많은 국가들이 코로나19 사태가 전세계에 끼친 노동시장의 충격을 간과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왔다. 단순히 일자리가 없어진 실업지표로만 노동시장을 접근하면 전체 위기를 가늠하지 못하는 잘못된 판단을 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상헌 국제노동기구(ILO) 고용정책국장은 11일 한국노동연구원 개원 33주년 세미나의 기조강연자로 나서 "코로나로 인해 작년에 주 48시간 기준 일자리의 2억5,000만개 이상 사라졌다"며 "이는 노동시간으로는 (전년 대비) 9% 손실이고 2008년 상황(금융위기)와 비교하면 일자리 손실 규모는 4배 이상"이라고 말했다. 세미나는 디지털화와 탈탄소화 인구구조 변화를 진단하고 노동정책에 제안하고 토론하는 자리다.
하지만 이 국장은 노동시장의 충격이 바로 실업으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진단했다. 금융위기에도 고용이 이전 상황을 회복하는 데 10년 이상 걸렸다고 경고했다. 이 국장은 "(작년 일자리 감소)에서 실업으로 연결된 부분은 3분의 1도 안될 것"이라며 "3분의 2 이상은 비경제활동인구가 된 상황으로 보여 코로나를 분석할 때 실업수준으로만 판단하면 전체 위기 규모를 오판할 여지가 많다"고 말했다. 단순하게 코로나19 사태로 없어진 일자리는 회복 국면에서 다시 생겨나고 노동자도 이 일터로 돌아가기 쉽다. 하지만 일하지도 않고, 구직활동 않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증가하고 이들이 장기실업상태로 빠지면 노동시장의 회복이 더디다는 것이다.
이 국장이 전세계 노동시장에서 더 심각하다고 보는 지점은 국가별 양극화다. 선진국과 개발도상국의 재정 지원 여력과 백신 보급력이 크게 엇갈리면서 위기 회복 속도 차이도 컸다. 이 국장은 "선진국은 1% 노동시간 손실에 일대일 정도의 부양책을 쓴 반면,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의 10%도 부양책을 못 썼다"며 "국제협력개발기구 국가는 빠르게 개선되지만, 전세계 고용 상황을 보면, 올해도 작년 4분기 이후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 같은 국가 양극화는 더 심해질 가능성이 높다. 전 세계 부양책을 100으로 놓고 보면 85는 선진국에 집중됐다는 분석이다. 이미 벌어진 재정능력에다가 개발도상국은 부채 부담이 가중됐다. 백신이 빨리 보급된 선진국은 방역규제를 풀어 경기 회복에 박차를 가하고 있지만, 개발도상국은 여전히 방역을 이유로 경제를 멈췄다는 것이다. 게다가 개발도상국은 선진국처럼 환경분야와 같이 일자리를 만드는 투자는커녕, 사회보장 시스템을 갖추기조차 버거운 실정이다. 더 빨라질 디지털, 탈탄소, 인구구조 변화에 대응할 여력이 줄어들 상황이다. 이 국장은 "앞으로 2~3년 전세계는 인플레이션을 피할 수 없을 것 같다"며 "사회보장제도를 강화해 불평등을 개선하는 게 절대적으로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편, 1919년 설립된 ILO는 세계 경제 변화에 맞춰 노동자의 권익 보호와 정책을 제안하는 국제연합(UN) 내 전문기구다. 설립 이후 190개 협약, 206개 권고 등 국제노동기준을 만들었다. 5월 기준으로 187개국이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나라 최초로 ILO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했고 최근 강경화 전 외교부장관이 차기 사무총장 선거에 출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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