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체메뉴

검색
팝업창 닫기
이메일보내기

[공감] 세상에서 가장 웃긴 유고집





아버지가 말씀하신다. 사실 주말농장을 하는 이유는 일이 없어 무료한 내 일상을 위한 것도 있지만, 우리 딸 농약 안 친 건강한 야채 먹이려고 그런단다. 감동이다. 나를 위해 매일 새벽 농장에 나가 야채들을 가꾸신다니. 힘들어하실 아버지를 위해 농장에 맛있는 것을 사들고 깜짝 방문했을 때 아빠는 인간 스프링클러처럼 농약을 뿌리고 계셨다. 실로 장관이었다. (박지선, ‘멋쟁이 희극인’, 2021년 자이언트북스)





개그우먼 고(故) 박지선의 1주기에 즈음해 책이 출간됐다. 고인이 남긴 글로 만든 유고집은 보통 슬프고 엄숙한 마음으로 읽게 되지만, 이 유고집은 책을 엮은 박지선의 벗들이 말한 대로 ‘입꼬리를 한껏 끌어올려’ 호탕하게 웃게 된다. 박지선의 개구진 웃음소리가 귓가에 맴도는 이 책은 어쩌면 세상에서 가장 웃긴 유고집일지도 모른다.

책을 빼곡히 채우고 있는 건 그의 가족 이야기다. 단 한 번이라도 작은 텃밭이나마 일궈본 사람은 알 것이다. 농약 없이 작물을 키운다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가족 몰래 농약을 뿌리면서라도 직접 키운 그럴듯한 야채를 집에 가져오고 싶었을 아빠, 그런 아빠의 뒷모습을 웃음으로 기록한 딸. 박지선은 웃음은 저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우리집 안에서, 가장 가까이에서 우리의 생을 든든히 지켜주고 있음을 깨닫게 한다. 누군가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그를 한껏 웃게 해주고 싶어할 때 우리는 각자의 세상에서 최고의 개그맨이 된다.

더이상 스스로 웃을 수 없고 세상을 웃기지도 못할 만큼 아픈 것이 슬퍼서 이 ‘멋쟁이 희극인’은 그리도 일찍 떠났을까. 남을 깎아내리는 냉소와 비웃음이 들끓는 세상에서 박지선은 끝끝내 진짜 웃음은 사랑의 온기에서 빚어지는 것이라고 말해준다. 사랑하는 마음과 시간이 쪼그라들 때 우리의 일상에서 웃음은 사라진다. 개그우먼 박지선이 만들어내는 웃음의 원천 에너지는 주변 사람들을 향한 따뜻한 관찰과 지극한 사랑이었다. /이연실 문학동네 편집팀장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
주소 : 서울특별시 종로구 율곡로 6 트윈트리타워 B동 14~16층 대표전화 : 02) 724-8600
상호 : 서울경제신문사업자번호 : 208-81-10310대표자 : 손동영등록번호 : 서울 가 00224등록일자 : 1988.05.13
인터넷신문 등록번호 : 서울 아04065 등록일자 : 2016.04.26발행일자 : 2016.04.01발행 ·편집인 : 손동영청소년보호책임자 : 신한수
서울경제의 모든 콘텐트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는 바, 무단 전재·복사·배포 등은 법적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Copyright ⓒ Sedaily, All right reserved

서울경제를 팔로우하세요!

서울경제신문

텔레그램 뉴스채널

서울경제 1q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