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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임·알코올중독부터 ADHD까지 VR 등 ICT활용…"치료효과 최대 5배"

디지털 기술 발전이 바꿔놓은 정신건강의학과 진료현장

가상·증강현실·AI 기술 활용

인지장애 환자 행동교정 확산

약물치료·앱 사용 등 병행 환자

상담뿐인 방법보다 효과 뛰어나

비만 치료 등 적용 영역 급속확산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한 환자에게 알코올 중독 VR 체험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 제공=중앙대병원




#직장인 이경건씨(48·가명)는 일주일에 4~5번 술자리를 가진 지 20년이 넘었다. 코로나19 이후 저녁모임이 줄어든 뒤에도 저녁식사 때 반주로 소주 한병 이상씩은 곁들여야 잠이 들었을 정도다. 언제부턴가 술을 마시면 기억이 전혀 나질 않고 길에서 쓰러져 자는 횟수가 늘어나면서 몇 차례 입원치료를 받아봤지만 일시적일뿐 술을 줄이진 못했다. 이씨는 병원 권유로 인지행동치료와 알코올 중독 가상현실(VR) 체험을 10차례 병행했다. 현재 이씨는 3개월째 금주상태를 유지 중이다.

알코올 의존 환자에게 제공되는 VR체험은 3D 입체영상과 오감 자극을 이용하는 일종의 인지 훈련 프로그램이다. 환자가 겪는 상황을 실제처럼 느끼게 하기 위해 스크린과 입체안경, 음향 시스템 등이 구비된 장소에서 진행한다. 치료실에서 VR고글을 착용한 환자는 화면 속에서 가상의 음주 장면과 마주하게 된다. 아바타들과 함께 삼겹살을 굽고 소주잔을 기울이다 보면 시각·청각·후각이 자극되며 실제 술집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흥이 오를 때쯤 술병이 잔뜩 버려진 쓰레기 더미에 피를 흘리고 구토를 하며 쓰러져 있는 화면으로 바뀐다. 역한 냄새와 함께 메스꺼움이 올라오다가 관 속에 묻히는 장면에서 두려움과 공포감을 느끼며 약 15분 분량의 영상이 종료된다.

한덕현 중앙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일찌감치 VR치료의 임상적 유용성을 확인하고 진료현장에서 적극 활용해 왔다. 지난 2015년 국제학술지 '알코올과 약물 연구저널'에 발표된 연구에 따르면 뇌 PET/CT 검사를 시행했을 때 VR치료 전후 뚜렷한 뇌 신진대사 변화가 나타났다. 평소 알코올 의존 환자는 알코올 중독 경력이 없는 건강한 성인(대조군)보다 대뇌 기저핵과 측두엽의 뇌 신진대사가 지나치게 활성화되어 있다. 하지만 10회에 걸친 VR치료 후 대사 활성화가 감소하면서 대조군과 유사해진 것이다. 통상 알코올 의존 환자의 뇌는 가상 음주를 경험하는 동안 일반인보다 더 흥분하고 혐오자극에도 더욱 민감하게 반응한다. VR치료 마지막 단계에서 혐오자극이 환자의 흥분을 가라앉히는 데 도움을 주면서 궁극적으로 술에 대한 욕구를 줄이고 알코올 의존성을 낮추는 것으로 풀이된다. 술을 보면 혐오감이 들게 유도해 절주를 돕는 원리인 것이다. VR과 인지행동치료를 접목하면 상담만으로 잘못된 행동 패턴을 교정하는 것보다 몰입하기 쉽고, 환자가 극복하기 힘들어하는 부분을 접목해 맞춤형 치료가 가능하다.

VR프로그램은 게임을 하고 싶은 충동을 조절하지 못해 금단과 내성, 일상생활 부적응과 같은 문제행동을 나타내는 10대 소아·청소년 치료에 끼지 못했던 죄책감이나 미래에 대한 걱정이 생기면서 게임에 대한 충동이 줄어드는 변화가 생긴다.





정보통신기술(ICT)은 최근 행동교정이 필요한 다양한 질환의 치료 영역을 깊숙히 파고들고 있다. 환자들은 스마트폰 앱(app)을 다운받아 실행하는 것만으로 일상생활 속에서 간편하게 인지행동치료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최근 전 세계 의료계가 주목하고 있는 '디지털 치료제'가 등장한 덕분이다.

디지털 치료제는 임상적 근거를 기반으로 가상·증강현실과 인공지능(AI), 웨어러블 기기 등의 기술을 활용해 환자 치료에 개입하는 소프트웨어 의료기기다. 질병 치료 뿐 아니라 진단과 모니터링, 예방, 관리 등의 용도로 광범위하게 활용될 수 있다. 독립적으로 질병 치료 효과를 내기 보다는 약물 복용 순응도를 높이고 생활습관 교정 등을 도와 기존 치료의 효과를 높이는 보조적 용도로 주로 활용된다. 가벼운 증상의 인지장애 환자에게 인지재활 훈련을 제공해 알츠하이머 치매를 예방하거나 위암 환자의 메스꺼움·통증 증상을 모니터링해 약물 투여량과 부작용을 관리하고, 천식 환자 대상으로 VR 체험을 제공해 호흡곤란·기침 등 증상 발현 빈도를 낮추는 소프트웨어가 대표적이다. 미국 벤처기업인 페어테라퓨틱스의 모바일 앱 '리셋(reSET)'이 지난 2017년 물질사용장애 환자의 인지행동치료를 돕는 용도로 미국식품의약국(FDA) 허가를 받으며 디지털 치료제 등장의 포문을 열었다. 알코올, 카페인 등 중독성을 지닌 물질이나 약물 조절에 어려움을 겪는 환자들은 대면치료 대신 의사의 처방에 따라 리셋으로 동영상 치료과정을 수행할 수 있다. 12주 동안 399명을 대상으로 진행된 임상 시험 결과 약물치료와 앱 사용을 병행한 환자의 금욕 비율은 16.1%로 약물만 쓴 환자(3.1%)보다 5배 이상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작년 6월 FDA 허가를 받은 아킬리인터랙티브의 '인데버RX'는 소아 주의력 결핍 과잉행동장애(ADHD)를 위한 치료용 비디오게임이다. 아킬리가 제출한 임상 결과에 따르면 ADHD로 진단 받은 8~12세 아동 348명에게 하루 25분씩 주5회, 4주간 인데버RX를 실행하도록 했을 때 36%가 주의력변수시험(TOVA) 점수 개선 효과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의료현장 전반에서 디지털 치료제의 활용이 더욱 증가할 것으로 전망한다. 올해 초 삼성서울병원은 디지털치료연구센터를 개소했고, 365mc는 그간 축적된 비만 진료 데이터를 기반으로 비만 특화 디지털 치료제 개발에 나섰다. 바이오기업 에임메드는 서울대병원, 삼성서울병원, 고려대 안암병원에서 불면증 치료용 디지털 치료제 임상을 진행 중이다. 한 교수는 "우리나라도 기능성 게임, 앱과 같이 다양한 방식의 디지털 치료제가 진료현장에서 본격적으로 사용될 날이 머지 않았다"며 "제도개선 등 새로운 치료제에 걸맞는 환경이 조성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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