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기사에서 NFT의 개념과 엔터업계가 NFT에 주목하는 이유를 알아봤습니다. 그런데 NFT와 함께 핫하게 불타오르고 있는 산업이 또 하나 있습니다. 바로 게임입니다.
NFT를 게임에 도입한 Play To Earn(돈 벌기 위해 게임을 하는), 즉 P2E 방식의 게임이 게임 산업 전체를 뒤바꿀 거라는 기대감 때문입니다. 게임을 하기 위해 돈을 쓰던 분들은 ‘돈을 벌기 위해 게임을 한다’는 개념이 이해하기 쉽지 않을텐데요. 게임을 하면서 돈을 버는 세상이 생겨나고 있다고 합니다.
◇ NFT 게임 대표주자, 엑시 인피니티
NFT 게임으로 가장 큰 시장을 형성하고 있는 건 베트남의 한 스타트업 스카이매비스가 내놓은 엑시 인피니티입니다. 엑시 인피니티는 ‘엑시'라는 이름의 귀여운 몬스터 캐릭터를 내세운 게임입니다. 엑시를 구매하고 교배시켜서 더 좋은 엑시를 만드는 게 메인인데요. 능력치·희귀도가 제각각인 엑시로 다른 이용자와 대결하며 레벨을 올려가는 방식이죠.
간단한 그래픽과 룰을 가진 엑시 인피니티는 엑시는 물론 토큰과 아이템도 NFT를 기반으로 하고 있기 때문에 고유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엑시로 배틀, 미니게임을 하거나 교배시킨 엑시를 판매하면 AXS라는 토큰을 얻을 수 있는데요. 게임 내에서 사용되는 이 AXS 토큰은 이더리움 기반의 NFT 코인으로 실제 코인 시장에서도 거래되고 있습니다. 게임을 통해 얻은 게임머니를 바로바로 현금화할 수 있는 거죠. 엑시 인피니티에서 가장 비싸게 거래된 아이템은 300이더리움으로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억 5,500만원에 달합니다.
그러나 여전히 사람들이 왜 게임 아이템을 거액을 주고 사는지, 또 회사는 어떤 방식으로 돈을 버는 건지 의문이 남는데요. 엑시 인피니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게임 플레이어가 엑시 3마리를 구입해야 합니다. 게임의 시작이 아이템 구매인 것입니다. 그리고 희귀하고 높은 능력치인 엑시를 가지고 있어야 배틀이나 미니게임에서 더 많은 토큰을 얻을 수 있고, 교배 과정에서도 더 좋은 엑시를 만들어내 비싸게 팔 수 있습니다. 당연히 ‘좋은’ 엑시에 대한 수요는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엑시 인피니티의 제작사 스카이매비스는 마켓플레이스에서 엑시가 거래되거나 교배가 이뤄질 때 4%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데요. 이게 곧 회사의 수익이 됩니다. 올해에만 엑시 인피니티에서 10억 달러가 거래될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이 중 17%가 엑시 인피니티의 수익으로 돌아갈 예정이고요.
◇ 게임으로 번 돈으로 월세 내고 밥 사먹는 필리핀 사람들
엑시 인피니티는 베트남에서 만든 게임이지만 필리핀 사람들이 가장 많이 플레이합니다. 요즘 나오는 고사양의 게임을 할 수 있는 컴퓨터가 없는 필리핀 사람들에게 핸드폰만 있으면 할 수 있는 엑시 인피니티가 대체 게임으로 주목받았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지난해 코로나19로 인해 필리핀의 실업률은 한때 70%까지 치솟았었는데요. 일자리를 잃은 필리핀 사람들이 엑시 인피니티에서 소득을 올린 ‘인증샷'을 SNS에 많이 올렸습니다. 소득이 월90~100만원씩 되다보니 필리핀의 경제력을 감안하면 꽤 쏠쏠한 금액었죠. 이 게임을 통해서 돈을 벌고, 그 돈으로 월세를 내고, 식료품을 살 수 있었으니까요. 게임 자체는 재미보다는 필리핀 사람들이 손쉽게 할 수 있는 돈벌이 수단이어서 이용자들이 몰리기 시작한 겁니다. 필리핀 사람들의 상황이 코로나19와 맞물리면서 바이럴된 게 엑시 인피니티 열풍의 핵심이었습니다.
◇ 기업가치 30억 엑시 인피니티 제작사, 기존 게임 한계 극복했다
엑시 인피니티는 코로나19로 인한 상황 덕에 순식간에 이슈가 된 면이 분명 있습니다. 이 때문에 엑시 인피니티의 제작사 스카이매비스의 기업가치가 과대평가되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죠. 스카이매비스는 현재 30억 달러의 평가를 받으며 승승장구 중이거든요.
하지만 스카이매비스는 현재의 인기를 놓치지 않으려 노력중입니다. 스카이매비스는 엑시 인피니티와 같은 NFT를 적용한 여러 후속 게임을 개발 중에 있는데요. 일단 엑시 인피니티를 통해 유저를 끌어모았기 때문에 해당 유저들을 여러 게임으로 유입시키기가 쉽습니다.
게다가 기존의 게임 산업이 갖고 있는 한계를 NFT를 통해 극복했다는 평도 받고 있습니다. 기존 게임은 유저들을 만족시켜줄 콘텐츠를 업데이트하지 못하면 유저가 이탈하고, 해당 게임에서 사용되던 아이템은 휴지조각이 돼버렸습니다. 그런데 엑시 인피니티는 그 인기가 사그라들더라도 유저들이 소유한 NFT 아이템들은 그 고유의 가치를 갖고 있기 때문에 여전히 NFT 시장에서 사고 파는 게 가능합니다. NC소프트처럼 유저들이 만족할만한 업데이트를 내놓지 못해 실적이 떨어질 리스크가 줄어든 거죠.
◇ K 게임에도 부는 NFT 열풍
이런 엑시 인피니트의 성공을 보면서 기회를 발견한 회사가 있었으니 바로 한국의 게임회사, 위메이드입니다. 한국 사람들이 많이 하는 MMORPG에 NFT를 적용해 미르4라는 게임을 지난 8월 출시했습니다. 엑시 인피니티보다 더 화려한 그래픽에 더 복잡한 게임 룰을 적용해 ‘재미있으면서 돈도 벌 수 있는 게임’을 만든 것입니다. 결과는 초대박이었습니다. 지난 11일 미르4 글로벌의 동시 접속자 수가 130만명을 돌파했습니다. 주목할만한 점은 한국 게임이 힘을 쓰지 못했던 유럽, 북미 시장에서 성과를 얻고 있다는 점인데요. 미르4 글로벌은 벨기에, 필리핀, 영국, 베네수엘라, 브라질, 네덜란드 등의 국가에서 롤플레잉 게임 순위 1위를 차지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한국의 작고 큰(자막: 위메이드, 펄어비스, 게임빌, 컴투스, 카카오게임즈, NC 소프트) 게임 회사들 모두 NFT 게임을 출시하겠다고 선포하기에 이르렀습니다. 특히 지난주, 한국 게임사 3N 중 하나인 NC 소프트가 NFT 진출 선언을 하면서 어닝 쇼크에도 불구하고 주가가 30% 가까이 오르기도 했습니다.
◇ 한국 NFT 게임, 한국인은 할 수 없다?
그럼 우리도 이제 한국의 게임회사들이 만든 재밌는 게임 세상 속으로 출근해서 게임도 하고, 돈도 벌 수 있는 거냐고요? 안타깝게도 우리나라 사람들은 NFT게임을 플레이할 수 없습니다. 한국에선 NFT게임이 출시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게임물관리위원회가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게임은 사행성과 환금성이 우려된다는 이유로 게임 등급분류를 거부했습니다. 그래서 미르4의 경우도 해외 버전에는 NFT가 적용돼 있지만 국내버전에는 NFT가 적용돼있지 않습니다.
해외에선 신나게 NFT게임을 하는데 우리나라 게임위만 엄격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2004년 사행성·환금성 아케이드 게임인 ‘바다이야기’에 사람들이 중독되고, 자살하는 사람이 생겨나고, 조직폭력배까지 연루되었던 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한국 사회가 한바탕 홍역을 치르게 되었는데요. 게임위는 이런 사태가 또 한 번 벌어지는 걸 예방하려는 겁니다. 이같은 이유 때문에 NC 소프트 등 여러 게임사가 NFT 게임을 출시한다 하더라도 주요 시장은 우리나라가 아닌 해외가 될 예정입니다.
국내에선 NFT 게임이 규제에 가로막혀있지만 글로벌 게임 업계는 NFT 게임으로 인해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과연 NFT로 인해 게임산업의 미래, 또 그 중에서 우리나라 게임 산업의 미래는 어떻게 변화하게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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