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일본 스가 내각에 이어 기시다 내각에서도 외교수장과 전화통화도 하지 못한 채 국제행사에서 첫 만남을 가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경색된 한일관계가 상반기의 데자뷔처럼 하반기에도 이어져 관계 회복의 실마리를 좀체 풀기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다.
29일 외교부에 따르면 정 장관은 하야시 요시마사 일본 신임 외무상과 전화통화를 하지 못한 채 중앙아시아로 출국했다. 정 장관은 타지키스탄을 방문해 한·중앙아 협력포럼 등에 참석할 예정이다. 이후 다음 달 10일 영국 리버풀에서 열리는 주요 7개국(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 참석한다. 정 장관은 이 자리에서 경제협력과 더불어 종전 선언 등 대북 문제에 대한 서방국가의 지지와 협력을 요청할 방침이다.
일본 기시다 내각에서 임명한 하야시 요시마사 외무상은 지난 10일 취임한 뒤 미국, 중국, 인도 등 주변국 외무수장과 인사를 나눴다. 한국을 제외한 주요국 외무수장과는 우의를 다진 셈이다. 앞서 스가 내각에서 임명했던 모테기 도시미쓰 전 외무상도 이 같은 행보를 보였다. 모테기 외무상은 정 장관이 취임한 지 3개월째까지 전화통화를 하지 않았고, 한일 외교장관은 지난 5월에서야 G7 외교개발장관회의에서 처음 만났다. 한일 장관은 토니 블링컨 미국 국무장관의 주선으로 어색한 인사를 나눴고 양자회동까지 진행했다. 하지만 “한일관계를 미래지향적으로 발전시켜 나가자”는 원론적 의견만 내놓고 성과 없이 회담을 마쳤다.
한일 외교수장의 이 같은 어색한 만남은 다음 달에도 똑같이 재연될 가능성이 커졌다. 기시다 내각은 스가 내각의 한일관계 정책을 계승했고 과거사 문제 등에 대해 한국 정부가 해결책을 가져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하야시 외무상이 먼저 전화통화를 해올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것이 외교가의 대체적 평가다. 이 경우 한일 장관은 10일 예정인 G7 외교개발장관에서 어색한 대면을 하게 된다. 양자 회담을 하더라도 큰 성과가 나올 수 없는 환경인 셈이다.
한 외교전문가는 “일본 정부는 임기가 5개월여 남은 문재인 정부와 관계개선을 적극적으로 모색할 의지가 없어 보인다”며 “다음 달 한일 외교장관이 얼굴을 마주하더라도 대북 협력 등을 제외하면 기존보다 진전된 관계개선 방안이 나올 것 같지 않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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