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액의 용기를 병에서 백(Bag)으로 전환해 환자의 건강 증진에 기여할 수 있었다는 점이 가장 큰 보람입니다.”
강석희 HK이노엔(195940)(옛 CJ헬스케어) 대표이사(사장)는 16일 서울경제와의 인터뷰에서 ‘40년 직장 생활 동안 가장 기억에 남는 점’을 이같이 꼽았다. 그는 “HK이노엔이 지난 1992년 수액 사업을 시작할 때만 해도 국내 수액 용기는 모두 병이었지만 지금은 96~97%가 백으로 전환됐다”며 “앞으로 모든 수액제에 TOP(Twist-off protector) 포트를 적용할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HK이노엔은 1984년 CJ제일제당 제약 사업부에서 출발한 회사다. 2014년 CJ제일제당에서 물적 분할해 CJ헬스케어로 출범했고 2018년 한국콜마(161890)에 인수됐다. 30호 국산 신약 ‘케이캡’을 탄생시킨 전문의약품 사업, ‘컨디션’과 ‘?헛개수’?가 이끄는 HB&B(Health Beauty&Beverage) 사업을 내세워 국내 대표 제약·헬스케어 기업으로 성장했다. JW중외제약·대한약품과 함께 시장을 삼분하고 있는 국내 수액 대표 주자이기도 하다.
강 대표는 30여 년 동안 제약 부문에 몸담았다. 특히 HK이노엔의 수액 사업과는 역사를 함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88년 CJ제일제당에 입사한 그는 CJ그룹이 막 시작한 수액 사업에서 프로젝트 매니저(PM)라는 중책을 맡았다. 영업직 과장으로 팀 내 누구보다 현장을 잘 알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경영진의 인사였다. 강 대표는 스스로를 ‘영업 예찬론자’라고 칭할 정도다. 신입 사원들에게 “영업부터 배우라”고 강조하는 것도 이때의 경험에서 나왔다. 그는 “영업에는 인사·재무·기획 등 모든 것이 들어 있다”면서 “직장에서 오랫동안 근무해 임원으로 성장하고 싶어도, 회사를 그만두고 자신만의 일을 찾아가고 싶어도 영업이 바탕이 된다”고 조언했다.
후발 주자인 HK이노엔에 수액 시장 도전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당시 시장에는 40년 동안 수액 사업을 해온 양대 경쟁사가 버티고 있었다. HK이노엔은 국내 최초의 백 수액 ‘세이프 플렉스(Safe-Flex bag)’를 승부수로 들고 나왔다. 하지만 수액 병을 세워두고 주삿바늘을 꽂는 것이 자연스러웠던 의료진들에게 ‘손 많이 가는’ 백 수액 사용을 설득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결국에는 ‘환자를 먼저 생각하자’는 발상이 의료 현장의 변화를 이끌어냈다. 당시 병 수액은 공기가 들어가 병 안의 압력을 높임으로써 약물이 아래로 떨어지는 구조였는데 병원 내 오염된 공기가 수액에 스며들 가능성이 있었다. 그는 “대형 병원부터 설명회를 돌면서 의료진들에게 왜 백 수액을 사용해야 하는지 강하게 이야기했다”며 “통계적인 측정은 불가능하지만 백 수액으로 전환하면서 원내 공기감염이 줄었을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수액 사업이 당장 성과가 난 것은 아니다. 수액은 ‘환자의 밥’이라고 할 정도로 치료에 없어서는 안 될 필수의약품이다. 하지만 회사의 수익에 크게 도움이 되는 품목은 아니었다. 부피가 커서 대규모 생산 시설 투자가 필요한데 막상 공급되는 가격은 저렴했기 때문이다. 좀처럼 늘지 않는 백 수액 점유율과 적자 확대로 사업은 한때 위기를 맞기도 했다. 강 대표는 “사내에서 수액 사업을 접자는 목소리도 있었지만 나는 계속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면서 “당시 젊은 과장이어서 가능했던 일”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30년 동안 뚝심 있게 사업을 지속한 끝에 수액 사업은 HK이노엔 사업 영역의 한 축을 담당하게 됐다. HK이노엔이 생산하는 수액은 기초수액(포도당·생리식염수 등), 영양수액(오마프원주·오마프원리피드주 등), 특수수액(이노엔생리식염관주액·유로솔 등) 등 총 44개다. 지난해 전체 매출 5,984억 원 중 860억 원(14%)이 수액에서 나왔다. 지난해 기준 국내 수액 시장 점유율은 33%다.
HK이노엔의 수액 사업은 제2 도약의 발판을 마련했다. 2019년부터 약 1,000억 원을 투입해 최근 오송 신공장을 완공한 것. 기존 대소공장과 합치면 연간 1억 개 이상의 수액제를 생산할 수 있게 됐다. 백 수액제 생산량으로는 국내 최대 수준이다. 그는 “공장 가동률을 120% 이상 올리더라도 생산 능력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생산량을 조절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오기도 했다”면서 “장기적으로 인구 고령화로 입원·중증질환자가 증가하면서 수액제 사용이 늘어날 것으로 예상해 생산 시설 확대를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오송 신공장은 조제부터 입고까지 전 과정을 자동화하고 수액 생산 과정을 모니터링할 수 있는 24시간 스마트 공장이다.
강 대표는 새로운 기술로 수액 시장에 변화의 바람을 일으키고 있다. 주인공은 수액의 TOP 포트. 현존하는 제품은 수액 백에 달려 있는 고무 포트에 주삿바늘을 찔러 넣어야 수액이 나오는 방식이다. 자칫 고무 가루가 백 안으로 들어가면 수액이 오염될 수 있다. 또 고무의 복원력이 떨어져 포트 사이로 수액이 흘러내리거나 포트가 빠지는 일도 발생한다. 강 대표는 “TOP 포트는 주삿바늘로 찔러 넣지 않고 부품을 연결하는 것만으로도 수액이 흘러나오게 할 수 있다”며 “앞으로 HK이노엔이 생산하는 모든 수액제에 TOP 포트를 적용할 예정”이라고 했다.
HK이노엔의 또 다른 도전은 수액의 프리미엄화다. HK이노엔은 기초수액뿐만 아니라 중증·수술 환자들을 위한 종합영양수액(TPN)도 보유하고 있다. 고령화에 따라 중증질환 환자가 증가할 것을 대비해 자체 개발 TPN 제품 파이프라인을 확대 중이다. 오송 신공장에는 향후 시장 현황 및 포트폴리오 확대를 고려해 소용량(50~200㎖) TPN을 생산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 뒀다. 강 대표는 “최근 TPN 개량 신약의 국내 임상 3상을 승인 받았다”며 “4세대 TPN 신약도 개발 중으로 연내 임상 1상을 신청하는 것이 목표”라고 밝혔다. 해외 수출도 늘린다. 그는 “TPN 시장은 지속적으로 커지고 있고 해외에서도 수요가 많다”면서 “TPN은 완제품을 수출할 수 있고 필요하면 해외 제약사와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영양수액을 제조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강 대표는 “TOP 포트, 프리미엄화, 수출을 통해 현재 800억 원대인 수액 부문 매출을 1,600억~1,700억 원까지 늘리겠다”고 밝혔다. 전문의약품(ETC)과 건강·뷰티·음료(HB&B)까지 합쳐 회사 전체로는 3년 후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포부다. 강 대표는 “신공장 준공으로 생산량이 두 배가량 늘어나면서 매출 규모가 크게 증가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며 “의료기관이 TOP 포트가 얼마나 환자에 유익한지 이해하면 TOP 포트 수액으로 바뀌어 갈 것이라고 보고 있다. HK이노엔이 그 변화에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