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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적 편입 규제에 수익 '쥐꼬리'…"투자 바구니 다양화해야"

[‘300조 시대’ 퇴직연금 이대론 안 된다]

<하> '갈라파고스 운용 제도' 손질 시급

주식형펀드 등 '위험자산'은 적립금 70%까지만 편입

당국 온정주의 영향에 원리금보장형 비중 90% 달해

TDF·EMP 등 출시 맞춰 모순적 편입 규제 개선 필요





우리나라 퇴직연금이 연 2%대 ‘쥐꼬리 수익률’에 허덕이는 가장 큰 이유가 결국 ‘포지티브’ 운용 규제를 고수하기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높다. 상품별 편입 비중에 별다른 규제를 두지 않고 있는 해외 국가들과 달리 우리나라는 상품별 위험도를 따져 퇴직연금 내 투자 한도를 일일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금융투자 업계는 이제라도 금융 당국이 ‘온정주의(paternalism)’적 사고에서 벗어나 상품별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10일 금융투자 업계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퇴직연금을 통해 펀드에 가입할 때 상품 유형별로 투자 한도를 정한다. 가령 주식·주식혼합형 등 ‘위험 자산’ 펀드는 적립금의 70%까지만 편입할 수 있다. 머니마켓펀드(MMF)나 채권·채권혼합형 펀드는 전액 투자가 가능하다. 상품별로 투자 대상이 천차만별이라 처음 가입할 때 자신에게 맞는 상품을 잘 판단하고 가입해야 하는 불편함이 따른다. 반면에 미국·영국·호주·캐나다는 상품별 편입 비중에 제한을 두지 않고 있다. 일본도 지난 2012년 개별 자산에 대한 편입 비율 규제를 폐지하고 위험도가 다른 자산의 분산투자를 의무화하는 방향으로 바꿨다. 이런 까닭에 한국의 퇴직연금제도는 ‘갈라파고스 규제’에 가깝다는 지적이 나온다.

우리나라의 규제 체계는 원리금보장형 상품 쏠림으로 귀결되고 있다. 실제로 2020년 말 전체 퇴직연금 적립금 255조 5,000억 원 중 원리금보장형 상품이 차지하는 비중은 89.3%에 달했다. 원리금 중심 포트폴리오는 낮은 수익률로 연결된다. 우리나라의 10년 단위 퇴직연금 연환산 수익률은 2.56%에 그쳤는데 해외에서는 20년 이상 수익률이 연평균 7%대에 달한다.

온정주의적 정책 철학이 규제 저변에 깔려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2000년대 초중반에만 해도 투자자들은 직접 포트폴리오를 짜는 대신 금융사가 권하는 펀드에 수동적으로 가입하는 경향이 강했다. 기준금리도 3~5% 수준으로 현재보다 높았다. 당국 입장에서는 ‘완전경쟁 시장’보다 ‘정부 개입’을 통해 국민들을 안정적인 연금 상품으로 유도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었다.

채권혼합형 펀드가 이 같은 규제 철학을 방증하는 사례다. 채권혼합형 펀드는 주식을 최대 40% 담을 수 있는 상품이다. 퇴직연금 적립금을 100% 편입할 수 있는 데다 다른 저위험 펀드에 비해 주식 비중이 높아 퇴직연금 주요 투자처로 통한다. 그런데 채권혼합형 펀드는 주식형펀드보다 높은 장기 수익률을 나타냈다. 의무적으로 ‘주식 40%’ 비중을 맞추는 과정에서 고평가된 종목을 무조건 팔아야 하기 때문이다. 규제가 채권혼합형 펀드 가입을 ‘유도’하고 국민들의 장기 수익률을 끌어올리는 효과를 낳았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 풍토에서는 정부가 특정 상품 투자를 유인하는 모델이 적절하지 않다는 해석이 나온다. 자본시장 발달로 타깃데이트펀드(TDF)나 ETF자문포트폴리오(EMP) 펀드 등 연금 투자에 적합한 펀드가 다수 출시되고 있기 때문이다. 2030세대는 과거처럼 채권혼합형 펀드 하나만 보고 투자하지 않고 스스로 다양한 상품을 발굴해 자신만의 포트폴리오에 넣고 있다.



민주영 키움투자자산운용 이사는 “특정 펀드에만 가입하는 경향이 강하고 금융 지식 수준이 높지 않았을 때는 규제가 잘 작동했다”며 “그러나 TDF를 중심으로 글로벌 자산 배분이 가능해지고 MZ세대에서 금융을 공부하는 문화가 형성되면서 환경이 바뀌었다”고 말했다.

‘규제’에 의존해 특정 상품 투자를 유도하는 방식보다는 운용 규제를 풀어 퇴직연금 상품의 ‘시장 경쟁’을 촉진하는 방향으로 정책 패러다임이 발달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오는 이유다. 애초에 운용 규제 자체에서 모순이 나타나고 있다는 지적이다. 주식혼합형 펀드와 주식형 펀드가 대표적이다. 주식혼합형 펀드는 주식을 최대 60%까지 담을 수 있으며 주식형 펀드는 운용 자산 전액을 주식에 투자할 수 있다. 그러나 두 상품 모두 편입 한도가 70%다. 주식 편입 한도가 40%포인트 차이 나는데 차등을 두는 근거가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다.

이미 2018년 금융위원회에서 확정기여(DC)형 투자자에 한해 적격 TDF를 100% 담을 수 있도록 퇴직연금 감독 규정을 바꾼 시점부터 운용 규제가 무의미해졌다는 의견도 나온다. 적격 TDF란 운용 기간 내내 주식 비중이 80%를 넘지 않고 목표 시점 이후 주식 비중이 40%를 넘지 않는 상품을 말한다.

지철원 트러스톤자산운용 연구위원은 “(빈티지가 높은) TDF는 주식형 펀드로 봐도 무방하다”며 “TDF만 운용 규제를 풀어주면 앞뒤가 안 맞는다”고 분석했다.

퇴직연금과 개인연금의 운용 규제를 각기 다르게 적용해야 하는지도 논쟁 거리다. 개인형퇴직연금(IRP)이 쟁점의 주역이다. 개인연금의 경우 적립금 전액을 주식형 펀드 등에 투자할 수 있다. 반면 IRP는 퇴직연금의 일종이라 개인연금과 달리 위험자산 70% 편입 비율 규제를 적용받는다. 하지만 사실상 개인연금과 IRP가 근로자 세액공제 상품으로 똑같은 취급을 받으면서 두 상품 간 구별이 점점 흐릿해지는 분위기다.

김동엽 미래에셋투자와연금센터 상무는 “퇴직연금은 근로자의 기본 소득을 원천으로 두는 반면 개인연금은 첫 시작부터 (투자자가) 스스로 선택해 가입하는 개념”이라면서도 “퇴직·개인연금이 만나는 쪽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고 평가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개인연금은 금융위, 퇴직연금은 고용노동부 소관”이라며 “세제 혜택 등으로 보면 두 상품 간 차이가 없는데 고용부에서 자신의 영역을 고수하려는 일종의 영역 다툼이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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