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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체포기각서' 쓴 성기훈 '오징어게임' 할 필요 없었다?

[Law & Scene]<4> 드라마 단골소재 '신체포기' 효력 있을까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 게임./사진제공=넷플릭스




넷플릭스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경마장 화장실. ‘쌍문동 주민’ 성기훈(이정재 분)씨가 소변기 사이로 힘없이 쓰러졌다. 빌린 돈을 갚지 않는다며 대부업체 직원들이 성씨를 폭행했기 때문이다. 특히 대부업체 직원들은 한 장의 각서를 내밀며 “다음 달까지 못 갚으면 신장 하나랑, 안구 하나 대신 가져간다”는 협박도 서슴치 않았다. 각서의 주요 내용은 ‘7,000만원을 대출받았으나 약속한 기한 내 변제하지 못해 계약에 따라 담보물로 설정된 주요 장기를 비롯한 신체 전부에 대한 권리를 사업자 ○○론에게 양도한다’는 것이었다. 각서 말미에는 ‘분란의 여지를 없애고자 각서를 작성한다’는 문구도 달렸다. 성씨는 “여기 돈이 있다”며 경마장에서 딴 돈뭉치를 꺼내려했으나 이미 소매치기 당한 뒤였다. 성씨는 결국 신체포기각서에 서명했다. 인주도 없어 본인 코에서 흐르는 피로 찍은 지장(指章)이었다.

온라인 대부업체 등 상담란에도 실제 문의 많지만…법률효력 없어


일용직을 전전하는 성씨가 한 달 안에 채무를 갚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은행대출이 2억5,500만원에 사채가 1억6,000만원으로 빚만 4억1,500만원에 달했다. 자동차업체에서 퇴직한 뒤 시작한 요식업마저 잘 되지 않아 폐업한 결과였다.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지독한 인연이 이어졌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한 남자(공유 분)가 다가와 ‘딱지치기’를 권했다. 이기면 10만원을 받고, 지면 따귀 한 대를 맞는 방식이었다. 성씨는 그 남자에게 계속 지면서 뺨이 붉어졌다. 이윽고 한 판을 이긴 성씨에게 남자는 전화번호가 적힌 명함을 건네며 큰 돈을 벌 수 있는 게임에 참여할지 묻는다. “오늘 신체포기각서 쓰셨죠. 빈자리가 얼마 안 남았습니다”라는 남자의 말에 성씨는 화를 내며 헤어지지만 이내 명함에 적힌 번호로 전화를 걸었다. 돈이 없어 어머니 당뇨 치료조차 미룰 수 없는 현실을 견디기 어려워서였다. ‘자동차 회사 퇴사→사업실패→늘어난 채무’로 인해 쓴 신체포기각서가 결국 그를 총상금 456억원의 오징어게임에 참여하게 된 계기가 된 셈이었다.

신체포기각서는 오징어게임은 물론 ‘쩐의 전쟁’, ‘비정한 도시’ 등 각종 영화나 드라마에 자주 등장하는 소재다. 주로 감당할 수 없는 빚에 벼랑 끝으로 내몰린 상황을 표현하는 데 쓰인다.





되레 채권자가 강제추심 나서면…2년이상 15년 이하 징역형 처벌


드라마·영화와 달리 실제 현실에서 신체포기각서가 효력을 발휘하긴 법률상 불가능하다. 민법 제103조(반사회질서의 법률행위)에서 “선량한 풍속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한 사항을 내용으로 하는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같은 법 제104조(불공정한 법률행위)에서도 “당사자의 궁박, 경솔 또는 무경험으로 인하여 현저하게 공정을 잃은 법률행위는 무효로 한다”고 정해두고 있다. 특히 채권의 공정한 추심에 관한 법률에서는 곤궁한 상황에 몰린 채무자에게 신체포기각서를 작성하게 하거나, 이를 근거로 채권을 추심하는 행위를 명백한 범죄행위로 규정한다. 채무자 또는 관계인을 폭행·협박·체포 또는 감금하거나 그에게 위계나 위력을 사용하는 행위의 경우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한다. ‘장기등 이식에 관한 법률’에서도 "누구든 금전 또는 재산상의 이익 등을 주고 다른 사람의 장기 등을 제3자에게 주거나 제3자에게 주기 위하여 받는 행위 또는 이를 약속하는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형법 제289조(인신매매) 또한 “노동력 착취, 성매매와 성적 착취, 장기적출을 목적으로 사람을 매매한 사람은 2년 이상 15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정해두고 있다. 신체 포기를 강요하는 채권자나 이에 응한 채무자 모두 범죄자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여성가족부가 인신매매 범죄 범위를 확대하는 등 관련 규정을 묶어 지난 4월 공포한 ‘인신매매 방지법’도 2023년 시행을 앞두고 있다.

도산제도 등 회생제도만 잘 이용하면 제2의 성기훈 전락 막을수 있어


전문가들은 드라마 오징어게임 속 성씨가 도산제도를 이용했다면 파국으로 치닫는 일은 피할 수 있었을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감당 못하는 빚 탓에 인터넷 대부업체 상담란에 ‘신체담보대출’이나 ‘콩팥담보대출’이 가능한지 묻고 있는 이들이 현 제도만 잘 이용하면 오징어게임 속 제2의 성씨로 전락하지 않을 수 있다는 얘기다.

백주선 한국파산회생변호사회 회장은 “법원으로부터 채무를 변제할 수 없다는 걸 확인 받은 뒤 남은 빚을 면책 받는 파산제도와 일정 소득이 있다면 3년간 소득 수준 내에서 빚의 일부만 갚고 나머지는 면책 받는 회생제도가 있다”며 “성기훈이 경마를 했지만, 반사회적 수준을 넘지 않았다면 심사를 통해 도산제도를 이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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