을 냈다.
핵심 쟁점은 신주발행과 같은 회사의 중요 정책결정에 대한 사항에 대해 투자자에게 사전 동의권까지 부여하는 약정이 유효한가였다. 회사가 신주 발행의 형태로 투자자로부터 부족한 자금을 조달하며 투자자를 우대하는 약정을 하는 경우가 많은데, ‘투자자에게 투자대상회사의 중요 정책결정에 대한 사전 동의권을 부여'하는 약정까지 효력이 있는지 여부가 문제가 됐다.
1심 재판부는 A사 측 손을 들어주며 B사가 A사에게 43억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해당 약정이 상법상 기본 원리에 반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1심 재판부는 “피고 이사회의 주요 권한을 특정 주주인 원고에게 부여하는 것이라고 보기 어려우며, 소유와 경영의 분리라는 주식회사의 기본 원리에 반한다고도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항소심에서 판단은 뒤집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회사가 일부 주주에게만 우월한 권리나 이익을 부여하기로 하는 약정은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무효”라며 1심 판단을 뒤집고 B사의 손을 들어줬다.
항소심 재판부는 사전 동의권 같은 약정이 주주평등의 원칙에 반한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주주평등의 원칙에 대한 예외로서 종류주식이 발행될 수 있으나 그 유형은 법령이 정한 것으로 한정된다”며 “이를 허용할 경우 이른바 ‘황제주’와 같은 사실상 법이 허용하지 않는 내용의 종류주식을 발행하는 것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같은 약정을) 허용하면 재무적으로 열악한 상황에 처해 신주발행을 통해 자금을 조달하고자 하는 회사의 기존 주주들을 불리한 지위에 처하도록 한다”고도 덧붙였다.
법원 관계자는 “주식회사가 신주발행을 통한 자금조달과정에서 투자자에게 사전동의권과 같은 강한 경영상 의무를 직접 부담하는 계약이 금지되어, 주식회사의 경영권이 보호되고, 기존 주주와 사후 투자자 사이에 주주로서의 지위가 불평등해지던 것이 해소될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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